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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 타임캡슐을 열다 (下)

김세인 기자

기사입력 : 2017-05-10 10:11

"캐리커처란 무엇인가?"

우리 중 대부분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자세한 설명보다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신문 한켠에 있는 유명 인사, 정치인 등을 그린 시사 만화나 TV 광고 등 우리는 캐리커쳐를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캐리커쳐는 우리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캐리커처 타임캡슐을 열다 (下)

지난 상편에서 캐리커처가 무엇이고 그리스, 로마, 중세의 캐리커처를 알아봤다면, 하편에서는 근대, 20세기 캐리커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근대 캐리커처의 사회화

■ 근대 캐리커처의 시작


스위스 놀이의 배후
스위스 놀이의 배후

위 작품은 근대 캐리커처를 예감하는 정치 캐리커처로 목판화 <스위스 놀이의 배후(1499년)>이다. 이 목판화에는 로마 교황과 황제 그리고 프랑스 국왕과 영국 국왕이 카드놀이를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탁자 밑에서는 스위스 군인이 카드를 챙기고 있다. 이 풍자그림은 유럽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영리하게도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스위스를 비꼬고 있다. 현대 신문의 시사만평과 매우 비슷하다.

근대 캐리커처의 발전은 두가지 맥락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쥐세페 아르침볼디로 이어지는 인물 형태의 변형이고, 다른 하나는 18세기 나폴레옹 전쟁과 혁명기의 모순을 다룬 풍자 캐리커처이다.

- 인물 형태를 변형한 캐리커처

교황 고르곤
교황 고르곤

<교황 고르곤(1581년)>은 인물 형태의 변형을 볼 수 있는 캐리커처이다. 이 그림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종교개혁을 승리로 이끈 영국·네덜란드·독일 프로테스탄트주의자들이 가장 선호했던 소재 중 하나다.

고르곤은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를 지칭했던 말로 무서운 사람 혹은 그 반대로 무능력한 사람을 의미했다. 그림 <교황 고르곤>은 교황의 무능력을 암시한다. 이 그림은 20여가지 사물의 조합을 통해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교황이 쓰고 있는 관은 교회종이 대신하고 있고, 교회종에는 두 개의 단검과 성수가 묻은 두개의 붓이 십자가 모양으로 걸쳐져 있는 등 <교황 고르곤>은 교황에 대한 풍자와 함께 인물에 대한 변형과 과증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점에서 캐리커처의 형식적 특징을 가장 잘 발휘한 그림이다.

- 풍자 캐리커처

좌 = 브뤼겔. 돈 주머니와 돈 박스 사이의 전쟁  우 = 브뤼겔. 큰 고기가 작은 고기를 먹다
좌 = 브뤼겔. 돈 주머니와 돈 박스 사이의 전쟁 우 = 브뤼겔. 큰 고기가 작은 고기를 먹다

근대에는 여전히 교황에 대한 풍자 그림이 빠지지 않았다. 대표적 작품으로 브뤼겔의 <돈 주머니와 돈 박스 사이의 전쟁>과 <큰 고기가 작은 고기를 먹다>를 들 수 있다. <돈 주머니와 돈 박스 사이의 전쟁>은 초기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큰 고기가 작은 고기를 먹다>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은근히 꼬집고 있다. 즉, 현실적 소재에 극단적인 상징성을 부여하려는 브뤼겔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로테스크 소묘

르네상스 시대로 들어서면서, 화가의 사회적 지위가 격상됐다. 그 이유는 회화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기하학과 해부학에 바탕을 둔 과학이라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화가는 자신의 그림에 자화상을 끼워 넣었고, 화가가 그린 스케치 혹은 소묘가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초안그림, 스케치, 밑그림으로 통칭되는 화가들의 소묘는 완성된 그림이 아님에도 독자적인 가치를 가지며 보존됐다. 이것은 캐리커처 역사에 소중한 자료가 됐다.

