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내수 침체가 깊어지며 기업과 가계의 ‘빚 상환 능력’에 경고등이 켜졌다. 경기 부진과 고금리 여파에 이어 하반기 미국발 관세 충격까지 가시화되면서, 은행권의 연체율이 1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특히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등 취약 계층의 부실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어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 확대가 우려된다.
16일 연합뉴스가 금융권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5월 말 기준 전체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연체)은 평균 0.49%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0.44%) 대비 0.05%포인트(p) 오른 수치이자, 지난해 말(0.35%)과 비교하면 다섯 달 만에 0.14%p나 급등한 것이다.
대출 주체별로 보면 ▲가계 0.36% ▲대기업 0.18% ▲중소기업 0.71% ▲전체 기업 0.60%로, 각각 지난해 말보다 0.07~0.22%p 상승했다. 특히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출의 부실은 더 뚜렷해,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5월 말 0.67%로, 한 달 만에 0.06%p 올랐고 지난해 말(0.48%)보다는 0.19%p 상승했다.
연체율과 함께 금융권의 또 다른 부실 지표인 ‘고정이하여신(NPL, 3개월 이상 연체 대출)’ 비율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우리은행을 제외한 4대 은행의 NPL 평균 비율은 5월 말 0.45%로, 작년 말(0.33%)보다 0.12%p나 올랐다. 중소기업은 0.65%로 연초 대비 0.16%p 증가했으며, 전체 기업도 0.53%로 0.12%p 뛰었다. 가계대출 NPL 비율도 0.34%로, 0.11%p 상승했다.
부실 징후는 주요 시중은행들의 내부 시계열 통계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A은행의 경우 개인사업자 연체율과 NPL 비율이 각각 2014년 중순, 말 이후 11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고, B은행도 유사한 시점의 고점을 다시 기록했다. C·D은행에서도 중소기업 및 가계대출의 연체율과 NPL 비율이 8~9년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은행권은 이 같은 대출 부실 확대의 원인으로 경기 침체 장기화와 고금리 지속을 꼽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내수와 수출이 모두 부진한 가운데, 대내외 불확실성까지 커지면서 금융권 부실자산이 빠르게 늘고 있다”며 “최근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지속된 고금리 누적 효과가 연체율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이 현실화되면 수출기업까지 연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소비심리 회복도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며 “하반기에도 연체율은 계속해서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