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국내 자본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인 3조6천억원의 유상증자를 전격 발표하면서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톱 티어’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선제적 투자 결정이라는 회사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주주가치 희석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며 주가가 급락하고 있다.
21일 오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3% 이상 하락한 62만원 선에 거래됐다. 전날 유상증자 소식이 전해지자 시간외 거래에서 하한가까지 떨어졌고, 정규장에서도 낙폭을 키웠다. 같은 날 한화 그룹주 전반과 여타 방산주들도 일제히 약세를 보이며 유상증자의 충격파가 시장 전반에 미쳤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1조7319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와 내년 각각 2조8천억원, 3조5천억원대의 영업이익을 예상하고 있으며, 3년간 6조원 이상 수익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현금 및 현금성 자산만 해도 약 3조원에 달한다.
이런 배경 속에서도 회사는 3조6천억원 규모의 대규모 증자를 추진했다. 자금은 △1조6천억원 해외 현지 공장 및 방산 협력 지분 확보 △9천억원 국내 사업장 △8천억원 미국 해양 방산·조선 생산거점 구축 등에 쓰일 예정이다.
회사 측은 “지금 투자 기회를 놓치면 도태될 수 있다”며 글로벌 지정학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자금을 조기에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증권가는 대체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투자 방향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유상증자라는 자금조달 방식에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회사의 영업이익과 현금흐름만으로도 충분히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주 가치 희석을 감수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이다.
삼성증권, 다올투자증권, DS투자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삼성증권은 “주가가 연초 대비 2배 이상 상승한 상황에서 고점 인식 우려가 커졌다”며 신중론을 제기했다.
이번 유상증자는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진행되며, 신주 배정일은 4월 24일이다. 구주주 청약은 6월 3일부터 이틀 간 진행된다. 실권주 일반공모는 6월 9~10일로 예정돼 있다.
총 595만500주가 발행되며, 예정 발행가는 60만5천원으로 전일 종가 대비 약 16% 할인된 가격이다. 이에 따른 EPS(주당순이익)은 13% 정도 희석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상증자 발표 이후 온라인 종목 토론방과 커뮤니티에는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뒤통수를 맞았다”, “충성 주주인데 배신감이 크다”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일부 투자자들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유상증자로 자금을 조달하는 동시에 계열사와의 내부 거래를 확대하는 점에 대해 불신을 표하고 있다.
실제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3월 13일, 한화임팩트와 한화에너지가 보유한 한화오션 보통주 7.3%를 약 1조3천억원에 인수했다. 한화에너지는 비상장사이며,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인 김동관(한화그룹 부회장), 김동원(한화생명 사장), 김동선(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 세 형제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다. 또한, 한화임팩트의 최대주주는 바로 한화에너지(지분율 52.1%)다. 즉, 김 회장의 세 아들이 간접적으로 한화임팩트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그룹 내부 계열사인 한화에너지·한화임팩트로부터 지분을 사들이면서, 김 회장 아들들의 개인 회사로 현금이 유입된 구조라는 점에서 투자자들 사이에 '사익 편취' 혹은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화에너지는 상장을 준비 중이며, 최근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대신증권을 IPO 대표 주관사로 선정했다.
일부 증권사들은 주가의 단기 조정은 불가피하더라도, 방산·조선·우주항공의 중장기 성장 흐름은 유효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NH투자증권은 “유럽·중동·미국에서 현지 생산 체제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투자의 목적성과 전략적 필요성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DB금융투자도 “주주 친화적인 정책과 외형 성장을 지속한다면 중장기 투자 매력은 유지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