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의 킥 ⑦농심] '라면왕' 별세...후계자 신동원,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코로나19·기생충·라끼남 특수에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 기록
올해 실적 낙관 어려워... 북남미 시장 공략으로 선방할까

유통 2021-04-28 15:14 이지웅 기자
[더파워=이지웅 기자]
'셰프의 킥(kick)'이라는 표현이 있다. 요리를 한순간에 특별하게 하는 셰프의 결정적 한 수, 즉 '묘수'를 의미한다. 최근 소비 환경이 달라지면서 유통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유통기업들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저마다 킥을 선보이고 있다. 더파워뉴스는 치열한 생존전략에 몰두하고 있는 기업의 킥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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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원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 [사진제공=농심]


국내 라면 점유율 1위인 농심을 56년 동안 이끌어온 '라면왕' 신춘호 농심 회장이 지난달 27일 91세로 영면에 들면서 그의 장남인 신동원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 부회장은 1979년 농심에 정식으로 입사한 뒤 재경, 구매, 기획, 마케팅, 국제업무 등 실무를 두루 담당하면서 오랫동안 경영수업을 받았다. 2000년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라 20여 년간 농심의 실무 전반을 이끌고 있으며 2010년부터는 농심그룹의 지주회사인 농심홀딩스 대표이사 사장을 겸하고 있다.

신 부회장은 지난해 9월 기준 농심홀딩스 지분 42.92%를 확보하며 사실상 승계 작업을 완료했다. 현재 회장 자리에 오를 시기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 부회장은 농심의 세계화를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일찍부터 '해외시장 경쟁력이 곧 농심의 미래'임을 강조해왔다. 농심은 1996년 중국 상하이에 라면 공장을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글로벌 공략에 나섰는데, 신 부회장이 이듬해 농심 국제담당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오르며 선봉장 역할을 했다. 이후 그는 1997년 칭다오 공장, 1999년 선양 공장 등 중국 내 생산시설을 확충한 뒤 2005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공장까지 세우면서 전 세계에 농심 라면 브랜드를 알리는데 힘써왔다.

공장 구축 등 외형 확장뿐 아니라 생산성 및 품질 향상 등 글로벌 공략을 위한 내실 다지기에도 나섰다. 실제로 그는 부회장 자리에 오른 뒤 글로벌 정보시스템 구축, 국외사업 추진 강화, 첨단 제조설비 구축, 국제 품질인증시스템 도입, 글로벌 인재 양성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바 있다.

지금까지 신 부회장은 포화 상태였던 국내 라면 시장에서 눈을 돌려 해외시장을 공략하며 혁혁한 성과를 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결실은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으로 돌아왔다.

농심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2조6398억원, 영업이익 1603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전년도와 비교해 매출은 12.6%, 영업이익은 103.4% 늘어난 규모다. 당기순이익 역시 1490억원으로 전년 대비 109.7% 늘었다.

역대 최대 실적 견인차는 '해외시장'... 코로나19 간편식 수요 '신라면'이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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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농심]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은 농심에게 오히려 호재를 불러왔다. 코로나19로 인한 간편식 수요와 맞물려 전 세계에서 라면 소비가 급증한 것이다. 이에 농심은 중국과 미국 현지 생산 라인을 풀가동하고 수출 물량을 늘리면서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농심은 지난해 해외 매출 9억9000만달러(약 1조1271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해외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선 것은 사상 처음으로 라면을 해외에 첫 수출한 1971년 이후 50년 만의 성과였다. 그동안 공들여왔던 해외시장 공략이 코로나19와 만나 탄력을 받은 것이다.

글로벌 라면 시장 점유율 역시 확대 중이다. 지난해 11월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가 발표한 세계 라면 기업 순위에서 농심은 점유율 5.7%를 기록하며 5위에 랭크됐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농심의 상승세가 글로벌 경쟁사들에 비해 빠르다는 점이다.

농심은 2017년 5.0%에서 3년 만에 점유율을 5.7%로 끌어올렸다. 반면 1, 2, 3위를 나란히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캉스푸(13.4%), 일본의 닛신(9.9%), 인도네시아의 인도푸드(7.5%)는 3년째 점유율에서 큰 변동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농심은 3위인 인도푸드와 점유율 차이가 1.8%p로 좁혀져 몇 년 안에 세계 3위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참고로 2019년 기준 중국과 인도네시아 내 라면 소비량은 각각 414억5000만인분, 125억인분이다. 글로벌 점유율 1위 캉스푸와 3위 인도푸드의 판매량 대부분은 자국 내수 시장의 엄청난 소비량 영향이다.

