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최성민 기자]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는 단순 기망을 넘어, 일반인의 금융 계좌와 통신 매체를 범죄의 '숙주'로 삼는 지능적 구조로 진화했다. 특히 고수익 아르바이트나 저금리 대출을 미끼로 통장, 체크카드, 휴대전화 유심(USIM) 대여를 유도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에 가담한 이들은 대개 "직접 사기를 친 것이 아니니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낙관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대법원 사법연감 및 경찰청의 보이스피싱 단속 통계를 살펴보면, 매체 대여자에 대한 처벌 수위는 과거 단순 벌금형에서 최근 실형 선고 위주로 급격히 강화되는 추세다. 사법부는 이제 '몰랐다'는 변명보다, 비정상적인 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미필적 고의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통장이나 카드를 타인에게 양도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다. 법은 대가를 약속하거나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계좌를 대여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대가성'의 포괄적 인정 범위다. 실무상 현금이 직접 오가지 않았더라도 '대출 실행을 위해 실적이 필요하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카드를 보낸 행위는 '대출 기회'라는 무형의 대가를 기대한 것으로 간주되어 처벌 대상이 된다.
또한,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개통해 넘기는 이른바 '내구제 대출'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으로 직결된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이렇게 확보한 대포폰을 수사망을 피하는 방패로 사용하며 제공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의 핵심 조력자로 전락하게 된다. 판례는 사회 통념상 납득하기 어려운 매체 요구에 응한 것 자체가 범죄 가능성을 예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최근 검찰 수사의 흐름은 계좌 대여자를 단순 방조범이 아닌 사기죄의 공동정범으로 기소하는 비중을 높이고 있다. 대여된 계좌가 피해 자금의 세탁 통로로 활용됨으로써 전체 범죄 완성에 있어 '기능적 역할 분담'을 수행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피해 규모가 클 경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이 적용될 위험이 있으며, 이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으로 이어진다. 결국 초기 대응에서의 사소한 판단 착오가 범죄자라는 낙인과 막대한 경제적 파산을 불러오는 결정적 도화선이 되는 셈이다.
보이스피싱 연루 사건은 법적 무지가 면죄부가 되지 않는 영역이다. 수사 기관은 이미 대여자의 금융 패턴과 통신 기록을 바탕으로 유죄의 확신을 가진 채 조사를 진행한다. 따라서 피의자는 자신의 결백을 감정적으로 호소하기보다, 당시 상황의 객관적 비자발성과 기망당한 정황을 법리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수원지검 성남지청 및 서울동부지검 등에서 부장검사로 재직하며 수많은 경제 범죄를 다뤄본 로엘 법무법인 김명희 대표변호사는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보이스피싱 매체 대여 사건의 성패는 항상 수사 초동 단계의 진술에 달려 있다. 검찰은 피의자가 비정상적인 제안을 받았을 때 왜 의구심을 갖지 않았는지를 집중적으로 추궁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진술의 모순을 유죄의 증거로 채택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명희 대표변호사는 “수사기관과 사법부는 행위 당시의 구체적 인지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따라서 피의자가 당시 처했던 절박한 경제적 상황, 상대방의 정교한 기망 수법, 해당 매체가 범죄에 이용될 것임을 알 수 없었던 객관적 사유를 정밀하게 소명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