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전부문에 대한 배출권 유상할당 비율을 현행 10%에서 50%로 대폭 상향할 경우, 제조업 전기요금이 연간 약 5조원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22일 신동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에 의뢰한 ‘배출권거래제의 전기요금 인상효과’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에서 발전부문 유상할당 비율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구체적인 할당 비율은 올해 상반기 발표 예정인 ‘제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을 통해 제시될 예정이다.
보고서는 환경급전 제도를 반영한 ‘M-Core’ 모형을 기반으로, 배출권 가격과 유상할당 비율에 따른 전력도매가격 및 소매전기요금의 변화폭을 시뮬레이션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유상할당 비율을 50%로 인상하고 배출권 가격을 톤당 3만 원으로 가정할 경우, 제조업 전기요금은 연간 약 5조 원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전자·통신 5,492억 원, 화학 4,160억 원, 1차금속 3,094억 원, 자동차 1,786억 원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의 부담이 특히 클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발전부문 유상할당 비율의 “대폭” 상향이 아닌 “점진적” 상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은 배출권거래제 참여로 인해 직접적인 배출권 구매는 물론,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간접적 부담까지 이중으로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유상할당 배출권의 경매수익은 기후대응기금 재원으로 활용되나, 해당 기금이 소규모·단기성 사업에 치중되어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미흡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보고서는 유상할당 비율 상향에 앞서 기후대응기금의 구조적 개편과 같은 선결 과제 해결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 주요국의 사례도 인용됐다. 독일은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응해 전기요금을 대폭 인하하고 탄소배출권 구매비용을 보조하는 전력 요금 패키지를 도입했으며, 일본도 기업 전기요금 보조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 역시 전력산업기반기금 완화 또는 기후대응기금을 통한 전기요금 지원 등 산업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현재의 의무 참여 방식의 배출권거래제를 자발적 참여 및 인센티브 기반 제도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일본은 기업이 스스로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이행하도록 유도하는 체계를 운영 중이며, EU도 기업의 환경 규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옴니버스 패키지’를 발표한 바 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최근 미국이 관세조치를 통해 제조업 공급망의 자국 내 회귀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다”며 “탄소중립과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유연한 기후정책 수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