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최병수 기자]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이 적절한 정책을 내놓지 못할 경우 2050년쯤 성장률이 0% 이하로 추락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2070년쯤에는 총인구가 4000만명을 밑돌 수 있다는 전망이다.
청년층이 느끼는 경쟁에 대한 심한 압박과 고용·주거·양육에 대한 불안이 결혼과 출산을 가로막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지난 3일 발표한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영향·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1명당 15∼49세 사이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8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았다. 217개 국가·지역 중에서는 홍콩(0.77명)을 빼고 꼴찌다.
출산율 하락 속도도 217개 국가·지역을 통틀어 1위를 차지했다. 1960년 5.95명에서 2021년 0.81명으로 줄며 합계출산율 감소율은 86.4%까지 높아졌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오는 2025년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20.3%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또 2046년 일본을 넘어 OECD 회원국 중 고령인구 비중이 가장 큰 나라가 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70년에는 국내 인구가 4000만명 이하로 줄고, 인구 감소율도 연 1% 이상을 기록할 가능성이 90%로 나타났다.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으로 추세성장률이 0% 이하로 낮아질 가능성은 2050년 50.4%, 2059년 79%로 급증한다. 2050년대 전체 평균으로도 ‘성장률 0% 이하’ 확률이 68%에 이른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구조 고령화의 근본 원인인 초저출산의 원인을 다양한 층위별로 분석한 결과 초저출산은 청년들이 느끼는 높은 '경쟁압력'과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과 연관됐다. 한은이 갤럽에 의뢰해 전국 25~39세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경쟁압력 체감도가 높을수록 희망자녀수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15∼29세 고용률은 2022년 기준 46.6%로 OECD 평균(54.6%)보다 낮다. 대학 졸업 나이와 결혼 연령대를 고려해 25∼39세 고용률을 비교해도 한국(75.3%)은 OECD 평균(87.4%)을 12.1%포인트(p) 하회한다.
고용의 질도 비정규직 일자리가 증가하면서 과거보다 저하됐다. 청년층(15~29세)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2003년 31.8%에서 지난해 41.4%로 9.6%포인트 증가했는데 국별 비교가 가능한 임시직 근로자 비중을 보면, 우리나라는 27.3%로 OECD 34개국 중 네덜란드에 이어 2번째로 높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계속 확대되고 있는데 이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양질의 1차 노동시장(대기업·정규직)과 열악한 2차 노동시장(중소기업·비정규직) 간 격차가 확대되고 노동이동이 단절될 상태를 의미한다. 비정규직 대비 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2004년 1.5배 수준에서 2023년 1.9배로 확대됐다.
46개국 MZ세대(1983∼2003년생) 2만3200명 대상의 국제 설문조사(딜로이트 주관)에서 생활비를 가장 우려하는 사항으로 꼽은 비율은 한국 MZ세대(45%)가 전체 글로벌 평균(32%)보다 높았다. 반대로 “재정적으로 안정됐다”는 답변 비율은 한국(31%)이 전체 글로벌 평균(42%)보다 낮았다.
또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주택가격(전세가격)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는 모습이 뚜렷했다. 시도별 합계출산율을 보면 지난해 기준 세종시의 합계출산율은 1.12명인 반면 가장 낮은 서울시의 합계출산율은 0.59명에 불과해 시도별 편차가 컸다.
이에 보고서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주요 대책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와 주택가격과 가계부채 하향 안정화, 수도권 집중 완화, 교육과정 경쟁 압력 완화 등을 꼽았다.
한은은 우리나라 출산 여건이 OECD 34개국 평균 수준으로 개선될 경우 출산율은 지난해 말 0.78명에서 0.845명 수준으로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선 2019년 기준 지표를 기준으로 한국의 도시인구집중도(431.9%)가 OECD 평균(95.3%)까지 떨어지면 합계출산율이 0.414명 상승했다. 청년(15~39세) 고용률(2019년 기준 58%)이 OECD 평균(66.6%)까지 올라가면 0.119명 증가했다.
이 밖에 혼외출산비중(한국 2.3%·OECD 43%), 육아휴직 실이용기간(10.3주·61.4주), 가족 관련 정부 지출(GDP대비 1.4%·2.2%), 실질 주택가격지수(104·100)가 모두 OECD 평균 수준으로 조정되면 출산율이 각 0.159 명, 0.096 명, 0.055 명, 0.002 명 높아질 것으로 추정됐다. 6개 지표의 개선이 합계출산율을 최대 0.845 명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원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질 측면의 일자리 양극화) 완화, 주택가격과 가계부채 하향 안정, 수도권 집중 완화, 교육과정 경쟁 압력 완화 등의 '구조 정책'을 가장 중요한 저출산 대책으로 꼽았다.
황인도 한은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이 밖에 정부의 가족 지원 예산도 대폭 늘리고, OECD 최하위권인 육아휴직 이용률을 높여 실질적 일·가정 양립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정책 노력으로 출산율을 약 0.2 명만 올려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40년대 평균 0.1%p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