다빈치 =다섯 명의 그로테스크한 머리
다빈치 =다섯 명의 그로테스크한 머리

캐리커처 역사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재성은 단연 돋보였다. 다빈치는 고대 조상들에서 그로테스크한 형태들을 배웠고, 반인반수의 형태에서 괴물들로 가득한 판타지적인 형상들을 보았다. 특히, 다빈치는 인물의 표정에서 에로틱함, 허영, 그리고 음탕함을 읽어냈다. 이런 점에서 다빈치의 '그로테스크한 인물 표정'이 풍자를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근대 인물 캐리커처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 카라치와 17세기 캐리커처의 흐름

아니발 카라치와 아고스티노 카라치 두 형제와 그들의 사촌 루도비코는 캐리커처의 탄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바로 이들을 통해서 본격적인 근대 캐리커처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카라치 형제는 일상생활에서 끄집어낸 소재에 관심을 뒀으며, 인물을 더욱 세밀하게 그리려고 애썼기에, 선의 반복을 통해서 인간 형체를 표현했다. 그 세밀함 속에 인물의 외면성과 내면성이 함께 공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단한 붓 터치와 세밀한 선으로 그려진 인물은 기괴하고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카라카치가 그린 캐리커처에서 우리는 매너리즘(기괴함)과 바로크(역동성)의 접점을 만날 수 있다. 이런 그림들을 카라치 형제는 '카리카튜라'로 명명했으며, 이것이 캐리커처의 어원의 시작이 됐다.

사실 캐리커처를 그리는 것은 17세기 이탈리아 화가들에게 호구지책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에, 캐리커처가 많이 그려지지는 않았다. 그런 연유로 캐리커처 작업은 매우 개인적인 호기심 차원에 머물렀다.

샤를르 르 브랭 =관상학 연구
샤를르 르 브랭 =관상학 연구

이 같은 개인적인 캐리커처 작업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동물의 결합'을 다룬 캐리커처는 한층 전문화 됐다. 루브르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는 브랭의 그림은 부엉이와 인간의 머리를 교합하여 만든 인물 캐리커처이다. 브랭은 다빈치의 인물 표정에 대한 연구의 범위를 넘어, 인물의 관상학적 고찰로까지 범위를 확대시킨 화가다.


■ 18세기, 캐리커처 세상

본격적인 캐리커처는 16세기 이탈리아 카라치 형제에 의해 시작됐지만, 18세기 초반의 캐리커처를 주도했던 곳은 영국이다. 이 당시 영국 캐리커처는 이탈리아 회화의 선의 기교와 네덜란드 회화의 사실주의 색채를 수용하면서 성장했다.

특히 영국캐리커처는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찾았다. 그런 일상적 소재는 대중들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18세기 영국 캐리커처를 시작으로 유럽 캐리커처는 개인예술이 아니라 대중예술의 틀을 마련했다.

인쇄술의 발전으로 대중적 사건을 다룬 신문과 팸플릿의 출간이 증가하면서 1730년대부터 사건을 다룬 캐리커처가 지속적으로 창작됐다. 그러나 정치 캐리커처가 저널리즘과 본격적으로 연합 한 것은 아니다. 단지 사건을 다룬 캐리커처에 머물러 있었고, 정치 캐리커처는 전문 판매점을 통해서 개별적으로 판매되고 공개됐다.

호가스 =인물화와 풍자
호가스 =인물화와 풍자

18세기 초반의 영국 풍속화가로 중요한 사람은 윌리엄 호가스다. 호가스는 그다지 정치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야망이 가득한 화가지망생이었다. 그는 투기에 미친 영국 런던 사회를 풍자한 작품 <남해포말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풍자그림을 그리게 된다. 특히 그림 <인물화와 풍자>는 인물 캐리커처에 대한 호가스의 재능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무엇보다 호가스는 만화의 기본요소인 ‘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만화 역사에 커다란 공헌을 한 인물이다.

길레이 =축제
길레이 =축제

영국 정치 캐리커처의 새로운 장을 연 작가로 제임스 길레이를 빼놓을 수 없다. 만화적 측면에서 본다면, 제임스 길레이는 ‘만화의 말풍선’을 사용한 캐리커처 작가로 그림 <축제> 등 많은 그림에서 그는 등장인물의 대사를 전달하기 위해 말풍선을 삽입했다. 특히 제임스 길레이는 최초의 정치 전문 캐리커처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정치 캐리커처가 보여주는 시대 풍자는 대선배 호가드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다.

18세기 초 영국 캐리커처가 유럽 정치 캐릭터를 탄생시켰다면,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까지 유럽 정치 캐리커처를 주도한 것은 프랑스 캐리커처다. 이 시기를 ‘캐리커처의 황금기’라고 부른다. 당시 많은 작가들이 수많은 캐리커처를 창작했다. 그들 중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는 환상주의 경향의 캐리커처 작가 프란시스 고야, 풍자 만화의아버지 오노레 도미에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1789년 7월 31일 캐리커처에 대한 검열이 파리에서 시작됐다. 1792년에는 많은 정치 캐리커처 발행자들이 처형당하기도 했다. 결국 1811년에는 350개에 달하던 파리 신문이 겨우 4개밖에 남지 않았다. 이 당시 출간 가능한 신문∙잡지는 공적이거나 교육적인 내용이어야 했고, 정치적인 내용은 금지됐다. 이 시기가 바로 나폴레옹 집정기였고, 이런 현상은 그가 전쟁에서 대패했던 1814년까지 이어졌다. 18세기 유럽은 전쟁과 혁명으로 물든 암흑기였으나, 역설적이게도 정치 캐리커처의 완성기였다.


