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록의 책을 통해 세상 읽기] 토마 피케티의 '평등의 짧은 역사'
김문수 후보는 기업의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4%에서 21%로, 상속세는 최고세율을 50%에서 30%로 인하하겠다는 첫 번째 공약을 발표했다. 김 후보 개인의 철학이라기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포함한 보수 경제 정책의 전형적인 기조에 가깝다. 윤석열 정부 역시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겠다고 했다.
법인세 인하가 실제로 투자나 일자리로 연결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1980년대 미국, 레이거노믹스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대폭적인 감세가 이루어졌지만, 그 시기 미국의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이는 법인세 인하와 투자·고용 사이의 연결고리가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 정치의 조세 담론은 여전히 이 ‘감세가 성장으로 이어진다’라는 구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치 1980년대 신자유주의 도입기 언저리에 있는 듯하다. 이 기회에 최근 읽은 토마 피케티의 『평등의 짧은 역사』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이 책은 조세와 평등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조망하며, 한국 사회가 참고할 만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평등은 정치적 선택의 산물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불평등은 결코 ‘자연 상태’가 아니며, 사회적·역사적·정치적 구성물이라고 강조한다. 소유와 경제체제, 사회와 정치 제도, 조세와 교육 설계 방식에 따라 불평등의 정도는 달라진다. 모든 형태의 부는 국제 노동 분업, 천연자원의 공동 사용,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의 결합에서 비롯되며,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정치적 선택의 결과물이다.
그는 18세기 말 이후 평등을 향한 장기적 흐름이 존재해 왔다고 본다. 이는 지배 계층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고안한 기존의 불평등한 제도들을 대중적 투쟁을 통해 보다 공정하고 해방적인 규칙으로 대체해 온 과정이었다. 물론 이런 변화들은 대체로 대규모 사회운동이나 정치적 위기를 수반했다.
또한 저자는 불평등한 권력 구조를 전복하는 데 투쟁과 권력이 필수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실질적인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안적 제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이는 곧 숙의와 타협, 다양한 실험의 과정을 요구한다. 권력을 경시하거나 신성시해서는 안 되며, 정의로운 제도 설계와 평등한 논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인류의 진보는 ‘투쟁의 결과’였다. 1820년 26세에 불과하던 기대 수명은 2020년에는 72세로 늘어났고, 초등학교 진학률이 10%에 불과했던 시대에서 이제는 선진국의 절반 이상이 대학에 진학한다. 20세기 초반까지 중간계급 40%는 하위 계층 못지않게 가난했지만,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에는 중간계급이 자산을 형성하고, 그 몫이 전체의 40%에 이르렀다. 이는 상위 1%가 차지하는 몫의 거의 두 배다.
이 평등의 진전은 우연이나 시장의 자율 조정이 만든 결과가 아니다. 핵심은 ‘대규모 재분배’다. 피케티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내내 실현된 사회국가 체제, 교육과 의료 등 기초 재화에 대한 접근권 확대, 그리고 상위 소득과 자산에 대한 강력한 누진세가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고 강조한다.
특히 두 차례 세계 대전과 1929년 대공황은 ‘사회적 국가’의 급속한 부상을 가속했다. 1914년부터 1945년까지 불과 31년 동안 노동과 자본의 권력관계는 극적으로 재편되었다. 이 시기 강력한 누진세는 상층 계급에 집중되던 경제 권력을 분산시켰고, 계층 이동과 번영을 촉진했다. 1932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에서 최상위 소득에 적용된 평균 세율은 무려 81%에 달했다. 영국, 프랑스, 스웨덴, 일본 등도 유사한 경로를 밟으며 누진세 체계를 강화했다.
두 번의 조세 재정 국가 도약
피케티는 ‘조세 재정 국가’가 두 번의 도약을 거쳤다고 본다. 첫 번째 도약은 1700년에서 1859년 사이, 유럽 주요 열강의 세수가 국민 소득의 1~2%에서 6~8%로 증가한 시기다. 이때 세금은 군비 확충과 제국주의적 팽창, 식민지 경영을 위해 동원되었다. 엘리트 중심의 국가는 타국과의 경쟁을 국가 운영의 중심축으로 삼았다.
두 번째 도약기인 1914~1980년에는 세금의 목적이 확연히 달라진다. 국가는 복지 지출을 중심으로 움직였고, 그 최대 수혜자는 서민과 중산 계층이었다. 물론 국가 간 경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 국가는 ‘사회적 국가’로 변모했으며, 누진세는 자본주의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피케티는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의 충격과, 볼셰비키 혁명이 서구 자본주의 엘리트에게 준 위기의식이 없었다면, 이렇게 빠른 제도적 전환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독자가 스스로 판단해 보길 바라며 물음표만 던진다.
결론: 평등은 정치적 선택이다
이 책은 단순한 경제사나 통계 분석서가 아니다. 그것은 평등을 향한 정치적 선택의 역사이며, 권력 투쟁과 제도 설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피케티가 줄곧 강조하듯, 불평등은 자연적인 것도 아니고 필연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제도를 선택하고,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정치의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감세 공약은 단순한 세율 조정 문제가 아니다. 어떤 방향의 정치적 선택을 할 것인가?, 지금 한국 사회가 어떤 자본주의를 유지하거나 전환할 것인가를 묻는 문제다. 피케티가 되짚은 역사처럼, 진정한 평등은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갈등과 숙의, 그리고 집단적 선택을 통해 얻는 성취다.
덧붙이는 말: 저자는 1,000쪽에 달하는 『20세기 프랑스 상위 소득』, 『21세기 자본』,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출간했다. 『평등의 짧은 역사』는 어떤 독자가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짧게 써줄 순 없겠습니까?”라고 요청해서 쓴 책이다. 처음 피케티를 접하는 독자에겐 훌륭한 입문서가 될 수 있다.
글: 이병록 예비역 제독·국민주권전국회의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