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 전 축구대표팀 감독에 대한 기성용의 ‘비공개적인’ 불만을 공개한 보도 내용이 ‘기성용 조롱 파문’ 등으로 집중적인 언론보도에 의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 확실히 ‘확산(擴散)’되고 있다. 더 솔직히 말하면 필요이상으로 ‘확대재생산(擴大再生産)’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정도다. 홍명보 감독이 기성용을 선택할지가 벌써부터 관심을 모은다.
문제는 개인적인 자리를 통해 나온 기성용의 생각과 표현에 대한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가 과연 올바른 행태인지, 제대로 된 저널리즘의 양태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어 보이는 점이다. 비공개로 운영돼온 기성용 페이스북에 대한 언론의 폭로는 과연 정당한가.
기성용 “내셔널리그 같은 데 뛰는데 뽑아줘서 고맙다”
먼저 논란이 되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자. 기성용은 스코틀랜드 셀틱 시절이던 지난해 2월 쿠웨이트와의 월드컵 3차 예선 명단에 포함된 후 “고맙다, 내셔널리그(국내 실업리그) 같은 곳에서 뛰는데 대표팀 뽑아줘서”라는 글을 올렸다. 앞서 최강희 감독이 “셀틱 빼면 그게 내셔널리그지”라며 기성용이 뛰고 있는 스코틀랜드리그를 폄훼한데 대한 불만이었다.
기성용은 또 “쿠웨이트전은 나랑 (박)주영이 형의 독박무대가 되겠군”이라며 “잘하면 본전 못하면 아주 씹어드시겠네”라고 말하고, “소집 전부터 갈구더니 이제는 못하기만을 바라겠네”라며 “님아, 재밌겠네”라는 글을 올렸다. 언론은 ‘ㅋㅋㅋ’ 등을 가감 없이 인용했고, “최 감독이 마치 기성용의 활약을 바라지 않기라도 한다는 뉘앙스”라고 단정해 보도했다.
기성용은 쿠웨이트전 2대0 승리 이후에 “전반부터 나가지 못해 정말 충격 먹고 실망했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이 느꼈을 것”이라며 “해외파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우리를 건들지 말았어야 했고, 다음부턴 그 오만한 모습 보이지 않길 바란다”며 “그러다 다친다”고 했다. 언론은 “최 감독에 대한 감정이 얼마나 안 좋은지, 얼마나 우습게보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냉소적인’ 기성용 vs ‘자극적인’ 언론 보도
언론은 기성용의 언급을 “‘노골적인’ 불만” “해외파로서 ‘지나친’ 우월감”으로 규정하며 “충격을 주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특정 매체의 경우 이런 표현들을 리드에서부터 사용하고 있다. 애초 형용사나 부사는 스트레이트기사 작성 시 기피하는 품사다. ‘ㅋㅋㅋ’ 등 온라인 용어로 사용되는 표현까지 고스란히 옮긴 것도 독자들을 자극할 수 있는 작성 방식이다.
물론 기성용의 발언 즉 “고맙다, 내셔널리그 같은 곳에서 뛰는데 대표팀 뽑아줘서” “독박무대” “씹어드시겠네” “소집 전부터 갈구더니 이제는 못하기만을 바라겠네” “우리를 건들지 말았어야 한다” “다음부턴 그 오만한 모습 보이지 않길 바란다” “그러다 다친다” 등의 표현은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어른’을 상대로 사용할 때 ‘X가지 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기성용의 표현은 거칠었다. 육두문자를 쓰진 않았으나 ‘무례하고’ ‘냉소적’이었다. 하지만 만24세에 불과한 기성용을 겨냥한 기사 본문, 즉 “최 감독이 마치 기성용의 활약을 바라지 않기라도 한다는 뉘앙스” “최 감독에 대한 감정이 얼마나 안 좋은지, 얼마나 우습게보고 있는지” 등 ‘전지적(全知的)’ 관점의 보도 역시 객관적이거나 이성적이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오프’ 전제된 발언의 ‘폭로’는 정당한 저널리즘인가
여기에 ‘SNS논란, 해프닝 아닌 심각한 문제’라는 제목으로 4일 칼럼을 공개한 축구칼럼니스트의 보도 방식, 즉 영향력이 막강한 포털사이트라는 매체를 이용해 특정 개인이 지극히 사적으로 운영해온 비밀 페이스북 계정의 내용을 캡처해서 폭로한 방식이 정당한 저널리즘의 방식인지에 대한 판단도 남아있다. 사실 이 문제는 좀 본질적인 면에서 짚어봐야 한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성용의 발언이 ‘비공개’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언론의 보도방식 중에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가 있다. ‘오프 더 레코드’는 기자회견이나 인터뷰처럼 공개적인 곳에서 나온 발언임에도 불구하고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인터뷰이는 이 ‘약속’을 전제한 뒤 발언을 하고, 동석한 인터뷰어와 언론을 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
물론 ‘오프 더 레코드’에도 예외는 있다. 여론조작이나 언론의 규제를 위한 것일 경우다. 이번 내용을 공개한 칼럼니스트도 기자출신이니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기성용은 ‘오프 더 레코드’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비공개 계정’에서 말했다. ‘오프’가 전제된 발언이었다. “없는 곳에서는 나랏님 욕도 한다”는 우리 속담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정당한 저널리즘은 아니다.
월드컵 1년 앞둔 한국축구 최대 이슈가 기성용 트위터 페이스북인가
이 칼럼니스트가 ‘오프’를 공개하면서 어떤 ‘공익성’과 ‘책임성’을 고려했는지 궁금하다. 축구협회의 행정력 부족이나 파벌논란에 대한 경고인가. 그렇지만 비공개 내용에 대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대선배까지 저격하는 자세” “몇몇 젊은 선수들의 그릇된 인성” “스승 알기를 무슨 개떡으로 알면서 태극마크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등의 표현은 좀 과도해 보인다.
감독의 전술과 선수기용방식, 타국리그에 대한 견해와 표현, 선수단 장악력이 ‘절대적 진리’니 선수는 ‘생각’ 없이 무조건 따라야 하는가. ‘비공식계정’이나 ‘술자리’의 불만과 표현까지 문제 삼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 全體主義) 사회를 추구하는가. ‘비공식계정’을 공개하는 ‘비상식적인’ 방식은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본질적인 문제다.
월드컵을 1년 앞둔 시점에서 기껏 한국축구의 최대 이슈가 24살 선수의 “없는 곳에서의 나랏님 욕”이라는 게 안쓰럽다. 선수의 예의 없음은 그것대로 질책해야 하겠지만, “없는 곳”이라는 전제를 감안해야 한다. 개인의 판단과 “없는 곳”에서의 표현을 문제 삼는다면 가장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가치, 즉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