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유연수 기자] 주5일제가 도입된 지 21년 만에 노동시장이 다시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정부가 주4.5일제와 정년연장을 국정과제로 추진하면서 노동계는 이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고, 경영계는 인건비 증가와 청년 고용 위축을 우려하며 반발하는 가운데 사회 전반의 구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904시간으로, OECD 평균(1719시간)보다 185시간 많았다.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보다 근로시간이 긴 국가는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이스라엘 등 5개국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도 한국은 31개국 중 노동시간이 3번째로 길었지만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20위에 불과했다.
인공지능(AI) 확산과 생산성 혁신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가운데, 장시간 노동이 근로자의 삶의 질과 경제 활력 모두를 저해한다는 지적이 주4.5일제 논의에 불을 지폈다.
동시에 고령사회 진입으로 인한 노동력 감소와 복지 부담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정년연장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올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3%에 달했고, 2030년에는 25%,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노동계는 ‘적게 일하면서 오래 일하는’ 구조를 제안한다. 주4.5일제와 정년연장을 결합해 장기 근속과 일자리 나눔을 통해 사회·경제적 안정성을 높이자는 구상이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65세 정년 연장은 단 하루도 늦출 수 없는 과제”라며 “과감히 주4.5일제 시범사업을 도입해 내년을 근로시간 단축의 첫해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는 부분 파업을 벌이며 같은 요구를 제시했고, 금융산업노조도 26일 총파업을 결의했다.
그러나 우려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임금체계와 고용 경직성을 유지한 채 정년만 연장하면 청년 고용 위축, 조기퇴직 증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 등 과거 부작용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은 2022년 121건에서 지난해 292건으로 급증했고, 같은 기간 조기 퇴직자 증가율(87.3%)이 정년 퇴직자 증가율(69.1%)을 크게 웃돌았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정년연장 시 5년 뒤 60~64세 고령 근로자 고용 비용이 30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청년층 90만명 고용 비용과 맞먹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 당시 “우리나라 평균 노동시간을 OECD 평균 이하로 단축하겠다”며 주4.5일제 도입과 정년 65세 연장을 공약했고, 2025년 내 입법 추진을 약속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임금 감소 없는 주4.5일제가 가능하다”며 시범사업 추진 의지를 밝혔다.
여론도 긍정적이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응답자의 61%가 주4.5일제 도입에 찬성했지만, 60%는 근무 시간이 줄어도 임금은 유지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가운데, 경영계의 우려와 현실적 비용 부담을 어떻게 조율할지가 제도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