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최병수 기자]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농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 가능성이 거론되자, 국내 농축산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협상 전략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민감한 품목을 중심으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4일 “농산물도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민감한 부분은 지키되 전체 협상의 큰 틀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발언했다. 이에 전국농민회총연맹을 비롯한 주요 농민단체들은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농축산물 개방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 반대 의사를 밝혔다.
농민단체들은 “식량 주권과 국민 건강권이 위협받는다”며 정부가 미국 측의 농산물 개방 요구에 응할 경우 대규모 투쟁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와 한국농축산연합회 등도 연이어 기자회견과 성명을 통해 정부의 입장 철회를 촉구했다.
현재 미국은 쌀과 소고기, 사과 등 민감 품목의 추가 개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 허용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국은 광우병 위험을 이유로 2008년부터 30개월령 미만 미국산 소고기만 수입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월령 제한이 비합리적이라며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 내에서도 우려가 적지 않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 후보자는 전날 인사청문회에서 “농축산물 시장 개방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며 “관계부처와 충분히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대표 직무대행도 “자동차와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관세 인하와 동시에 농민의 생존권과 식량 주권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쌀 시장 역시 복잡한 사안을 안고 있다. 현재 한국은 연간 40만8천700톤의 쌀을 5% 저율 관세로 수입 중이며, 이 중 32%인 13만2천304톤이 미국산이다. 이를 늘리기 위해선 세계무역기구(WTO)의 승인이나 국회 비준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 쌀 과잉 생산 문제까지 고려하면 농민 반발은 더욱 거셀 것으로 보인다.
사과 등 과일의 경우 검역 협상 절차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국산 사과 수입 요청은 30년 넘게 검토되고 있지만, 검역 절차 8단계 중 아직 2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정부는 검역 협상만으로도 수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아직 농축산물 개방과 관련한 구체적인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상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민 건강을 우선시하며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며 소고기·쌀 등 주요 품목에 대한 수입 확대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영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농산물 시장 개방을 확대한 것이 한국에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요구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