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경호 기자] 국가 기간통신망을 책임지는 KT의 차기 대표이사(CEO) 선임 절차가 후보군 압축 단계에 들어가면서, 통신·AI·보안을 아우를 수 있는 혁신형 수장을 세워야 한다는 압박이 정치권과 노동조합, 시민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성명을 통해 KT 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학연·지연에 기반한 파벌 인사를 끊고 무너진 국민 신뢰를 회복할 혁신 경영진을 선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압박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KT 경영진의 보안 리스크와 통제 실패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불법 펨토셀 장비 방치, 악성코드에 감염된 서버의 무단 폐기와 축소 보고(티타임 구두 보고), 해킹 피해를 입은 고객에게 요금을 부과한 정황 등이 연이어 드러나면서, 단순 실수가 아닌 보안 시스템 전반이 붕괴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국회에서 제기됐다. 의원들은 국가 기간망을 운영하는 기업의 보안이 이처럼 허술하다면 국민 누구도 안심하고 통신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다며 통신 보안에 대한 책임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에 따라 차기 CEO의 최우선 자격 요건으로 단순한 재무·조직 관리 능력을 넘어선 통신 보안 전문성이 부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새 리더가 통신 본업 경쟁력 강화,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DX) 선도, 글로벌 수준의 정보보호 체계 구축, 정부 정책과의 조율, 지속 가능한 경영 리더십 등 다섯 가지 핵심 역량을 두루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보안이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된 상황에서 이번 인사가 KT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함께 나온다.
그러나 현 이사회의 움직임은 이러한 요구와 거꾸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이사회와 KT 내부 기득권 세력이 이른바 카르텔을 형성해 특정 후보를 조직적으로 밀어주거나, 유력 정치인 출신 인사와의 유착을 모색하고 있다는 의혹이 업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한 경쟁과 전문성 검증 대신 ‘내부 안정’을 명분으로 기득권 연장에만 몰두하면서 소수의 이해관계에 따라 차기 수장이 정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각계 단체들도 이사회의 불투명한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KT 새노조 관계자는 보안 사고와 은폐 의혹으로 회사가 위기에 빠졌음에도 이사들이 특정 인물을 옹립하기 위해 소수 모임을 거듭하며 파벌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이는 직원과 국민을 배신하는 일로 보안 실패에 책임이 있는 세력과 이에 동조한 이사들은 즉각 CEO 선임 과정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말했다.
민생경제연구소는 국민 기업인 KT의 향방이 특정 정치인과의 유착설이나 이사회 내 소수 기득권의 이해에 따라 좌우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며, 밀실에서 야합을 통해 탄생한 낙하산·회전문 인사는 결국 통신 서비스 품질 저하와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도 현재와 같은 깜깜이 심사 구조는 과거의 적폐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라며, 누가 어떤 기준으로 추천되고 탈락했는지 공개하지 않는다면 최종 선임 인물이 누구든 시민사회가 선임 무효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T 차기 대표이사 공모에는 현재 총 33명이 지원한 상태다.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1차 서류 심사를 통해 16명의 롱리스트를 추린 데 이어 다시 8명으로 후보군을 압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는 조만간 이들 8명을 대상으로 비대면 화상 면접을 진행하고, 뒤이어 열리는 두 차례 이사회 회의를 통해 최종 면접 대상이 될 숏리스트 3~4명을 확정·공개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사가 단순한 경영진 교체를 넘어, 이사회 내부의 파벌 구조와 밀실 야합 논란을 정면으로 끊어내고 통신 보안에 대한 국가적 신뢰를 되살리는 분수령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