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삼성 임원들에게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며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2심 공판 최후진술에서 "최근 들어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는 이 회장이 이번에 ‘사즉생’까지 언급한 것은 그만큼 삼성이 처한 복합 위기 상황이 기업의 생존과 직결될 정도로 심각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 회장의 메시지를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지난달 말부터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 계열사의 부사장 이하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에서는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과 고 이건희 선대회장 등 오너 일가의 경영 철학이 담긴 영상이 상영되었으며, 여기에 이재용 회장의 기존 발언들과 올해 초 신년 메시지로 준비했던 내용 일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회장이 영상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았다.
이 회장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며 "경영진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위기라는 상황이 아니라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라며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그간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며 기술 경쟁력을 강조해왔다. 이번 교육에서도 기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미래 대비를 위한 연구개발(R&D) 및 시설투자 확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사업에서 범용(레거시) 메모리의 부진과 고대역폭 메모리(HBM) 납품 지연 등으로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기록했다. 또한 2024년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TV 시장 점유율은 2023년 30.1%에서 28.3%로, 스마트폰은 19.7%에서 18.3%로, D램은 42.2%에서 41.5%로 하락하는 등 주요 제품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전반적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미래 대비를 위한 연구개발비와 시설투자비는 각각 35조 원과 53조 6,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사업 확장을 위한 삼성의 장기적 투자 전략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세미나에 참석한 임원들에게는 각자의 이름과 함께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라고 새겨진 크리스털 패가 주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자는 "여기(크리스털 패)에 새겨진 내용이 사실상 이번 세미나의 핵심"이라며 "‘삼성다움’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독한 삼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세미나에서는 외부 전문가 강연을 통해 "실력을 키우기보다 ‘남들보다만 잘하면 된다’는 안이함에 빠진 것이 아니냐", "상대적인 등수에 집착하다 보니 질적 향상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등의 지적도 제기됐다. 참석자들은 내부 리더십 교육 및 세부 주제별 토론을 통해 위기 대응 전략과 리더십 강화 방안을 모색했다.
그룹 전반의 복합 위기 타개를 위해 지난해 말 삼성글로벌리서치 산하에 신설된 경영진단실은 올해 1월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시스템LSI 사업부에 대한 경영진단에 착수했다.
또한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의 미래 사업 발굴을 위한 ‘신사업 태스크포스(TF)’를 신사업팀으로 격상하며 미래 먹거리 발굴과 대형 인수·합병(M&A) 추진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한편 삼성인력개발원이 주관하는 이번 세미나는 임원의 역할과 책임 인식 및 조직 관리 역량 강화를 목표로 경기 용인 인력개발원 호암관에서 다음 달 말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삼성이 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은 2016년 이후 9년 만으로, 앞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임원 대상 특별 세미나를 열었던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