2028년 연결자산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부터 기후공시 의무화
첫해부터 사업보고서 통한 법정공시…허위·누락 땐 법적 책임 수반
2029년 공시 포함 기업 3171곳으로 급증…2030년 3749곳까지 확대 가능
Scope 3는 3년 유예지만 공급망 데이터 확보는 미리 시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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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파워 이경호 기자] 기업의 ESG 공시가 ‘선택적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서 법적 책임이 따르는 사업보고서 공시로 넘어간다. 공시 대상도 2028년 291개사에서 2029년 3171개사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기업뿐 아니라 종속회사와 협력사까지 기후·온실가스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최근 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가 발간한 리포트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7월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방안을 확정하고 2028년부터 연결자산총액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기후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기로 했다. 당초 거래소 공시를 먼저 시행한 뒤 일정 기간을 거쳐 법정공시로 전환하는 방안보다 한층 강화된 형태다.
가장 큰 변화는 공시의 ‘무게’다. 기후 관련 정보는 시행 첫해부터 자본시장법상 사업보고서를 통해 법정공시하게 된다. 기존에는 ESG 관련 내용을 기업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형태로 자율적으로 공개했지만 앞으로는 허위나 중요사항 누락 등에 손해배상과 행정제재, 형사책임까지 따를 수 있다.
공시 대상도 빠르게 확대된다. 2028년에는 연결자산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107곳이 직접 공시 대상이 될 것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연결공시에 포함되는 종속회사 184곳을 합하면 실제 공시 체계 안으로 들어오는 기업은 291곳에 이른다.
불과 1년 뒤에는 숫자가 크게 뛴다. 2029년 기준이 연결자산 5조원 이상으로 낮아지면 직접 공시 대상은 157곳으로 늘고, 종속회사 3014곳까지 포함해 총 3171개사가 관련 공시체계에 들어올 것으로 추산됐다.
2030년 연결자산 2조원 이상까지 확대할 경우 대상은 더 커진다. 직접 공시 기업 259곳과 종속회사 3490곳을 합하면 총 3749개사가 공시 영향권에 들어올 수 있다. 실제 시행 시점의 자산과 매출 기준에 따라 숫자는 달라질 수 있지만, 공시 부담이 대기업 본사에서 계열회사와 공급망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방향은 분명하다.
종속회사 관리도 중요해진다. 자산 또는 매출이 연결기준 10% 이상인 종속회사는 도입 첫해부터 연결공시 범위에 들어갈 수 있어 지배회사는 대상 회사를 미리 파악하고 각 회사가 보유한 기후·온실가스 데이터를 점검해야 한다.
공시 내용 가운데 핵심은 온실가스 배출이다. 기업이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사업장에서 직접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Scope 1, 외부에서 구매한 전기·열·스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배출은 Scope 2로 분류된다. 협력사 생산과 원재료 운송, 출장·통근, 판매제품 사용·폐기 등 기업 가치사슬 전체에서 발생하는 배출은 Scope 3에 해당한다.
기업이 가장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큰 영역도 Scope 3다. 자사 공장과 설비에서 발생한 배출량과 달리 원재료 공급업체와 물류회사, 판매 이후 사용·폐기 단계까지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공시 의무가 협력사의 데이터 제출 요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는 이런 부담을 고려해 Scope 3 공시를 각 기업의 최초 의무공시 시점부터 3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하지만 유예기간이 끝난 뒤 단기간에 공급망 전체 데이터를 구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협력사별 정보수집 체계는 미리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정보의 특성도 기업에는 부담이다. 실제 발생한 숫자만 기록하는 재무제표와 달리 미래의 기후위험과 사업 영향은 상당 부분 전망과 추정에 의존한다. 어떤 가정과 데이터를 사용했는지, 정보의 출처는 어디인지,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인지까지 내부적으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해진다.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한 안전장치도 마련됐다. 제도 도입 후 3년 동안은 고의적인 그린워싱을 제외하고 비교적 폭넓은 면책이 적용된다. 이후에도 예측·추정정보와 기업이 직접 통제하기 어려운 제3자 정보는 합리적인 근거와 판단을 전제로 일정 범위의 면책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단기적인 비용 증가는 불가피하다. 기후 데이터를 담당할 전문인력과 시스템을 확보하고 국내외 계열회사와 협력사 정보를 하나의 기준으로 수집·검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관련 전담조직과 인프라가 부족한 중견기업과 대기업 협력사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ESG 공시가 단순 비용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기업의 기후위험과 전환전략을 투자 판단에 활용하는 만큼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와 공시체계를 갖춘 기업은 투자유치와 녹색·전환금융 조달 과정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결국 2028년부터 시작되는 ESG 공시 의무화는 ‘보고서 한 권을 더 만드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재무정보처럼 데이터의 산출부터 검증, 내부통제, 이사회와 경영진의 판단 근거까지 관리해야 하는 새로운 공시체계를 만드는 작업에 가깝다.
특히 2029년 공시 영향권에 들어오는 기업 수가 3000곳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준비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ESG 공시는 대기업 몇 곳의 문제가 아니라 종속회사와 협력사까지 연결되는 공급망 전체의 데이터 관리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