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유연수 기자] 청년 실업의 이면에는 단순히 ‘일을 기피한다’는 인식과 달리, 참을 수 없는 근로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쉬었음’ 상태에 있는 청년은 약 40만명이며, 이 가운데 73.6%는 이미 직장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일자리가 없어 처음부터 취업을 못한 것이 아니라, 한 번은 일터에 들어갔다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의미다.
대학내일은 고용노동부 지원으로 전국 청년 200명을 대상으로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의 하한선’을 조사한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조사에서 청년들이 꼽은 최소 조건은 △연봉 2823만원 △주 3.14회 이하 추가 근무 △청결한 화장실이었다. 많은 청년이 사내 식당, 냉난방, 휴게실 등 기본적 복지 환경을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했다.
실제 직장 경험이 있는 청년들의 증언은 이 같은 현실을 보여준다. 한 30대 직장인은 “겨울에 난방이 되지 않아 롱패딩을 입고 손난로를 쥔 채 일했다”며, 또 다른 청년은 “남녀 공용이자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은 화장실 때문에 방광염을 앓았다”고 토로했다. 기본적 위생이나 식수 환경조차 지켜지지 않는 일터에서 오래 버티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대기업 고연봉 자리가 아니라 ‘상식이 통하는 일터’였다. 조사에 참여한 청년들은 “야근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필요 없는 야근, 이유 없는 장시간 근무가 문제”라며 “최소한 합리적인 근로 환경이 지켜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업의 높아진 요구 수준도 문제로 지적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구인배수는 0.39로, 구직자 100명당 일자리가 39개에 불과하다. 반면 사람인 HR연구소 조사에서는 기업 10곳 중 8곳이 “적합한 지원자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청년들은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은 끝없이 높아지지만, 정작 제공하는 일자리는 최소한의 환경도 보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전성신 청년단체 ‘니트생활자’ 대표는 “많은 청년이 다시 구직을 망설이는 이유는 능력 부족이 아니라 이전 직장에서 겪은 부정적 경험이 반복될 것이라는 불안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단순히 일자리 수를 늘리는 것보다 장기 근속이 가능한 ‘일자리 하한선’을 제도화해야 한다”며 “임금뿐 아니라 안전한 근로 환경, 합리적인 근로 시간, 기본적 복지제도 등 상식적 기준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청년들이 말하는 ‘원하는 일자리’는 매일 출근할 수 있을 만큼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근로 환경이다. 반복되는 이탈을 막기 위해선 숫자 중심의 정책이 아닌, 일자리의 질적 기준을 높이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유연수 더파워 기자 news@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