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휴대폰일 것이다. 우리는 외출 할 때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나오면 불안감에 휩싸인다. 약속 시간에 늦더라도 다시 집으로 돌아와 스마트폰을 챙겨 나간다. 현대인들이 스마트폰에 집착하는 이유는 스마트폰 속 안에 있는 웹 세계 때문이다. 웹은 날씨와 교통 상황 등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알려준다. SNS로 전 세계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연결 창구다. 사람들은 웹에 연결되지 않으면 움직일 생각을 못한다. 스마트폰이 내 손에 없으면 갑자기 밀려드는 두려움에 빠진다.
'디지털 중독'이다.
지난 2015년 독일에서 등장해 전 세계로 확산된 신조어 ‘스몸비’는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이다. 스마트폰에 빠져 외부와 단절된 채 좀비처럼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세계어다. 국내서도 스마트폰을 보다 마주 오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어깨를 부딪히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구글에서 키워드 검색은 물론 외국인들이 경험한 피해 사례들도 여러 건이 올라와 있다. 디지털 기술의 놀라운 발전 속도에 따라 나타나는 부작용과 반작용이 크다. 무분별한 디지털 문화와 인터넷 의존 현상은 심각하게 들여다봐야 할 과제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 베르트 테 빌트는 한국의 스마트폰 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베르트 테 빌트 교수는 14년째 인터넷 의존 현상을 연구해 왔다. 독일 '미디어 의존 전문가협회'의 공동 창업자이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해당 분야의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 주제를 홀대하고 무시했다고 한다. 최근에 '인터넷 의존증'을 독자적인 병증으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베르트 테 빌트 교수가 한국을 주시한 이유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한 시장이고, 인터넷과 컴퓨터 게임 남용의 심각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두번째 한국은 '인터넷 중독' 현상을 초기에 심각한 중독 질환으로 인식하고 대응해 온 나라라는 것.
디지털 혁명은 전 세계적으로 빠른 속도로 동시 진행 중이다. 현장의 경험과 정보를 전 지구적 차원에서 공유하고 대책 마련에 나설 시점이다.
베르트 테 빌트 교수는 온라인 접속 기능이 없는 전자 기기에 대한 중독은 없다고 강조한다. 중독은 기기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에 의존하게 만드는 원인은 인터넷 전체가 아니라 온라인 게임, 사이버 음란물, SNS 등 특정한 사이버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정신과 의사 '베르트 테 빌트' 교수 (사진=Universität Bochum)
'온라인 게임', '사이버 음란물', 'SNS 중독'.
이 세가지는 인터넷 의존증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현실 세계에서 우울증이나 대인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인터넷에서 의존증 환자들은 현실에선 실현할 수 없는 특정한 소망이나 욕구,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게임'은 특히 RPG 게임에서 의존증 증세가 자주 보인다.
RPG게임은 현실 세계에선 느낄 수 없었던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파트너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SNS'에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현실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원활한 대인 관계를 가지지 못한 이들이 여기에 집착할 가능성이 높다. SNS상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연결해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한 인간관계를 대체한다.
'사이버 음란물'에 중독된 이들은 온라인 게임과 SNS에 의존할 때와 약간 다른 양상을 띤다. 온라인 게임과 SNS 중독은 ‘디지털 원주민’이라 불릴 만큼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과 함께 자란 세대에 주로 나타난다. 반면 사이버 음란물 중독은 ‘디지털 이주민’인 중년 남성에서 주로 발견된다. 이들의 특징은 지향하는 성적 행위가 타인에게 위협적이거나 문화와 도덕의 경계를 넘는 경우가 많다. 음란물은 언제 어디에서나 무료로 접할 수 있고, 엄청난 양을 자랑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중독 정도가 심할수록 더 가학적이고 센 영상을 찾게 되는 악순환의 과정이다.
디지털 중독을 유발하는 원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베르트테 빌트 교수는 '미디어, 사회, 개인의 중독 삼각형'을 살펴본다. 베르트테 빌트 교수는 "어떤 미디어와 콘텐츠가 중독을 유발하고 촉진시키는지, 어떤 생활환경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환자 본래의 심리, 생물학적 위험 요인은 없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미디어 요인으로는 소셜 게임 등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미디어 콘텐츠가 가진 속성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인기있는 게임은 중독으로 빠지도록 하는 패턴과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회적 요인으로 인터넷 의존자의 가족과 학교, 친구, 남녀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세 번째 개인적 위험 요인으로 대상자에게 내재된 충동성, 주의력 결핍, 우울증, 불안감, 그리고 동반 질환의 가능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대체로 베르트 테 빌트 교수는 '인터넷 의존'만 단독으로 나타난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ADHD, 불안 장애, 우울증은 인터넷 의존의 동반 질환과 2차 질환의 형태로 발생한다. 때때로 인터넷 의존보다 먼저 나타나기도 한다.
베르트테 빌트 교수는 "인터넷 의존 연구의 시작이 15년밖에 되지 않아 섣부른 단정보다 중독 삼각형의 요소를 복합적으로 대입해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손에서 좀처럼 놓치못하는 스마트폰. 전자기기가 아니라, 인터넷이 연결된 기기가 중독에 빠져들게 한다.
인터넷 의존증을 치료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베르트 테 빌트 교수는 중독물을 한 번에 완전히 중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점차 줄이는 방법은 자제력을 잃기 쉬우며 실패할 가능성도 크다. 중독물 중단 후 발생하는 공허함과 금단 증세는 신체적인 활동과 심리치료를 통해 개선해야 한다. 의존증 환자들은 현실 세계에서 제대로 된 주체로 활동한 경험이 적다. 그들이 인터넷에서 느꼈던 성취감을 실제 활동을 통해 느끼게 해야 한다.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매우 중요하다. 주변인들과 대인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없애고 현실 세계에 만족을 느끼게 해 줘야 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규정짓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한다. 소셜미디어 시대에 우리는 현실 세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이 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관계를 삭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현실과 영원히 멀어지게 만드는 독이 될 수 있다. 인터넷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일뿐, 현실 문제의 도피처가 아니다. 우리는 항상 인터넷에 매몰돼 있는지를 스스로 판단해야한다. 인터넷을 경계할 수 있는 자제력을 끊임없이 길러야 한다.
디지털 미디어의 멋진 특성은 우리가 그 안에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쌍방향 능동성'이다. 현실 속 우리는 육체적 능동성을 잃어버린 채 최면에 걸려 모니터 앞에서 좀비가 돼 간다. 소셜 네트워크는 끊임없이 자기 상품화와 자기 최적화에 몰두하게 만든다. 결국, 자아실현과는 거리가 먼 타인의 인정만을 추구하게 된다. 집단지성을 기대했던 미디어상의 집결과 연결은 한순간에 파시스트적인 집단 따돌림으로 전환된다. 인터넷은 결코 인간을 더 나은 인간으로 개조하지 못한다. 인간 스스로가 디지털 세상을 통제해야 한다.
베르트 테 빌트 교수는 "디지털 미디어의 의존이 지속된다면 인간의 본질적인 삶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다"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