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대통령 선거를 닷새 앞둔 29일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2.50%로 0.25%포인트(p) 인하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 새 네 번째 인하로, 경기 하방 압력이 거세진 상황에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금리 인하는 내수 침체와 미국발 관세전쟁 등 대외 악재가 겹치며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2%를 기록하는 등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진 데 따른 결정이다. 특히 한은은 이날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과 같은 수준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통화정책방향회의 직후 “금통위원 6명 모두 3개월 내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추가 완화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실제로 이번 인하는 시장 전망에 부합했다. 금융투자협회 조사에서 채권 전문가 69%가 이번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예측했다.
한은의 연이은 금리 인하는 경기 대응 성격이 짙다. 민간소비는 5월 초 황금연휴 기간 신용카드 사용액이 전년 대비 13%나 감소하며 여전히 회복세가 미약한 것으로 나타났고, 건설투자 역시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상호관세 정책 여파로 이달 대미 수출이 15% 급감하는 등 수출 불안도 심화되고 있다.
성장률 하향은 국내외 주요 기관들의 전망과 궤를 같이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달 초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0.7%로 1.0%포인트 낮췄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6%에서 0.8%로 하향 조정했다. 8개 해외 투자은행(IB)들의 평균 전망도 0.8%에 그친다.
환율 안정도 금리 인하 여건을 마련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미국 관세 발효 직후 장중 1,487.6원까지 올랐지만 최근 달러 약세와 대외 불확실성 완화로 1,360.4원까지 내려앉았다. 급등했던 환율이 진정되자 금통위는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다만 금리 인하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낮아진 금리가 부동산 자산으로 자금 유입을 자극해 집값과 가계부채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5월 27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47조1915억원으로, 4월 말보다 4조1067억원 증가했다. 두 달 연속 4조원대 증가세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기존 1.8%에서 1.6%로 0.2%포인트 낮췄다. 물가상승률은 올해 1.9%, 내년 1.8%로 전망했다. 한은은 최근 원유가와 환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공공요금 인상과 관세 충격 등 인플레이션 요인을 반영해 물가 전망을 유지했다.
시장에서는 향후 경기 상황에 따라 한은이 올해 1~2차례 추가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오는 7월 시행되는 3단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제도와 함께 금융당국이 대출 규제 기조를 이어가고 있어,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큰 폭으로 내려가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