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원자력 기술의 종주국인 미국에 연구용 원자로 설계 기술을 수출하는 데 성공하며, 원자력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7일,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현대엔지니어링, 미국 MPR사가 참여한 컨소시엄이 미국 미주리대학교가 국제 경쟁입찰로 발주한 '차세대 연구로 사업(NextGen MURR 프로젝트)'의 첫 단계인 초기설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은 열출력 20메가와트(㎿)급 고성능 신규 연구로 건설을 위한 설계 사업으로, 초기설계는 개념·상세 설계에 앞서 건설 부지 조건, 환경영향평가 등 사전 정보를 분석하는 단계다. 해당 사업은 기존 연구로(MURR)가 1966년 가동을 시작해 노후화됨에 따라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해 추진됐다.
컨소시엄은 지난해 8월 사전 자격심사를 통과하고, 같은 해 7월 최종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뒤, 이번 초기설계 계약을 확정지었다.
미주리대차세대연구용원자로노심집합체개념도
과기정통부는 이번 수출을 "1959년 미국으로부터 연구용 원자로 1호기(TRIGA Mark-Ⅱ)를 도입한 지 66년 만에 종주국에 역으로 설계 기술을 수출하는 쾌거"라고 평가했다. 이는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기술력을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특히, 세계 유일의 고성능 연구로 핵연료 기술이 이번 수주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고성능 핵연료는 우라늄 밀도를 높여 핵확산 저항성과 연구 효율성을 동시에 향상시킨 것이 특징이다. 해당 기술은 요르단, 말레이시아, 네덜란드 등 다양한 해외 연구로 사업 수행을 통해 이미 실증된 바 있다.
한국은 1995년 국내 최초 연구로 '하나로'를 자력으로 설계·건설·운영하며 기술 자립을 이룬 이후, 요르단, 방글라데시 등으로 연구로 관련 기술을 수출해왔다. 특히 2017년에는 요르단 연구로를 설계·건설했고, 2024년에는 네덜란드 델프트 연구로 냉중성자원 제작·설치 사업에도 참여했다.
과기정통부는 이번 계약을 계기로 오는 6월 연구로 해외 진출 강화 전략을 마련해 ▲연구로 수출 전략성 강화 ▲민관 협력형 수출기반 조성 및 기술 고도화 ▲국제협력 확대 등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노후화된 연구로의 교체 수요가 커지고 있는 만큼, 수출 시장 확대 가능성도 높다는 분석이다.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번 사업 수주는 과거 한국이 원자력을 도입할 때 도움을 줬던 미국에 역으로 기술을 수출하게 된 역사적인 사례”라며 “정부는 원자력 기술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워 글로벌 기술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강조했다.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도 “이번 수주는 연구원이 개발한 세계 유일의 고성능 핵연료 기술과 높은 설계 능력, 민간의 해외 사업 역량이 결합된 결과”라며 “국민의 지지를 받아 축적한 원자력 연구 성과를 실물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