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삿날·명절 아니면 쌀 밥 구경 힘든 농군 아들
고등공민학교 거쳐 남의 집 머슴생활 ‘인생역전’
논일 하다 교복입은 동창들 만나 “죽고 싶었다”
외환위기 때 금융차입 실무…1년간 無휴일 야근
제주 재임시 지자체 첫 에너지公 풍력발전 추진
▲공영민 고흥군수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정무특별보좌역으로 임명되면서 고흥군민들은 공 군수가 고흥군 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진=더파워뉴스 신용원 기자)
[더파워 신용원 기자] 전남·광주 행정통합을 위한 특별법과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최근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정무특별보좌역으로 임명된 공영민 고흥군수가 주목받고 있다. 특별법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국가의 재정 지원의 특례가 뒤따르게 되는데, 고흥군민들은 공 군수가 고흥군 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당대표 정무특보는 이재명정부의 성공과 당대표가 주도하는 전략·정책의 정무적 판단을 지원하고 당 지도부의 의사결정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국회, 정부, 지역 등 다양한 채널과의 정무적 네트워크 구축 및 소통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에 고흥지역 현안을 보다 속도감 있게 진행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최근 군민들 사이에서 공 군수의 과거 어려웠던 시절이 새삼 소환되고 있다. 이에 더파워뉴스는 공영민 고흥군수가 걸어온 생애에 대해 객관적인 자료와 취재를 통해 들여다 봤다.
■입학금 없어 중학교 진학 포기
1954년 2월 2일 전남 고흥군 풍양면 상림리에서 아버지 공대봉(孔大琫)과 어머니 정동심 사이에서 4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살림 때문에 풍양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고흥중학교를 합격했지만, 입학금이 없어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집안에 농사라고 해봐야 산골짜기 천수답(天水畓) 다섯마지기 논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제대로 된 수확을 얻기 힘든 척박한 땅이었다. 제삿날이나 명절이 아니면 쌀밥 구경도 힘든 처지에서 셋째인 그에게 정상적인 중학교 진학은 머나먼 꿈이었다. 보릿고개 시절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남의 집 머슴생활를 마다하지 않았다.
대신 학비가 전혀 들지 않은 비인가 학교인 고흥성중학교(성중고등공민학교)에 입학했고, 집안일을 도우며 10리가 넘는 학교까지 걸어서 다녔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일찍 농사를 체계적으로 배우라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고흥읍 등암리의 친척집으로 농사일을 배우러 갔다. 담배 냄새 찌든 머슴방에서 첫날밤을 뜬눈으로 날을 샜다.
다음날 아침 논일을 하기 위해 나가다가 멋진 교복을 차려입고 고흥농고와 여고로 통학하는 동창들을 만났다. 그 순간 죽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고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서러웠지만, 그는 반드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서 저 친구들 보다 더 성공하리라 다짐했다.
그날 과로한 탓에 저녁에 코피가 터지면서 코와 입으로 흐르자, 놀란 집주인이 다음날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는 다시 공부할 기회를 찾아보기 위해 형이 취직해 있던 경남 마산으로 향했지만, 형도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려운 처지라서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다.
▲재정경제부 사무관 시절 공영민 고흥군수 (사진=더파워뉴스 D/B)
■극장·점방서기에서 철도 공무원
어렵게 형 친구의 도움으로 들어간 곳은 마산의 중심가인 극장이였다. 영화가 끝나면 극장청소와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밤 12시가 넘도록 힘든 나날이었지만, 난생 처음으로 돈을 벌어 저축하기 시작했다. 먹는 것을 아끼기 위해 하루 세끼는 40원짜리 멸치국수 한 그릇으로 때웠다.
그렇게 배고픔을 참으며 서너달 지나니 빈혈증세가 나타났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어느날 리어카에 쓰레기를 싣고 하치장까지 버리고 돌아오다가 그냥 유리가게 유리제품을 깨뜨리는 사고를 내고 말았다. 그날 형 자취방에 들어와 잠을 자다 정신을 잃고 말았다. 형의 걱정과 성화에 못 이겨 다시 고향 고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안일을 거들다가 동네 선배의 소개로 읍내 삼성상회 서기로 취직했다. 마침 주산2단 자격증이 있어 취업이 가능했다. 여름에는 마늘, 겨울에는 김을 위탁 판매하는 곳으로 물건을 트럭에서 내리는 것은 기본이고, 물품대금 지급과 수금하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진학은 못했지만, 처음 봉급을 받는 월급쟁이가 되었고, 위탁자와 상인들을 상대하면서 여러 가지 인간관계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3년을 보낼 무렵 철도청 기능직 선발공고가 신문에 나왔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 몇 가지 과목들을 준비해 마침내 합격했다.
그의 첫 근무지는 강원도 남춘천역이었다. 얼마 후 1년여 만에 입영통지서가 나와 1975년 9월 육군에 입대했다. 철도 공무원 출신이라고 경기도 포천 5군단 직속부대의 수송행정병으로 발탁돼 34개월 동안 행정일을 맡아 했다. 고참들은 정비를 하느라 기름칠투성인데, 그는 편한 사무실에 근무하다보니 그들의 괴롭힘은 지독할 정도였다.
