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2035년 ‘데카코어 프로젝트’ 1조원…10대 초격차 시스템 기술 확보
대기업 첫 진입 중견기업 5년 졸업유예 추진…초보 중견 지원절벽 완화
2030년 앵커기업 960곳·비수도권 중견기업 3780곳 목표…제조 원청 343곳 AI 전환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연합뉴스
[더파워 한승호 기자] 정부가 독자 기술력을 갖춘 ‘앵커형 중견기업’을 키우기 위해 2035년까지 1조원을 투입해 10대 초격차 시스템 기술 확보에 나선다.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더라도 5년간 중견기업 지위를 유지하도록 ‘졸업유예’ 제도를 도입하고, 중소기업을 갓 벗어난 초기 중견기업에는 세제·연구개발(R&D)·금융 지원을 확대한다.
산업통상부는 1일 충남 아산 하나마이크론에서 중견기업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3차 중견기업 성장촉진 기본계획(2026~2030)’을 발표했다. 정부는 독자 기술력을 갖춘 앵커 중견기업 확충과 성장사다리 복원, 지역 중견기업 육성, 인공지능(AI)·탄소중립 전환 등을 4대 전략으로 추진한다.
중견기업은 국내 전체 기업 수의 1.5%에 불과하지만 매출의 15.3%, 수출의 17.9%, 고용의 13.9%를 담당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중견기업은 6474곳으로 매출 1031조원, 수출 1227억달러, 종사자 176만명 규모다.
특히 제조 중견기업의 85%가 소재·부품·장비 기업으로 국내 산업 생태계와 공급망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흐름이 약해지고 중견기업이 다시 중소기업으로 돌아가는 사례가 늘면서 기업 성장사다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정부가 가장 먼저 꺼낸 카드는 ‘데카코어(Deca-core) 프로젝트’다.
중견기업을 중심으로 대학과 연구기관이 참여해 개별 소재·부품이 아닌 시스템 단위의 10대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대형 R&D 사업이다. 2027년부터 2035년까지 총 1조원 규모로 추진한다.
정부는 올해 10월부터 내년 2월까지 산업계와 학계, 연구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기획위원회와 분야별 전문위원회를 꾸려 후보 과제를 발굴한다.
AI 데이터센터용 첨단 공조시스템과 나트륨이온 배터리, 염기교정 유전자치료, 차세대 소형·안전 원자로 등이 초격차 기술 후보 사례로 제시됐다. 다만 이들 기술이 최종 10대 과제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사업은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2027년 월드클래스 플러스 예산 100억원과 2028~2032년 신규 브릿지 R&D 사업 900억원을 활용해 선도 프로젝트 1개를 먼저 가동하고, 이후 사전기획을 거쳐 2029년부터 2035년까지 9000억원을 투입해 9개 과제를 추가 추진할 계획이다.
단순 기술개발에서 끝내지 않고 특허와 국제표준, 판로, 인증, 해외 진출까지 묶어서 지원한다. R&D 초기부터 미국과 유럽 등 핵심시장의 유망·공백특허를 분석해 특허 충돌을 피하고 표준필수특허 확보까지 연계하는 방식이다.
해외 의존도가 높거나 공급망 병목을 일으키는 품목도 별도로 발굴한다.
정부는 무역데이터와 중견기업 수요조사를 토대로 공급망 핵심 병목·해외의존 품목을 선정하고 2028년부터 2038년까지 1000억원 규모의 기술자립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원천기술 개발에 이어 글로벌 수요기업의 사양 채택까지 최장 7년간 지원한다.
특정국 의존도가 높은 품목의 국내 생산을 위해 신규 입지와 설비 투자금의 30~50%를 지원하고, 수요 중견기업이 국내 생산 소재·부품·장비를 구매할 경우 공급망 안정화 기금을 통한 저리 융자도 제공한다.
기업이 커질수록 지원은 줄고 규제는 늘어나는 이른바 ‘성장 역진’ 구조도 손본다.
정부는 중견 후보기업과 매출 3000억원 미만 초보 중견기업, 매출 3000억원 이상 선도 중견기업으로 성장단계를 나누고 R&D부터 실증·생산·수출까지 지원을 연결한다.
초보 중견기업에는 중소기업에서 받던 혜택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지원절벽’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중견기업으로 처음 진입한 기업에는 3년간 중소기업 특별세액감면의 50% 수준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현재 중기업의 법인세 감면율이 소재지와 업종에 따라 5~15%인 점을 고려하면 초기 중견기업에는 2.5~7.5% 수준의 감면을 적용하는 구상이다.
초보 중견기업이 연구인력을 새로 채용하면 연봉의 50%를 3년간 지원하는 방안도 담겼다. 비산배출시설 정기점검 비용과 온실가스 감축설비 설치비용 지원, 정책금융 제공 등도 추진한다.
중견기업 혁신펀드는 올해 2000억원에서 2030년 5000억원으로, 5대 은행이 참여하는 중견기업 밸류업펀드는 4조5000억원에서 7조2000억원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중견기업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활용을 늘리기 위해 펀드별 외부자금 출자비중 제한을 현행 40%에서 50%로 완화하고 해외투자 비중도 20%에서 30%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한다.