농심 라면의 인기는 반세기 동안 해외시장을 공략한 결과다. '일등공신' 신라면은 현재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판매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지난해 신라면 해외 매출액은 전년 대비 약 30% 성장한 3억9000만달러(약 4435억원)로 예상된다. 이는 농심 해외사업의 약 40%가량을 차지할 만큼 독보적이다.

해외 언론 역시 신라면에 대한 칭찬 일색이다. 지난해 6월 '뉴욕타임즈'의 제품 리뷰 사이트 '와이어커터'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 1위로 신라면블랙을 선정했다. 와이어커터는 "신라면블랙은 한국 1등 신라면의 프리미엄 버전"이라며 "설렁탕 후첨 양념이 들어간 진한 소고기 육수와 적절한 매콤함, 슬라이스 마늘과 큼지막한 버섯 조각, 쫄깃한 면발이 주는 훌륭한 식감의 조합이 매력"이라고 소개했다.

이외에도 글로벌 여행 전문 사이트 '더 트래블'과 미국 초대형 유튜브 채널 'Good Mythical Morning'도 세계 최고의 라면으로 각각 신라면블랙과 신라면을 꼽았다.

좋은 상품성에 걸맞는 유통망 확보도 필수적이다. 농심은 2017년 국내 식품업계 최초로 글로벌 유통사 월마트의 미국 내 전 점포에 입점했고, 2020년부터 코스트코, 크로거 등 해외 유통사로 판매망을 확장해갔다. 그 결과 지난해 캐나다를 포함한 미국법인 매출은 약 3억2600만달러(약 3708억원)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약 28% 상승했다. 특히 미국은 중국 법인을 제치고 농심의 해외사업 선두자리로 올라섰다.

농심은 유럽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영국의 테스코·모리슨·아스다, 독일의 레베·에데카 등 대형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영업망을 확보해 코로나19 이후 증가하는 현지 라면 수요에 적극 대응했다. 지난해 유럽 수출액은 전년 대비 30% 정도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 유튜브 등 인기 콘텐츠 활용한 마케팅으로 소비자 확보

농심은 국내 라면 시장에서 꾸준히 과반이 넘는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농심의 국내 라면 시장 점유율은 55.4%로 전년 동기 대비 1.4%p 증가했다.

지난해 상반기 라면별 매출 순위를 살펴보면, 신라면, 짜파게티, 안성탕면, 진라면매운맛, 팔도비빔면 등 5개 제품이 '톱5'에 안착했다. 농심은 상위 1~3위를 휩쓸며 국가대표다운 면모를 뽐냈다. 다만 해당 통계는 개별 제품을 기준으로 잡아 진라면과 너구리 등의 경우 순한맛과 매운맛을 따로 집계했다.

1991년부터 30년째 꾸준히 1위를 달리고 있는 신라면은 차치하고, 짜파게티와 안성탕면의 인기가 눈길을 끈다. 두 브랜드 모두 지난해 온라인에서 사랑받으며 라면 열풍을 이끈 주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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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파게티 [사진제공=농심]


먼저 지난해 유난히 뜨거웠던 짜파게티의 인기는 같은해 2월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시작됐다. 영화에 등장한 '채끝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가 전 세계 관객들의 침샘을 자극했다. 일부 유통점에서는 품절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반응은 소셜미디어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라면 브랜드 중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게시물 수 1위는 단연 짜파게티다. '#짜파게티'는 22만3000개에 달한다. 2위 '#불닭볶음면'(19만4000개). 3위 '#신라면'(14만6000개), 4위 '#진라면'(7만개)을 크게 앞서는 수치다. 지난해 짜파구리를 향한 소비자 사랑이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기에 힘입어 짜파게티는 지난해 약 3억4000만개가 팔려나갔다. 1년 동안 전 국민이 7개씩 먹은 셈이다. 짜파게티는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2190억원)을 기록하며 라면 시장에서 세 번째로 '2000억원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다.

