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순물 제거 및 순도 높이는 n-헥산 투입 공정 없이 발사르탄 제조·판매...거래처에 사과·보상은 전무
원료의약품 제조업체 대봉엘에스가 과거 n-헥산 투입 공정을 건너뛴 발사르탄을 판매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제공=구글스트리트뷰 갈무리]
[더파워=김필주 기자] 화장품소재·원료의약품 전문기업 대봉엘에스가 과거 원료의약품 발사르탄을 제조하면서 핵심 공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 국내 제약사에 판매해 소송 당할 위기에 처했다.
지난 2018년 7월 중국 제지앙 화하이(Zhejiang Huahai)사(社)가 공급한 고혈압치료제 발사르탄 원료의약품에서 발암물질인 NDMA(N-Nitrosodimethylamine : N-니트로소디메틸아민)가 검출되자 전세계 제약시장은 비상이 걸렸다.
발사르탄 파동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임의 기준치 0.3ppm을 정한 뒤 이를 초과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판매중지 조치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중국 화하이가 판매한 발사르탄 외에 국내 대봉엘에스가 제조한 발사르탄에서도 NDMA가 적게는 0.12ppm부터 많게는 4.89ppm까지 검출됐다.
특히 대봉엘에스는 발사르탄을 제조하면서 과거 식약처 신고 때 보고했던 내용과 달리 핵심 공정인 n-헥산(노말헥산) 투입 공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식약처에 제출하는 보고서에 n-헥산을 투입했다고 허위 기재했고 식약처는 지난 2019년 5월 대봉엘에스에 4개월 15일간 제조업무정지 조치를 취했다.
앞서 대봉엘에스는 또 다른 원료의약품 ‘대봉홍화유’ 제조과정에서도 발사르탄과 마찬가지로 n-헥산을 투입하지 않았는데 식약처에 보고한 문서에서 n-헥산을 투입한 것처럼 허위 기재했다가 2018년 9월 제조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
제약업계 등에 따르면 2018년 발사르탄 사태 당시 대봉엘에스는 중국 룬두사(社)로부터 조품(원료)을 구매해 국내 제약사 22곳에 원료의약품인 발사르탄을 판매했다.
더파워뉴스가 대봉엘에스로부터 발사르탄을 구매했던 국내 제약사들에 문의한 결과 대부분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A제약사 관계자는 “대봉엘에스가 식약처에 발사르탄 등록시 n-헥산을 투입한다고 보고한 후 이를 시행조차 안했다는 것은 의도적인 행위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봉엘에스의 발사르탄 제조과정 중 n-헥산 투입 공정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핵심 공정”이라며 “이미 같은 수법으로 식약처로부터 제재를 받았는데도 n-헥산 투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하게 고의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B제약사 관계자는 “원래대로라면 대봉엘에스는 발사르탄 제조시 n-헥산 투입 공정과 에틸아세테이트 공정을 거쳤어야 했다”며 “그이 두 개의 공정은 한 세트로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n-헥산 투입 공정을 뺐다는 것은 에틸아세테이트 공정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 관계자는 “정제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은 발사르탄은 원료의약품으로서 가공됐다고 볼 수 없다”면서 “대봉엘에스는 원시적 원료인 조품을 그냥 그대로 판매한 것과 다름없는데 당시 판매가격은 중국 제품보다 2~3배 가량 비쌌다”고 힐난했다.
C제약사 관계자는 “거래금액이 미미한 업체들의 경우 이 일로 인해 과거 발암물질인 NDMA가 검출됐던 자사 고혈압 약품이 다시 거론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발사르탄 사태 이후 일부 제약사는 손익 여부를 판단해 그냥 덮기로 결론 냈을 수도 있다”고 피력했다.
대봉엘에스, 사과·보상 등 사후처리 없어...일부 제약사, 소송 준비 단계 착수
대봉엘에스는 발사르탄을 납품했던 국내 제약사를 상대로 사과·보상 등의 조치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중국 화하이 제약은 발사르탄 사태 때 국내 제약사에게 사과 메시지 및 일부 보상 방안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봉엘에스와 화하이 양측에서 거래했던 D제약사 관계자는 “화하이로부터 사과 및 보상 내용 등을 통보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반면 같은 시기 대봉엘에스로부터는 사과 등 어떠한 내용도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봉엘에스가 발사르탄 정제과정에서 n-헥산을 투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최근 일부 제약사들은 대봉엘에스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제약업계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회사명을 밝힐 수 없으나 복수의 업체가 소송을 검토 중인 것은 확실하다”며 “현재 소장 작성 등 소송 시작을 위한 초기 단계에 착수한 상태”라고 밝혔다.
더파워뉴스는 식약처에 대봉엘에스 발사르탄 사태와 두 차례 n-헥산 투입공정 누락에 따른 차후 가중처벌 여부 등에 대해서 문의했다.
식약처 의약품안전국 관계자는 “n-헥산은 투입 공정은 원료의약품의 원료인 조품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과정”이라며 “원료의약품을 만드는 대부분의 제약사가 실시하는 공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또 “처음부터 조품을 가지고 정제과정 등을 진행하는 곳도 있으나 대봉엘에스의 경우 이미 몇 차례 공정을 거친 중간품을 가지고 정제과정을 실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지난 2018년 발사르탄 사태 때 국내외 제약사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조사를 펼친 결과 대봉엘에스가 발사르탄 제조과정에서 당초 신고 때와 다르게 n-헥산 투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적발했다”고 부연했다.
이 관계자는 가중 처벌과 관련해서는 “식약처 규정에도 여러 차례 동일 내용으로 제재를 받았을 시 가중 처벌하는 규정은 있다”며 “하지만 이 사안에도 적용되는지는 여러 가지 세부적인 내용 등을 검토해봐야만 알 수 있다”고 답했다.
한편 논란의 당사자인 대봉엘에스 측은 이번 논란에 대해 “별도의 입장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