선도 중견기업에는 해외 대형 프로젝트 수주 지원을 강화한다. 코트라와 수출입은행, 해외건설협회 등이 확보한 해외 발주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발주처 면담과 현지 마케팅을 연계한다. 프로젝트별로 필요한 협력기업을 매칭하고 타당성 조사와 입찰 준비 비용, 이행보증과 선수금환급보증까지 지원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중견기업 졸업유예’다. 중견기업이 성장해 처음 대기업 요건에 해당하더라도 5년간 중견기업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기업이 대기업으로 올라서는 순간 규제와 지원체계가 급격히 바뀌면서 성장을 주저하는 문제를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졸업유예 도입을 위해 중견기업법 개정을 추진한다. 현재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진입할 때 5년간 졸업유예를 적용하는 제도를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넘어가는 단계까지 확대하는 셈이다.
기업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 규제 체계도 전면적으로 들여다본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굴한 343개 규제와 추가로 파악한 법률을 토대로 총 88개 법률을 조사하고 창업·투자·생산·판로·노무관리 등 기업 성장 과정별 규제 부담을 분석할 계획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만 기업을 나누는 법령도 정비 대상으로 삼았다. 하도급법이나 상생협력법처럼 ‘중소기업이 아닌 기업’을 사실상 대기업과 동일하게 취급하면서 중견기업의 별도 지위를 반영하지 못하는 제도를 찾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독자 기술력을 토대로 공급망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앵커기업’ 비중을 현재 32%, 687곳에서 40%, 960곳으로 높이는 목표를 세웠다.
중견기업 매출 점유율은 현재 15%, 1031조원 수준에서 2030년 30%, 1590조원까지 확대하고 비수도권 중견기업 비중도 36%, 2339곳에서 50%, 3780곳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지역 중견기업 육성에도 정책 역량을 집중한다. 정부는 ‘5극3특’ 성장엔진과 연계한 지역 핵심 중견기업의 13조7000억원 이상 투자를 뒷받침하고, 성장엔진특별보조금과 국민성장펀드 등 정책금융을 연계할 계획이다.
R&D·투자세액공제에는 수도권에서 멀수록 혜택이 커지는 ‘지역우대지수’를 도입해 최대 1.5배까지 차등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지역 중견기업이 청년 석·박사와 기술전문가를 채용하면 연봉의 40%를 3년간 지원하고 산업기능요원 배치도 확대한다. 중견기업 임직원을 위한 특화 공공임대주택 공급 활성화와 자율형 공립고 추가 지정, 기업 직원 자녀 선발 특례 확대도 추진한다.
지역 앵커 대기업이 해당 지역 중소·중견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일정 비율 이상 구매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지역의 중견기업을 협력 중소기업을 이끄는 ‘마이크로 대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AI 전환에도 속도를 낸다. 정부는 소재·부품과 엔지니어링, 엔터프라이즈, 에너지 등 4개 분야에 중견기업용 AI 모델을 발굴하고 2030년까지 제조 원청 중견기업 687곳 가운데 절반인 343곳의 AI 전환을 지원한다.
이를 위해 민관 합동으로 약 2000억원의 재원을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기업 매칭과 역량 진단, 전략 수립 등을 지원하는 ‘중견기업 AX 지원단’과 별도 AX 펀드도 추진한다. 별첨_261001 제3차 중견기업 성장촉진 기본계획
철강과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탄소 다배출 업종에는 친환경 전환 지원을 확대한다.
탄소중립 설비와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중견기업에는 최대 10년, 최저 1.3% 수준의 저리 자금을 지원하고 감축효율이 높은 설비에는 기업당 최대 50억원까지 투자비용을 보조한다.
공장 안전 투자도 별도 지원한다. 2027년부터 연간 100개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화재·안전설비 투자 대출에 2%포인트 이차보전을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기업별 대출 한도는 최대 20억원이다.
내수 중심 중견기업의 수출기업 전환도 확대한다. 현재 중견기업의 약 71%인 4500곳이 내수 중심 기업인 가운데 정부는 2030년까지 300곳의 수출 전환을 지원한다. 수출 잠재기업 선정 규모를 기존 연간 20~30곳에서 50곳 이상으로 늘리고 수출바우처 한도도 1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확대한다.
해외 배송료 최대 60% 할인, 수출 초기자금 금리 우대, 수출신용보증 한도 확대, 해외인증과 법률·관세 컨설팅 등 19개 기관의 지원도 묶어서 제공한다.
정부는 이날 2026년 ‘월드클래스 플러스’ 신규 선정기업 10곳도 발표했다.
코미코와 원익홀딩스, 삼진제약, 네추럴웨이, 휴메딕스, 새한산업, HT로보틱스, 카이엠, 한중엔시에스, 진합이 올해 신규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월드클래스 플러스는 성장 잠재력과 기술역량을 갖춘 중견기업과 중견 후보기업을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육성하는 사업이다. 선정기업에는 R&D부터 금융·수출·컨설팅·인력·법률까지 기업 활동 전반을 지원하며 기업당 최대 4년간 50억원을 지원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중견기업은 우리 경제의 허리이자 대·중소기업의 가치사슬을 연결하는 대한민국 경제의 미들파워"라며 "중소기업의 유연성과 민첩성, 대기업의 자본력과 기술력을 고루 갖춰 우리 경제에 혁신과 역동성을 제공할 주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성장이 곧 국가경제 전체의 성장인 만큼 중견기업이 독자 기술력을 갖춘 앵커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가 성장사다리를 놓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