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다임 기업가치 1000억달러 거론…SK하이닉스 시총의 약 13% 규모
공모 100억달러 가정…신주면 美 투자 재원, 구주매출이면 주주환원 가능성
NPS 상반기 매출 12.25조·순익 5.84조…낸드 실적 급성장도 가치평가 배경
금융당국, 해외 상장도 중복상장 규율 적용 입장…10월28일·12월3일 분기점
/연합뉴스
[더파워 이경호 기자] SK하이닉스의 낸드 자회사 솔리다임을 둘러싼 미국 상장설이 단순한 'IPO 대어'를 넘어 주주가치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기업가치는 1000억달러, 한화 약 136조원에 달하지만 정작 SK하이닉스 주주에게 중요한 것은 몸값 자체보다 상장 전 지분이 어떤 가격에 배분되고 공모로 들어오는 돈이 어디에 쓰이느냐는 분석이다.
특히 같은 100억달러를 조달하더라도 신주 발행과 구주매출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 신주를 발행하면 돈은 솔리다임에 남아 미국 공장 등 성장투자에 쓰일 수 있지만, 구주를 매각하면 현금이 NPS를 거쳐 SK하이닉스로 이동하면서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재원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 가능성과 관련해 시장에서는 기업가치 1000억달러 안팎이 거론되고 있다. 이를 1달러당 1360원으로 환산하면 약 136조원으로, 지난 13일 기준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의 약 13%에 해당하는 규모다.
다만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상장과 관련해 확정된 사항은 없다는 입장이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 사업을 기반으로 한다. SK하이닉스의 미국 법인 NPS가 솔리다임 지분 96.86%를 보유하고 있고, SK하이닉스는 다시 NPS 지분 98.16%를 보유하고 있어 지난 6월 말 기준 솔리다임에 대한 실질 지분은 약 95% 수준이다.
실적 개선도 기업가치 상승 기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NPS 낸드 사업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12조250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3조3600억원의 3.7배 수준으로 증가했고, 순이익은 같은 기간 1300억원에서 5조84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단순히 미래 성장성만으로 높은 몸값이 거론되는 것이 아니라 낸드 사업의 실적 자체가 빠르게 회복된 셈이다.
문제는 솔리다임의 몸값이 높아질수록 상장 전 지분 거래 조건의 중요성도 함께 커진다는 점이다. SK㈜와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은 NPS에 직접 출자하기로 했으며 약정 규모는 각각 2억5000만달러, 4억8000만달러, 3억8000만달러로 총 11억1000만달러에 이른다.
이들 계열사가 상장 전에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NPS 지분을 확보한 뒤 솔리다임의 기업가치가 크게 상승할 경우 그 상승분은 해당 지분을 가진 계열사에 귀속된다. 다만 과거 투자 단가와 향후 상장가의 차이가 크다는 사실만으로 기존 SK하이닉스 주주에게 불리한 거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앞으로 이뤄질 추가 출자와 프리IPO의 가격·조건이 공정한지가 핵심이라는 분석이다.
상장 방식도 주주가치를 가르는 변수다. 공모 전 솔리다임 지분가치를 1000억달러, 조달액을 100억달러로 가정하면 공정한 가격으로 거래된다는 전제 아래 상장 직후 SK하이닉스가 보유하게 되는 지분가치와 현금의 합은 신주 발행과 구주매출 모두 약 129조원으로 비슷하다.
차이는 현금이 어디에 남느냐다. 신주를 100% 발행하면 100억달러가 솔리다임으로 들어가지만, 구주를 100% 매각하면 NPS를 거쳐 SK하이닉스 측에 약 13조3000억원의 현금이 들어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구주매출로 확보한 현금을 SK하이닉스가 전액 주주에게 돌려준다는 극단적인 가정을 적용하면 주당 약 1만8300원에 해당한다. 이는 지난해 주당배당금 3000원의 약 6배 수준이다. 다만 이는 공모 규모를 100억달러로 놓고 전액을 특별배당한다고 가정한 단순 계산일 뿐 실제 회사의 배당 계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신주 발행이 반드시 주주에게 불리한 것도 아니다. 조달된 자금이 솔리다임 내부에 남아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투자에 투입된다면 지분 희석 이상의 기업가치 상승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거론되는 대표적인 투자처는 미국 낸드 생산기지다. 솔리다임은 미국 동부에 낸드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신주 공모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경우 미국 생산시설 투자 재원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생산기지 검토에는 지정학적 배경도 있다. 솔리다임의 주요 낸드 생산거점인 중국 다롄 공장은 지난해 말부터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반입할 때 매년 미국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구조로 전환됐다.
