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최성민 기자]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일본의 전위예술가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가 2026년 8월 14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향년 97세로 별세했다.
쿠사마 측은 8월 27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붓을 놓지 않고 영원한 사랑과 영혼을 탐구했다고 밝혔다.
쿠사마는 1929년생으로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서구 남성 중심의 미술계에서 대형 회화와 설치미술 등을 시도했고, 1960년대 후반에는 보디페인팅과 누드 해프닝 등 파격적인 행보로 주목을 받았다.
물방울과 호박, 거울 등으로 현대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그녀의 붓은 멈췄지만, 그녀가 남긴 기록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수년간 쿠사마의 초기 서적과 포스터, 전시자료, 인쇄물 등을 수집해 온 ‘쿠사마 아카이브’ 위승용 대표를 만났다.
사진제공=위승용Q 쿠사마 야요이의 별세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오랫동안 자료를 찾아다니다 보니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고 97세까지 작업했다는 발표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장한 오래된 자료들을 다시 보며 한 사람의 긴 인생이 이어져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제 직접 작품을 만드는 시간은 끝났지만, 남겨진 기록을 어떻게 보존해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시간이 시작됐다고 봅니다.
Q 처음부터 쿠사마 작품을 수집하려고 시작한 건가요?
아닙니다. 작품 가격이나 호박보다 쿠사마라는 사람 자체가 궁금했습니다.
60여 년 전 작은 체구의 젊은 동양 여성이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 활동을 하고, 거리에서 누드 퍼포먼스와 반전·평화를 외쳤다는 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떤 용기가 있었기에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했습니다.
유명해지기 전의 젊은 쿠사마가 어떻게 이름을 알리고 살아남았는지를 알고자 오래된 책, 잡지, 전시 포스터, 엽서, 인쇄물 등을 모으게 됐습니다.
Q 이런 작은 자료까지 모으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유명 작품은 미술관과 컬렉터들이 잘 보존하지만, 작은 인쇄물은 쉽게 사라집니다.
당시에는 무료 배포물이더라도 수십 년이 지나면 그 시대를 증명하는 소중한 사료가 됩니다. 1960년대 전시 초대장만 봐도 당시 장소, 갤러리, 디자인, 미술계 분위기가 담겨 있습니다.
자료를 시간순으로 연결해 1950년대 초기 활동부터 1960년대 미국·유럽 활동, 1970년대 이후 일본 활동까지 쿠사마의 궤적을 하나의 흐름으로 잇는 것이 아카이브의 핵심입니다.
Q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자료를 찾고 미술사적 내용을 검토해 준 콜론비아츠 갤러리 안선영 대표의 도움이 컸습니다.
아울러 시인공 송은정 기술사 대표와 오파니 정다숙 대표도 자료 정리와 주요 과정마다 큰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여러 분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아카이브가 가능했습니다.
사진제공=위승용Q 앞으로 이 자료를 어떻게 활용하고 싶습니까?
학생 교육에 활용하고 싶습니다. 단순히 호박 사진만 보여주기보다, “60여 년 전 여러분이었다면 혼자 미국에 가서 이런 도전을 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역사·미술·사회를 함께 배우는 계기가 됩니다.
1960년대 자료 하나로 전위예술과 팝아트, 당시 미국 사회와 여성의 위치, 포스터 디자인 분석까지 다방면의 교육이 가능합니다. 오래된 종이 한 장이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되는 셈입니다.
Q 쿠사마가 세상을 떠난 지금, 아카이브의 의미도 달라질까요?
오히려 더 중요해졌습니다. 작가가 떠난 지금은 남겨진 작품과 사료를 통해서만 그 삶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보존해, 언젠가는 개인 소장을 넘어 연구자와 학생, 시민들이 두루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쿠사마 아카이브를 진행하며 우연히 대한민국 연옥 산업의 중심이었던 춘천연옥 ‘옥산가’를 접했습니다.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 전통을 잇고자 ‘옥산가’ 상표권과 춘천 연옥 분말 약 28톤, 조각가 김찬식(1932~1997)의 목조 부조 작품 「빛이 달리는 새벽」(1969)을 확보하며 ‘옥산가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쿠사마의 기록이 한 예술가의 시간을 전하듯, 옥산가를 되살리는 일 역시 지역의 전통과 미래를 잇는 소중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최성민 더파워 기자 Sungmin@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