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경호 기자] SK그룹 수뇌부가 연일 ‘고강도 쇄신’과 ‘투명 경영’을 내세우며 체질 개선을 주문하고 있지만, 계열사인 SK가스가 수조원대 계열사 내부거래에 의존하는 구조를 이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가스는 지난해 12월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제출한 ‘동일인 등 출자 계열회사와의 상품·용역거래’ 공시에서 2026년 계열사와의 상품·용역 거래 예정 금액을 3조622억원, 이 가운데 계열사 매출 거래를 2조9197억원으로 제시했다.
SK가스의 2024년 별도 기준 매출액은 4조6792억원이다. 공시에 기재된 2026년 계열사 대상 매출 2조9197억원은 직전 연도 매출의 62.4%에 해당하는 규모로, 회사가 벌어들이는 매출의 6할 이상이 ‘집안 거래’에서 나오는 셈이다.
이번에 일괄 공시된 계열사와의 상품·용역거래는 총 7건으로, 이 가운데 SK에너지와의 LPG 매매 거래가 1조7140억원으로 가장 크고 울산GPS와의 연료 공급 거래가 9294억원 규모다. 여기에 SK어드밴스드 1735억원, 울산아로마틱스 586억원, SK이코엔지니어링과의 1426억원 규모 매입 거래 등이 포함돼 있다.
이번에 별도로 공시된 에스케이지오센트릭과의 거래만 떼어 봐도 규모는 적지 않다. 공시에 따르면 SK가스는 에스케이지오센트릭과 2026년 한 해 동안 LPG 판매 및 액화가스 터미널·정압소 이용 거래를 분기별로 나눠 진행할 예정이며, 매출 기준 합계는 18만3488백만원(약 1835억원)에 달한다.
1분기부터 4분기까지 LPG 판매 대금과 터미널·정압소 이용료를 합산한 금액이 각각 3만2507백만원, 6만302백만원, 5만9287백만원, 3만1392백만원으로 기재됐다.
거래 방식은 모두 수의계약이다. SK가스는 에스케이지오센트릭과의 LPG 판매·터미널 이용 거래 내역에서 계약체결방식을 전부 ‘수의계약’으로 적시했고, 다른 계열사와의 LPG 매매·연료 공급·제품 거래 역시 경쟁입찰이나 지명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처리했다.
해당 안건은 지난해 12월 11일 열린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3명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의결됐으며, 감사 역시 이사회에 참석해 안건 처리에 참여한 것으로 공시됐다. 수조원대 내부거래가 제3자를 통한 가격 검증 절차 없이 그룹 내부에서만 정해지는 구조라는 점에서 시장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 구조는 지주사 수익과도 맞물려 있다. 공시에 따르면 SK디스커버리는 SK가스 지분 72.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SK가스는 2024년 결산 배당으로 총 718억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했고, 이 가운데 약 518억원이 SK디스커버리로 유입된 것으로 분석된다.
SK디스커버리의 2024년 별도 기준 영업수익은 약 620억원 수준으로, 이 중 83.5%가 SK가스로부터 받은 배당금에서 나오는 셈이다. 계열사와의 수의계약으로 쌓인 이익이 SK가스 배당으로, 다시 SK디스커버리 수익으로 이어지는 자금 순환 구조가 공시 수치를 통해 드러난다.
최태원 회장이 “이사회는 경영진을 견제하는 독립된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돼야 한다”고 강조해 온 그룹의 공식 메시지와 SK가스 이사회의 현실이 괴리를 보인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최창원 부회장이 리밸런싱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돈 안 되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본원적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문해 온 것과 달리, 정작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SK디스커버리는 SK가스의 계열사 내부거래와 고배당에 크게 의존하는 ‘배당 수취형’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타 계열사에는 구조조정을 압박하면서 지주사 아래에서는 계열사 캡티브 물량에 기대 안정적인 배당을 누리는 전형적인 지대 추구 구조가 확인된다”며 “그룹이 내세운 거버넌스 혁신의 설득력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