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산업서 한계생산성 높은 기업의 자원 과소배분 두드러져
업력 낮을수록·비상장일수록 생산요소 확보 제약 뚜렷
연구진 “전문투자자·IP금융 확대하고 무형자산 정보환경 개선해야”
/연합뉴스
[더파워 이경호 기자] 한국 무형자산 산업의 생산성 손실은 경쟁력이 낮은 기업에 자원이 몰리는 문제보다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는 데서 더 크게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비상장 상태인 무형자산 기업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최근 자본시장연구원의 ‘무형자산의 부상과 생산요소의 배분 효율성’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무형자산 집약 산업에서 나타나는 자원배분 비효율성은 한계생산성이 높은 기업에 생산요소가 충분히 투입되지 않는 현상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서는 기업별 총요소수익생산성(TFPR)을 활용해 자원배분 상태를 비교했다. TFPR이 높다는 것은 추가 자본이나 노동을 투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상대적으로 크지만 실제 투입은 충분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2003년에는 무형산업과 비무형산업의 TFPR 분산이 비슷했다. 하지만 2023년에는 격차가 벌어졌다.
무형산업의 TFPR 표준편차는 2003년 0.56에서 2023년 0.77로 37.1% 증가했다. 비무형산업은 같은 기간 0.55에서 0.56으로 2.3% 늘어나는 데 그쳤다. 무형산업 안에서 기업별 한계생산성과 자원배분 격차가 훨씬 빠르게 확대된 것이다.
어떤 기업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따로 분석한 결과도 차이가 뚜렷했다. 무형산업에서 TFPR 상위 20% 기업을 분석 대상에서 제외하면 재배분 이득이 크게 낮아졌고 장기간 이어졌던 비효율성 증가 추세도 사라졌다.
한계생산성이 높은 기업의 자원 부족이 무형산업에서 나타난 비효율성 확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의미다.
비무형산업은 양상이 달랐다. 한계생산성이 낮으면서 자원을 상대적으로 많이 보유한 기업을 제외했을 때도 재배분 이득 감소 폭이 무형산업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다. 연구에서는 이를 비생산적인 한계기업의 존속과 자원 과잉투입이 비무형산업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한 비효율 요인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했다.
무형기업 가운데서는 업력이 낮은 기업일수록 자원 부족 현상이 뚜렷하게 관찰됐다. 2023년 기업을 대상으로 업력과 TFPR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무형산업에서는 설립된 지 오래되지 않은 기업의 TFPR이 높았고 업력이 늘어날수록 낮아지는 흐름이 나타났다.
비무형산업에서는 업력과 TFPR 사이에 이 같은 체계적인 관계가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상장 여부에 따른 차이도 무형산업에서만 선명했다. 분석 기간 동안 무형산업의 비상장기업은 상장기업보다 평균 TFPR이 계속 높게 나타났다. 반면 비무형산업에서는 상장기업과 비상장기업 사이에 뚜렷한 격차가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를 무형자산이 가진 금융상의 특성과 연결했다. 공장이나 기계처럼 유형자산은 금융회사가 가치와 처분 가능성을 비교적 명확하게 평가해 담보로 활용할 수 있지만 지식과 노하우, 조직역량 등은 가치평가가 어렵고 회수 가능성도 낮다.
특히 업력이 짧으면 신용 기록도 부족하다. 비상장기업은 유상증자나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통로까지 제한된다. 무형자산 의존도가 높은 기업이 ‘담보 부족’과 ‘자본시장 접근성 부족’을 동시에 겪을 수 있는 구조다.
다만 연구는 금융제약이 개별 기업의 자원 부족을 직접 발생시켰다는 인과관계를 구조적으로 추정한 것은 아니다. 기업 특성과 TFPR에서 나타난 패턴이 무형자산의 담보 제약과 정보 비대칭 등 기존 연구에서 확인된 금융제약과 일관되게 나타났다는 것이 이번 분석의 범위다.
정책 방향도 이 문제에 맞춰졌다. 연구진은 먼저 무형자산 기반 기업의 성장성과 혁신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전문투자자와 금융중개기관의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벤처캐피탈을 비롯한 위험감내형 자본의 공급 확대도 필요하다고 봤다. 유형자산 담보를 요구하는 기존 대출 방식만으로는 초기 단계의 무형기업이 필요한 성장자금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식재산권(IP)을 금융자산으로 활용하는 IP금융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특허 등 IP는 다른 무형자산보다 법적 권리와 식별 가능성이 명확해 담보와 유동화, 투자자산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IP 가치평가 체계를 고도화하고 전문기관과 인력을 육성하는 동시에 IP를 처분하거나 거래할 수 있는 회수시장도 함께 확대해야 한다는 게 연구진의 제언이다.
정보 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로 꼽혔다. 현재 회계기준에서는 기업이 내부적으로 만든 상당수 무형자산이 재무제표에 자산으로 잡히지 않는다. 연구개발 과정에서 쌓인 지식과 기술이나 광고·교육훈련 등을 통해 만들어진 조직역량 가운데 상당 부분이 비용으로 처리된다.
결국 투자자와 금융기관이 재무제표만 보고 기업의 실제 무형자산 가치와 성장 가능성을 판단하는 데 한계가 생길 수 있다.
연구진은 회계정보가 무형자산 중심 기업의 경제적 실체를 더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관련 기준의 개선을 계속 검토하고, IP와 무형자산에 대한 비재무정보 공시 체계도 함께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다만 공시 확대 과정에서 기업의 핵심 기술과 경영전략이 외부에 노출될 수 있고 허위·부실공시에 따른 투자자 피해 가능성도 있는 만큼 기업의 자율성과 투자자 보호를 함께 고려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의 자산구조가 무형자산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금융시장이 평가해야 하는 대상도 달라지고 있다. 공장과 설비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방식만으로는 지식과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기업의 생산성을 충분히 활용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이번 연구가 보여준 변화다.
결국 핵심은 자금을 더 많이 공급하는 데만 있지 않다. 생산성이 높은 무형기업을 가려내 필요한 자본이 그 기업으로 흘러가도록 만드는 것이 자원배분 효율성과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함께 높이는 과제로 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