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이 있는 나는 새벽녘에 깨어있는 일이 습관처럼 익숙하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왠지 모를 긴장감 탓인지 잠에서 깨는 횟수가 전보다 늘었다. 신생아 때부터 엄마, 아빠와 같이 잔 딸아이는 두 개의 침대 사이를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어 가며 잠을 청하기 일쑤다. 그러다가 엄마, 아빠 중에 하나를 택해 품속을 파고들곤 하는데, 어젯밤은 운 좋게 나의 차례였다.
아이들은 잘 때가 가장 예쁘다고 했던가. 천사 같은 얼굴과 쌔근쌔근 가쁜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는 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다. 그러고 보면 사회생활이 시작된 후로는 쏜살같이 지나가는 하루 일과에 지쳐 딸의 얼굴을 온전히 바라 볼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신이 빚어낸 작품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이 아름다운 생명체는 어느 별에서 온 것일까?
불가사의한 우리 만남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문득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스무 살, 이제 막 대학 초년생의 풋풋함을 간직한 앳된 얼굴의 아내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어둡고 침침한 홍대 공연장 한편에 서 있었다. 그때의 나는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밴드의 보컬로 무대에 올라 밀려드는 공연의 떨림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아내의 말로는 무대 위의 내 모습보다는 공연을 마치고 멤버들과 떠들며 환하게 웃던 내 미소가 왠지 모르게 좋았다고 한다.
첫 만남 후로 우리는 밴드 보컬과 먼 발치에서 조심스레 응원해주는 팬으로 인연을 이어갔다. 가난하기로 둘째 가면 서럽다는 소위 딴따라의 길을 걷고 있던 나는 안정적인 미래는 사치라고 생각했었다. 피 끓는 청춘이기에 자연스레 찾아오는 연애의 감정까지는 막을 수 없었지만 결혼이란 건 늘 버겁기만 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동안에도 지금의 아내는 늘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직장 생활을 일찍 시작한 아내는 주머니가 턱 없이 가벼운 나를 살뜰히 챙기고 배려했다. 때론 좋은 친구로, 때론 한 없이 든든한 팬으로 내게서 그리 멀지 않은 자리에 항상 머물러 있었다.
우리 사이에 큰 변화가 생겼던 건 내가 갑작스레 뉴질랜드 행을 결정한 후였다. 첫 소속사와의 부침을 겪고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할 때, 예고 없이 내게 아픔이 찾아왔다. 하루에도 몇 차례 찾아오는 통증에 쓰러짐을 반복하던 나는 종양이라는 판정을 받고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실에서 눈을 감기 전 그 짧은 찰나에 나는 평소 믿지 않던 이름모를 신에게 기도했다. 나에게 한 번의 삶이 더 주어진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겠노라고.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나는 몸을 추스른 후 무작정 낯선 뉴질랜드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낯선 땅에서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언어와 환경의 장벽, 이방인이라는 한계는 매 순간 나를 포기의 절벽으로 몰아세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길에서 성공을 이루어보겠다는 욕심은 감당해내기 힘든 부담이 되어 날 짓눌렀다. 그렇게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달리던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결국 나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탓인지 그때의 시간은 명확하지 않은데, 함께 살던 친구의 말로는 2주 동안 방 안에서 먹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은 채 술에만 의지했던 나였다고 한다.
나는 서서히 지쳐갔고 극단적인 생각에 다다를 때쯤, 유일하게 연락을 했던 사람이 지금의 아내였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에 나는 왈칵 눈물이 터져버렸고, 아내는 단번에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뉴질랜드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결국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아내와 난 한 남자와 여자로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 아내에게 하는 말이지만, 그때 아내가 내게 보여 준 사랑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위대했다. 자신보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 보잘것 없는 내게 건넨 아내의 헌신은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가치라고 느껴졌다. 준비 없이, 가진 것 없이 시작한 결혼 생활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알아 온 20년 가까운 시간이 만들어 준 믿음으로 지금도 매 순간 삶의 가파른 언덕을 함께 오르고 있다.
아내와 나 (사진=조제)
그러고 보니 저기 하늘 어딘가 아내와 내가 사랑으로 만들어 낸 작은 행성 하나가 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사랑‘이란 행성으로부터 선물 같은 나의 아이가 ‘인연’이란 신호를 따라 우리의 품으로 온 것만 같다. 아내와 난 어린왕자의 소중한 장미처럼, 낯선 별에 찾아 온 우리의 손님에게 매일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바람이 심하게 불면 유리 덮개를 씌워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생이 끝나는 그 날까지, 온 힘을 다해 이 작은 ‘손님‘의 긴 여행에 발을 맞춰 걸어 줄 것이다. 수많은 별들 중에 우리가 만나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했음에 감사하며 말이다.
끝으로, 오늘도 따뜻한 엄마이자 든든한 아내, 그리고 좋은 선생님으로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의 아내에게 이 글로나마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사랑해 여보.
대한민국 최고의 디바이자 보컬리스트로 손꼽히는 국민가수 이선희 씨는 1984년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로 대상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30주년, 15집 앨범이라는 숫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수많은 별들이 뜨고 사라지는 가요계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살아있는 전설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2014년 30주년 기념 앨범이자 15집 "SERENDIPITY"에 실린 '그중에 그대를 만나'는 다시 한번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며 그녀의 건재함을 알렸습니다. 클래식하면서도 대중적인 멜로디와 더욱 섬세해진 보이스의 만남은 또 하나의 '이선희표 발라드'를 탄생시켰죠. 저는 무엇보다 김이나 작사가의 가사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아내와 아이와의 만남과 사랑의 이야기가 가사 속에 담겨 있는 것만 같아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 노래였습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함께 들어보실래요?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주는 것 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건 기적이었음을"
▶글쓴이 조제는 촉뮤직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뮤지션으로서 2005년 밴드 필베이의 보컬로 데뷔했다. 현재 밴드 모노크롬카세트의 보컬, 싱어송라이터 조제, 작사가로 활동 중이다. 문예창작학, 와인양조학을 전공하는 등 음악 외에도 와인, 요리, 문학 등 다양한 재능과 색채를 지닌 매력적인 아티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