■ 19세기 유럽 캐리커처의 흐름

유머잡지 =펀치
유머잡지 =펀치

19세기 영국 캐리커처의 흐름은 1841년 유머그림 작가 존 리치가 창간한 <펀치>가 주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 캐리커처에는 정치성이 거의 배제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상대적으로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 캐리커처는 풍자 캐리커처가 아닌 유머그림과 문학작품의 삽화로 발전했고 많은 캐리커처 작가들이 삽화가로 활동했다.

당시 유명했던 삽화가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그린 데니엘과 <살로메>를 그린 비어즐리이다. 두 작가는 판타지 세계를 가장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20세기, 풍자 캐리커처의 성행

1914년과 1939년에 발발한 제1∙2차세계대전은 전 유럽을 암흑에 빠뜨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전쟁의 참혹함으로 인해 캐리커처는 질적∙양적으로 성장했다.

유머그림이 유행했던 영국과 달리 전쟁의 발발국이었던 독일에서는 풍자 캐리커처들이 성행했다. 그 내용도 단순히 사회풍자나 고발을 넘어 나치 제국에 대한 반역과 체제전복이 주를 이뤘다. 정치 캐리커처가 과격해질수록 나치의 탄압도 거세졌지만 정치 캐리커처는 계속해서 선전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됐다.

선전을 위한 캐리커처는 다양한 기교를 보였다. 이전의 캐리커처가 회화적이였다면, 이 이후의 캐리커처는 만화적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명암이나 색채는 과감히 생락되고 선으로 모든 것을 표현했다. 또한 사진과 캐리커처가 한 작품에 혼합됐다.

좌 =그로츠. 꿈쩍도 하나 봐라! 우 =하트필더. 슈퍼맨 히틀러
좌 =그로츠. 꿈쩍도 하나 봐라! 우 =하트필더. 슈퍼맨 히틀러

그 선상에 반나치주의 만화가 조지 그로츠와 포토몽타주를 통한 풍자로 히틀러에 대항한 존 하트필더가 있다. 특히 하트필더의 포토몽타주 기교는 잡지, 사진, 신문 등을 오려 붙이거나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다시 붙이는 방식으로 오브제를 통한 연상작용을 유도하려는 의도를 담았다. 이 기법은 현대 시사만화나 광고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방식이 됐다.

현대 캐리커처는 이 두작가를 통해 정립되고, 이후의 모든 캐리커처가 ‘만화’로 정의 되면서 ‘진정한’ 캐리커처의 역사는 막을 내린다.


■ 캐리커처, 사회를 그리다

캐리커처와 유머그림, 그 차이를 아는가?

현재 캐리커처와 유머그림(카툰)이 이미 만화로 통합된 지금, 이 둘을 애써 구분한ㄴ다는 것이 무의미할지 모르지만, 캐리커처의 사회적 역할을 정의하는데 있어 그 질문의 답은 매우 중요하다. 캐리커처와 유머그림의 교집합은 웃음이다. 웃음의 발전은 결국, 캐리커처와 유머그림의 발전이다.

캐리커처는 사회∙계급적 의식이 발전한 유머그림이다. 유머 그림이 작품을 받아들이는 독자의 수용을 통해 작품해석이 이뤄지는 특징을 가졌다면, 캐리커처는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의사전달을 통해서 계급적 동일성을 유도한다.

유머그림이 의도적으로 익살을 떨려고 애쓸 때, 캐리커처는 사회적 고통을 경험한다. 그 고통의 바탕 위에 존재했기에, 캐리커처가 풍자예술의 정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우리는 풍자 캐리커처를 보고 웃거나 통쾌함을 느낀다. 그것이 캐리커처가 의도한 바이며 이것이 바로 캐리커처의 사회적 역할이다. 결국 캐리커처는 사회와 인간 속에서 ‘풍자미술로’서 존재 의미를 가진다. (끝)

◎ 참고자료
- 『캐리커처의 역사』. 저자 박창석
- 『예술과 환영』, 저자 곰브리치
- 『풍자예술의 역사』, 저자 샹플뢰리
-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저자 아놀드 하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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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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