해외에서도 짜파구리 인기는 뜨거웠다. 지난해 2월 짜파게티 해외 매출은 120% 증가한 150만달러(약 17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월간 최대 실적이다. 가장 많이 팔린 나라는 미국으로 2월 매출만 70만달러(약 8억원)에 달했다. 또한 수출하지 않았던 칠레, 바레인, 팔라우, 수단 등의 나라에서도 짜파게티 수입을 요청해 수출국이 70여개국으로 늘어났다.

농심은 때를 놓치지 않고 짜파구리 홍보에 박차를 가했다. 다양한 언어로 짜파구리 조리법을 소개하고, 현지 영화 포스터 패러디와 조리법을 넣은 홍보물을 만드는 등 짜파구리 알리기에 집중했다.

지난해 4월에는 글로벌 소비자들의 요청에 짜파구리를 용기면으로 만들어 출시했다. 해외 소비자들이 짜파구리가 짜파게티와 너구리의 조합인 줄 모르고 마트에서 짜파구리를 찾는 헤프닝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 소비자들이 짜파구리 조리에 익숙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편리한 용기면으로 제작했다. 국내에서는 '불닭볶음면'이 이끄는 매운맛 열풍에 따라 '앵그리 짜파구리' 용기면을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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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탕면 [사진제공=농심]


안성탕면의 활약도 대단했다. 통상 5위권 안팎에 자리했던 안성탕면이 3위에 오른 것이다.

안성탕면 인기에는 유튜브 콘텐츠 '라끼남'이 큰 몫을 했다. 2019년 12월 첫 방송된 '라끼남'은 방송인 강호동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라면 먹방을 선보이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강호동은 안성탕면에 대해 '어떤 재료든 잘 어울리는 도화지 같은 라면'이라고 소개하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안성탕면이 큰 인기를 끌자 방통위는 도 넘은 광고 효과를 줬다며 경고 제재를 내렸지만, 농심은 속으로 웃었다. 안성탕면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 전년 대비 34.9%나 성장했다.

호실적임에도 웃을 수 없는 신동원... K-라면 세계화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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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농심]


농심의 역사를 새로 쓴 지난해 실적은 오히려 신 부회장에게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농심을 정점에 올려놓은 고 신 회장의 후광을 넘어서 올해에도 기대를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올해 농심이 지난해와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코로나19와 영화 '기생충' 등 연이어 터진 호재가 일회성이 짙기 때문이다. 또한 농심은 코로나19 타격을 이제서야 받기 시작했다. 곡물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현재 라면 값을 유지하면 수익성은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호실적은 보장할 수 없다. 필수 소비재인 라면 가격 인상을 고려할지, 인상한다면 소비자 반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신 부회장이 풀어야 할 과제다.

신 부회장은 글로벌 판매량을 더욱 높여 실적을 방어하는 전략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농심은 미국 제2공장 설립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북남미 시장 공략에 나설 방침이다. 농심은 제2공장이 미주 시장 내 안정적인 공급량 확보는 물론 남미 시장 공략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농심은 2019년 9월 2억달러(약 2300억원)를 투자해 미국 LA 제2공장 설립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기존 LA 제1공장의 생산량이 포화 상태에 이른 데다 앞으로 더욱 높아질 미주 시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농심은 올 연말까지 제2공장 설립을 마무리해 미주 시장 성장에 힘을 보탤 계획이다. 제2공장에는 유탕면 2개 라인(봉지·용기)과 건면, 생면 라인 등 4개 라인이 구축될 예정이다. 농심이 해외에 건면·생면 라인을 구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설비가 갖춰지면 제2공장에서만 연간 약 3억5000만개의 라면을 생산할 수 있다. 기존 제1공장 연간 라면 생산량 5억개를 합치면 연간 총 8억5000만개 라면을 미주 시장에 공급할 수 있게 된다.

농심은 제2공장과 함께 올해 미국 라면 시장에서 우위를 갖고 있는 일본 기업들의 아성을 깬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미국 라면 시장 점유율 1, 2위는 일본의 도요이스산과 닛신이다. 점유율 22%를 확보하고 있는 농심은 2위 닛신(24%)을 바짝 추격 중이다.

아울러 농심은 미주 시장 성장세에 힘입어 올해 글로벌 매출 목표치를 1조3000억원으로 세우며 K-라면의 세계화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지웅 더파워 기자 news@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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