중국 당국 역시 인텔 낸드 사업 인수 당시 기업용 SSD 판매가격과 생산 확대 등에 조건을 부과했고, 5년이 지난 올해 말부터 조건 해제를 신청할 수 있지만 최종 결정은 중국 당국에 달려 있다.
미국 공장을 확보하면 다롄 공장에 들이기 어려운 최신 장비를 사용할 수 있고 생산거점을 분산해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위험도 줄일 수 있다. 결국 신주 발행을 통한 미국 투자가 실제 높은 수익과 공급망 안정으로 이어진다면 단기적인 지분 희석을 장기적인 기업가치 상승으로 상쇄할 수 있다는 논리다.
AI 데이터센터 확대도 솔리다임에 우호적인 환경이다.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은 2024년 415TWh에서 2030년 945TWh로 2.3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같은 전력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고용량 SSD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솔리다임은 122TB QLC SSD를 활용할 경우 HDD와 SSD를 혼용하는 구성보다 설치공간을 최대 4분의 1 수준으로 줄이고 저장장치 전력 사용량도 최대 84% 낮출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AI 데이터센터에서 전력 자체가 핵심 제약으로 부상하면서 고용량·저전력 SSD의 가치가 과거보다 커지는 구조다.
다만 솔리다임 상장을 둘러싼 논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중복상장' 문제다. 금융당국은 해외에서 자회사를 상장하는 경우에도 모회사 일반주주의 권익을 고려하는 중복상장 관련 규율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해외 상장은 국내 거래소의 중복상장 특례심사를 직접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회사 이사회가 주주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주주보호 방안을 마련한 뒤 독립적인 특별위원회 심의를 거쳐 상장 여부를 결정하고 단계별로 내용을 공개하는 절차는 해외 자회사 상장에도 적용될 수 있다.
솔리다임은 물적분할로 만들어진 자회사가 아니어서 모회사 주주동의가 법적으로 필수인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SK㈜와 SK스퀘어, SK하이닉스에 이어 솔리다임까지 상장할 경우 지주회사에서 손자회사 아래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에 네 개의 상장사가 놓이는 만큼 각 단계에서 기업가치와 현금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요구는 커질 수밖에 없다.
박세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솔리다임 상장이 SK하이닉스 주주에게 이익이 되는지는 상장 자체보다 상장 전 출자 가격과 공모 자금의 쓰임, 향후 환원 계획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자회사 상장을 일률적으로 악재로 볼 것이 아니라 어떤 가격에 지분을 나누고 조달한 돈으로 얼마의 수익을 내거나 주주에게 돌려주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일정도 이어진다. SK하이닉스는 오는 28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며 솔리다임과 NPS 관련 향후 계획에 대한 시장의 질문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 이어 12월 3일에는 솔리다임 상장설과 관련한 재공시가 예정돼 있고, 금융위원회의 국내 증권신고서 적용 여부에 대한 유권해석도 남아 있다.
결국 솔리다임 상장설을 바라보는 핵심은 '136조원짜리 자회사가 생긴다'는 단순한 가치 부여가 아니다. 신주 발행으로 미국 공장을 짓는다면 그 투자가 얼마의 수익을 낼지, 구주를 판다면 현금이 실제 SK하이닉스와 주주에게 돌아올지, 상장 전에 계열사와 외부 투자자가 어떤 가격으로 지분을 확보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SK하이닉스 주가의 큰 방향은 여전히 메모리 업황과 AI 수요가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솔리다임 상장이 현실화된다면 지금까지 연결재무제표 안에 묶여 있던 낸드 사업에 별도의 '가격표'가 붙게 되는 만큼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100억달러 안팎의 자금이 어디로 흘러가느냐가 새로운 주주가치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