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이 전·현직 임원에게 고가 사택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논란에 휩싸였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빗썸이 적절한 내부통제 절차 없이 일부 임원에게 총 116억원 규모의 임차보증금을 제공한 사실을 적발하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검찰은 이미 빗썸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금감원이 적발한 바에 따르면, 빗썸은 내규나 내부통제 없이 총 116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임차보증금을 단 4명의 전·현직 임원에게 제공했다. 이 중 일부는 명백한 ‘사기적 계약’이었다.
김대식 전 대표이사이자 현 고문은 자신이 분양받은 반포 아파트를 회사 사택인 것처럼 가장해 회사로부터 11억원을 지원받았고, 정작 해당 주택은 제3자에게 임대해 28억원의 보증금을 따로 챙겼다. 회사 돈을 개인 부동산 수익 창출에 사용한 전형적인 사익 추구 행태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런 행위가 빗썸 내부에서 감시받거나 견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 고문은 과거 대표이사를 지낸 후에도 여전히 ‘사장’ 직함을 달고 고문 역할을 하고 있었고, 그의 사적 거래에 대해 사전에 어떤 통제도 없었다. 사후적으로야 보증금을 회수하고 징계를 내렸다고 하나, 이는 사건이 외부로 드러난 뒤 보여주기식 대응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직 임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A씨는 지난해 6월, 본인의 거주 목적이라는 이유만으로 30억원에 달하는 고급 사택을 스스로 승인받아 사용했다. 또 다른 전직 임원 두 명도 각각 18억원, 19억원의 임차비를 제공받았고, 이 역시 회사 내부에서 견제된 흔적은 없다. '내부 통제'라는 말이 무색한 수준이다.
금감원 조사 결과는 지난 3월 20일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로 이첩됐으며, 검찰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빗썸은 관련 임원에게 보증금을 회수하고 인사위원회를 통해 징계를 내렸다고 밝혔지만, 징계 수위나 절차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빗썸은 이번 논란과 관련해 “임직원 복지 및 핵심 인력 유지를 위한 사택 지원 제도를 운영해왔으나, 현재 금감원 지적에 따라 제도 전반을 전수조사 중이며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조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 “이해상충 우려가 있는 사안에 대해 더욱 면밀히 점검하고, 불공정 거래 신고 포상제도를 전사적으로 확대 운영해 임직원 일탈을 방지하겠다”고 덧붙였다.
빗썸은 이와 같은 불법적 사익 추구의 온상이 되었지만, 최근 주주총회에서는 오히려 이사와 감사의 보수 한도를 대폭 올렸다. 이사 보수는 50억 원에서 200억 원으로 4배, 감사 보수는 2배로 증액됐다. 이는 내부 기강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더 많은 보상’만 챙기려는 이사진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쟁사인 업비트가 역대급 배당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더욱이 빗썸은 최근 정관을 변경하며 ‘대부업 및 대부중개업’을 신규 사업목적으로 포함시켰다. 업계에서는 빗썸이 현재 운영 중인 ‘렌딩’ 서비스와의 연계를 노리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지만, 이 서비스는 이미 법적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투자자 보호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빗썸의 렌딩 파트너사인 블록투리얼은 가상자산사업자 지위를 갖추지 못한 상태다.
금융당국의 시선도 곱지 않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이달 빗썸을 대상으로 현장검사에 착수했다. 해외 미신고 사업자와의 거래, 특금법 위반 여부 등을 집중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금감원 이세훈 수석부원장은 “이번 사안은 빗썸 내부통제 시스템의 미비에서 비롯된 개인 일탈이지만, 고위 임원이 연루된 만큼 조직 전체의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가상자산 업계 전반의 내부통제 실태를 점검하고 제도 개선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빗썸은 현재 검찰 수사와 금감원 조사를 모두 받고 있으며, 자칫 기업 상장(IPO) 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창업주 이정훈 전 의장이 사기 혐의에서 무죄를 받으며 상장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회사 전체가 ‘사익 챙기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질 경우 투자자 신뢰 회복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빗썸은 현재 금감원 조사와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시장의 시선은 싸늘하다. 사적 이익을 위해 기업 자금을 동원한 정황이 드러나며, 빗썸의 경영 투명성과 윤리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