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주택 가격 상승과 코스피 지수의 3,000선 돌파가 맞물리면서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열풍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대출 규제 강화와 금융당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가계대출 증가세는 오히려 속도를 내며 지난해 8월 이후 10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 19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52조749억 원으로, 5월 말(748조812억 원) 대비 3조9,937억 원 증가했다. 하루 평균 2,102억 원이 늘어난 셈으로, 이는 지난해 8월(3,105억 원)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경우 6월 한 달간 가계대출은 6조 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작년 8월(9조6,259억 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큰 월간 증가 규모다.
증가의 중심에는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 포함)과 신용대출이 있다. 같은 기간 주담대는 2조9,855억 원, 신용대출은 1조882억 원 각각 늘었다. 특히 신용대출은 코스피가 3,000선을 돌파하는 등 주식시장이 호조를 보이면서 투자 자금 수요가 증가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은행 창구의 대출 신청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경우 올해 1월 4,800건 수준이던 주담대 신청 건수가 5월에는 7,400건을 돌파했고, 6월 들어서도 19일까지 5,700건을 넘었다. 이는 7월부터 시행되는 3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피하려는 ‘막차 수요’가 몰리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나 전세를 살던 부부들이 매매로 방향을 틀고 대출을 서두르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의 한 은행 관계자는 “6월 내 계약만 체결하면 2단계 DSR이 적용돼 문의가 집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일부 은행은 선제적으로 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NH농협은행은 24일부터 타행 갈아타기 주담대 접수를 중단하고, SC제일은행은 주담대 만기를 50년에서 30년으로 축소했다. 만기 축소는 DSR 계산상 대출 한도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조치만으로는 가계부채 급증세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 인하 기대와 자산 가격 상승에 대한 확신이 있는 한, 그 어떤 규제도 수요를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수도권 집값 상승은 기대심리 때문”이라며 “수급 안정을 위한 구체적인 공급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대출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규제 카드를 꺼낼 채비를 하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은행이 가계대출을 취급할 때 완충자본 도입과 위험가중치 상향을 검토 중이다. 이는 은행의 대출 여력을 줄여 전체 가계부채 규모를 조절하겠다는 전략이다.
또한 금융위원회는 전세대출과 정책대출까지 DSR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서민층의 자금 접근성이 제한될 수 있어 도입 여부를 신중히 판단할 전망이다.
가계대출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자, 금융당국도 긴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과 상호금융권을 잇달아 소집해 과열을 경계할 것을 당부했으며, 상황에 따라 DSR 확대나 대출 가산금리 인상, 생활안정자금 대출 한도 축소 등 추가 규제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