■7급 공채시험 합격…경제기획원 근무
군복무를 마치고 복직한 곳은 경기도 양평의 간이역이었다. 하루 완행열차만 몇 차례 들리는 한가한 덕분에 그곳에서 7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역무경시대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서울역으로 발령 받았지만, 힘든 업무 탓에 야간 학원 강의는 졸기 일쑤였고, 연거푸 낙방의 쓰라린 맛을 보았다.
그때 구세주가 한 명 나타났다. 고향 여자 동창이 자기 친구라며 소개한 여인은 바로 서울역 앞 대우빌딩 외국회사에 다니던 지금의 아내였다. 홀로 외롭게 생활하던 그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81년 9월 결혼해 효창동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결혼 후에도 과중한 업무 탓에 시험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맞벌이 부부였던 아내가 사표를 내고 공부에만 전념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하여 신설동고시원에 들어가 준비한 결과, 그해 1985년 당당히 7급 공채시험에 합격했다.
▲공영민 고흥군수가 민족 대명절 설을 앞두고 관내 노인복지시설과 경로식당을 찾아 어르신들의 안부를 살피며 따뜻한 온정을 나누고 있다.(사진=고흥군 제공)
합격 후 발령대기하면서 고교자격 검정고시도 통과했고, 방송통신대 경제학과에도 입학해 5년 만에 학사학위 취득과 대학졸업장을 받았다. 그는 1987년에 과천 경제기획원으로 발령을 받아 심사평가국에 배치되어 KT, KBS 등 정부투자기관을 관리하는 심가평가국에 배치되었고, 그는 농수산부와 산하기관을 관리하는 업무였다.
딸 둘이 태어났지만, 맞벌이 덕에 큰 어려움 없이 동료들과 술잔이라도 기울일 수 있었고, 효창동에 작은 집도 장만할 수 있었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공직에 진출해 보직이 무엇이던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고, 스스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과로로 위장병 ‘가장 닮고 싶은 상사’ 뽑혀
고흥읍내 마늘 위탁상회에 근무할 때 익혔던 인간관계의 심리는 그의 공직생활에도 많은 보탬이 됐다. 좋아하는 축구, 테니스 등 스포츠에서도 즐기며 최선을 다했다. 1997년 한국은 금융기관의 부실과 차입 위주의 방만한 기업경영으로 인한 대기업의 연쇄 부도, 대외 신뢰도 하락, 단기 외채의 급증 등으로 외환위기를 맞게 됐다.
당시 그는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 종합정책과 사무관으로 근무하면서 금융차입 등 현장의 실무자였다. 1년 이상 휴일도 없이 야근까지 했고, 나중에는 위장병까지 생길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이어 외환위기 책임론까지 불거져 특별감사를 받아야 했고, 구조조정까지 이어졌다.
국세심판원으로 옮겨서 세법을 체계적으로 배웠고, 나름 성실성을 인정받아 종합민원실장, 홍보담당관까지 승승장구했다. 2009년에는 기획재정부 직원들이 뽑은 ‘가장 닮고 싶은 상사’로 뽑힐 정도였다. 그의 포용력이 부하직원들에게도 인정을 받은 셈이었다. 그는 바쁜 업무 중에도 배움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야간 대학원에 진학했다.
■제주도 근무시 ‘제주 글로벌 관광지’화
부이사관으로 승진하면서 당시 우근민 제주도지사에게 발탁돼 제주도 지식경제국장으로 발령받았다. 당초 1년만 있다 복귀할 계획이었지만, 업무보고를 받고 나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 고민 끝에 제주도를 위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보자는 결심이 생겨 아예 제주도로 주소까지 옮겨버렸다.
당시 제주도의 관광산업은 아우성이었다. 인구감소와 불친절, 바가지요금 등 심각한 상태였다. 먼저 제주시 5일장 활성화부터 관광서비스 개선 정책을 추진했으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도 밀어 붙였다. 많은 통신요금 탓에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그 덕에 관광객 붐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제주도가 글로벌 관광지로 거듭나게 된 점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공영민 고흥군수가 지난 2023년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를 초청해 고흥 녹동 신항을 제주 물류 전진기지의 중심지로 발돋움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사진=더파워뉴스 D/B)
재임시절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 에너지공사를 설립해 풍력발전을 추진하였고, 전기차 인프라도 획기적으로 확충했다. 2013년에는 제주발전연구원장이 되어 지하수인 제주삼다수의 수출정책을 추진하는 등 제주비전을 위한 연구를 독려하였고, 퇴임 후에도 (사)제주미래발전포럼을 설립해 좋은 대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가 근무했던 5년 동안 제주도는 매달 인구 1500명 이상 더욱 빠르게 증가했고, 부동산 가격도 과열이 걱정일 정도로 올랐다. 임기 종료 후에는 사단법인 제주미래발전포럼을 설립하는 등 큰 공과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