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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크론병, 음식이 병을 만들고 음식이 치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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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크론병, 음식이 병을 만들고 음식이 치료가 된다

이설아 기자

기사입력 : 2026-03-29 08:30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류인혁 교수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류인혁 교수
[더파워 이설아 기자] 30년 전만 해도 크론병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보기 어려운 질환이었다. 환자 한 명만 진단해도 학회에서 발표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소아 소화기 외래에서 크론병 환자를 전혀 보지 않는 날이 드물다. 원래 북미와 유럽에서 흔하던 이 병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지난 20~30년 사이 빠르게 늘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유전자는 30년 만에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환경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 환경 변화의 중심에는 음식이 있다. 크론병은 음식이 병을 만들 수도 있고, 음식이 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질환이다.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어디에나 만성 염증이 생길 수 있는 난치성 질환이다.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면역 체계가 자신의 장을 적으로 인식해 공격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원인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완치보다는 평생 관리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복통과 설사, 혈변이 반복되고 성장기 아이들에게는 성장 부진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함께 나타날 수 있다.

소아청소년기에 진단되는 비율도 적지 않다. 전체 크론병 환자의 약 25~40%가 이 시기에 진단된다. 특히 소아 크론병은 성인보다 침범 범위가 넓고 경과가 더 심한 경우가 많아 조기 진단과 적극적인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크론병의 원인을 설명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 있다. “유전자가 총을 장전하고, 환경이 방아쇠를 당긴다.” 크론병에 걸리기 쉬운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일란성 쌍둥이 연구에서도 한쪽이 크론병일 때 다른 한쪽이 같은 병에 걸릴 확률은 50%를 넘지 않는다. 유전자가 100% 같아도 절반 이상은 발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환경 요인이 결정적이라는 이야기다.

이 질환의 증가세가 두드러진 나라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식생활이 서구화됐다는 점이다. 동물성 지방과 정제 탄수화물은 많고 식이섬유는 적은 이른바 서구형 식단이다. 패스트푸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식탁 역시 30년 전과 비교하면 고기 섭취는 크게 늘었고, 잡곡밥이나 나물 반찬은 줄었다. 대규모 전향적 코호트 연구들에서도 서구형 식단을 하는 사람은 크론병 발생 위험이 높고, 과일과 채소, 생선,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사를 하는 사람은 위험이 낮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최근에는 초가공식품이 핵심 위험 인자로 떠오르고 있다. 초가공식품에 들어 있는 유화제와 인공감미료, 각종 식품첨가물은 장 점막의 보호 장벽을 손상시키고 장내 미생물 환경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연구가 축적되고 있다. 서구화된 식단은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장 점막의 에너지원이자 염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짧은사슬지방산을 만들어내는 유익균을 줄인다. 장 점막이 약해지면 장내 세균이 면역 세포를 자극하게 되고,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에게서 만성 염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음식을 바꾸는 것으로 이 질환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을까. 놀랍게도 소아 크론병에서는 그 답이 “그렇다”에 가깝다.

소아 크론병 치료에서 완전경장영양요법은 이미 중요한 1차 치료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반 음식을 완전히 중단하고 특수 제조된 경장영양식만으로 6~8주간 영양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관해 유도율은 약 80~85%로 알려져 있으며, 스테로이드와 비슷한 효과를 보이면서도 성장기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양을 함께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럽과 북미의 소아 크론병 가이드라인에서도 약이 아닌 영양요법이 1차 관해 유도 치료로 권고되고 있다.

음식으로 장의 염증을 가라앉힌다는 것은 처음에는 쉽게 믿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기전은 비교적 분명하다. 경장영양식은 장내 미생물 환경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손상된 장 점막 장벽을 회복시키며, 과도한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일반 음식에 포함된 다양한 항원과 첨가물이 제거된 상태에서 장이 쉬면서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음식이 병을 만들 수 있다면, 음식의 조절을 통해 병의 염증 반응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크론병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완전경장영양 이후에도 일반 음식과 경장영양식을 병행하는 부분경장영양이 관해 유지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역시 계속 쌓이고 있다. 소아 크론병 환자에게 경장영양식은 단순한 영양보충이 아니다. 약물 선택지가 제한된 성장기 환자에게 성장 부진과 영양 결핍을 막고, 실제 치료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먹는 치료제’에 가깝다.

이 흐름은 크론병 환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2026년 1월 발표된 미국 식이지침 2025~2030은 “진짜 음식을 먹자”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미국 농무부와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공동 발표하는 이 지침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양 정책 문서 가운데 하나다. 이번 지침은 초가공식품을 명시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방향을 담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 배경에는 분명한 건강 위기가 있다. 미국은 성인의 70% 이상이 과체중 또는 비만이며, 청소년의 상당수가 당뇨병 전단계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도 이 길을 따라가고 있다. 식생활이 서구화되고 초가공식품 소비가 늘면서 소아비만과 대사질환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크론병을 포함한 염증성 장질환도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

아이들의 식탁이 더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린 시절의 식습관은 장내 미생물 환경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릴 때부터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진 아이의 장내 환경은 전통적인 식단으로 자란 아이와 다를 수밖에 없다. 미각이 형성되는 시기에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지면 신선한 식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결국 식습관은 단순한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면역과 건강의 기반을 좌우하는 문제다.

외래에서 크론병 환자와 보호자에게 식이를 설명할 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신선한 식재료를 사서 집에서 예전 방식으로 해 먹는 음식은 대부분 괜찮습니다.” 이 말은 크론병 환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잡곡밥과 된장찌개, 나물 반찬, 생선구이처럼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발효식품이 포함되며 가공식품이 거의 없는 식단은 우리 장 건강에 훨씬 더 자연스럽다. 그 시절 크론병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거창한 변화가 필요하지는 않다. 탄산음료와 단 음료부터 줄이고, 가공 스낵 대신 과일을 놓아두고, 배달 앱을 열기 전에 냉장고를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크론병이라는 질환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장을 바꾸고 면역을 바꾸며 결국 건강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환경 요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늘 식탁 위에서 시작된다.

글: 류인혁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성 니콜라스 어린이병원)

이설아 더파워 기자 seolnews@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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