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온큐, 옥스포드 아이오닉스·스카이워터 확보 이어 SDT와 국내 생산거점 추진
레이저 대신 전류 기반 게이트 기술 확보…이온트랩 양산 난도 낮출 가능성
대량생산·원가 하락 현실화 땐 기존 암호체계 위협하는 'Q-Day' 앞당겨질 수도
통신망 QKD·단말 보안 PUF 부각…아이씨티케이·우리넷 양자보안 수혜 기대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입니다.
[더파워 이경호 기자] 양자컴퓨터가 연구실 안의 실험 장비에서 실제 생산 가능한 산업 제품으로 넘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양자칩을 반복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될 경우 컴퓨팅 성능 경쟁뿐 아니라 기존 암호체계를 양자 공격에 대비해 바꾸는 '보안 전환' 속도까지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장의 관심은 아이온큐가 구축하고 있는 양자컴퓨터 대량생산 체계에 쏠리고 있다. 양자컴퓨터 상용화의 난제로 꼽혀온 확장성과 생산비용 문제가 완화될 경우 기존 공개키 암호체계가 위협받는 이른바 'Q-Day' 역시 예상보다 빨리 다가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이온큐가 사용하는 이온트랩 방식은 개별 이온을 큐빗으로 활용한다. 큐빗 사이 연결성이 높아 복잡한 알고리즘을 구현하는 데 유리하지만 이온을 정밀하게 제어해야 한다는 점이 대규모 시스템 확장의 걸림돌로 꼽혀왔다.
특히 기존에는 레이저를 이용해 이온을 진동시키며 양자 게이트를 만드는 방식이 사용됐다. 시스템 규모가 커질수록 레이저 제어 복잡도가 높아져 대량생산에 불리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아이온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옥스포드 아이오닉스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레이저 대신 전류를 활용해 게이트를 생성·제어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양자컴퓨터를 기존 반도체와 유사한 생산 방식에 한 발 더 가깝게 만드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게이트 생성과 제어 난도가 낮아지면 동일한 구조를 반복적으로 제조하는 데 유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 기반 확보도 이어졌다. 아이온큐는 지난 7월 31일 미국 파운드리 업체 스카이워터를 인수하며 양산 기술 확보에 나섰고, 지난 9월 21일에는 국내 양자 스타트업 SDT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양사는 구미에 아이온큐의 양자 메모리 패키징과 제조, 시스템 조립을 총괄하는 글로벌 허브를 구축할 계획이다. 양자컴퓨터 산업에서 연구개발뿐 아니라 제조와 패키징, 시스템 조립을 연결하는 공급망 구축이 본격화되는 셈이다.
관심은 양자컴퓨터 생산량이 늘어날 경우다.
현재 양자컴퓨터가 기존 암호체계를 당장 무력화할 수준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RSA-2048과 같은 암호를 실제로 해독하려면 막대한 연산능력과 충분한 수의 논리 큐빗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논리 큐빗을 안정적으로 구현하려면 오류를 보정하기 위한 상당한 규모의 물리 큐빗도 필요하다. 결국 얼마나 많은 큐빗을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느냐가 상용화를 결정할 핵심 조건이다.
하지만 양자칩의 대량생산 체계가 현실화되면 계산은 달라질 수 있다.
양산을 통해 칩 생산비용이 낮아지면 양자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기업과 연구기관이 늘어나고 관련 생태계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시스템 활용이 늘어날수록 오류 보정 기술과 양자 알고리즘 개발 속도까지 함께 빨라질 수 있다.
각국 정부와 주요 기술기업이 기존 암호체계가 양자컴퓨터에 의해 위협받는 Q-Day를 2030년대로 예상하고 있는 가운데 대량생산 기술의 진전이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양자컴퓨터의 상용화가 빨라질수록 먼저 움직여야 하는 산업은 보안이다.
기존 인터넷과 통신망에 적용된 암호체계는 양자컴퓨터 시대를 전제로 설계되지 않았다. 실제 공격이 가능한 시점에 보안망을 교체하기 시작해서는 늦을 수 있는 만큼 서버와 통신망, 개별 단말까지 사전에 새로운 보안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통신망에서는 양자키분배(QKD) 기술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양자의 특성을 활용해 통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도청 시도를 탐지할 수 있어 주요 기간망과 통신망을 중심으로 적용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단말과 서버에서는 암호키 자체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복제를 막는 기술의 중요성이 커질 전망이다. 양자보안 시장이 단일 기술보다 네트워크와 서버, 단말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보안을 강화하는 구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는 우리넷과 아이씨티케이가 관련 기업으로 거론된다.
우리넷은 국내 통신 3사 가운데 2곳에 전송장비를 공급하고 있어 향후 통신망의 양자암호 전환이 본격화될 경우 기존 통신망 레퍼런스를 활용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정성과 구축 경험이 중요한 기간망 특성상 기존 장비 공급 경험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이씨티케이는 복제가 어려운 암호 저장수단인 Via PUF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PUF는 반도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유한 물리적 특성을 활용해 개별 칩마다 서로 다른 값을 생성하는 방식으로, 단말 단계에서 암호키를 보호하는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
결국 양자컴퓨터 산업의 변화는 컴퓨터 제조업에만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생산비용이 낮아지고 시스템 확장성이 개선될수록 기존 암호체계를 교체해야 하는 시점 역시 가까워질 수 있어서다.
아직 RSA-2048을 비롯한 기존 보안망이 단기간 내 무력화된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다만 양자컴퓨터의 기술 경쟁이 '몇 큐빗을 구현했느냐'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많이 생산할 수 있느냐'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보안산업에도 중요한 변화다.
양자컴퓨터가 실험실을 벗어나는 순간 양자보안 역시 선택이 아닌 인프라 교체의 문제로 바뀔 수 있다. 아이온큐의 대량생산 체계 구축이 현실화할수록 Q-Day를 대비한 통신망과 단말 보안 투자 역시 예상보다 빠르게 시작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