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유연수 기자] 겨울마다 손발이 유난히 차갑고 저리다고 해서 모두 수족냉증은 아니다. 특히 손가락·발가락 색이 하얗게 질렸다가 파랗게, 다시 붉게 변하고 통증과 찌릿한 저림까지 동반된다면 ‘레이노증후군’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
경희대병원 류마티스내과 정상완 교수는 레이노증후군의 원인과 진단, 예방법을 설명하며 단순 냉증으로 넘겼던 증상이 류마티스·자가면역질환의 초기 신호일 수 있다고 17일 밝혔다.
레이노증후군은 손가락이나 발가락 말단의 작은 혈관이 추위나 스트레스에 과도하게 수축하면서 일시적으로 혈류가 차단되는 질환이다. 추위에 노출되면 먼저 피부가 하얗게 창백해지고, 이어 혈액 공급이 더 떨어지면서 파랗게 변했다가, 다시 혈류가 회복되면서 붉게 달아오르는 색 변화가 전형적이다. 이 과정에서 저림, 찌르는 듯한 통증, 심한 냉감이 함께 나타나 일상생활에 불편을 초래한다.
정상완 교수는 “레이노증후군은 뚜렷한 기저질환 없이 나타나는 ‘일차성’과 류마티스 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과 함께 나타나는 ‘이차성’으로 나뉜다”며 “일차성은 대체로 합병증이 적지만, 이차성은 혈관 손상과 구조적 변화가 동반돼 증상이 더 심하고 피부궤양이나 조직 괴사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레이노증후군은 전신경화증, 혼합결합조직병, 전신홍반루푸스, 쇼그렌증후군 등 자가면역질환에서 매우 흔하게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류마티스·자가면역질환 환자에서 레이노증후군이 잘 생기는 배경에는 혈관 내피세포의 지속적인 손상이 있다. 반복되는 염증과 면역 반응으로 혈관이 점차 좁아지고 딱딱해지면서 말초혈관의 탄력이 떨어지고, 자가항체와 다양한 염증 매개물질이 혈류 조절 기능을 망가뜨린다. 정상완 교수는 “이러한 변화가 쌓이면 조금만 추워도, 혹은 가벼운 스트레스만 받아도 혈관이 과도하게 수축하는 ‘과민 반응’을 보이게 되고, 결국 레이노증후군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진단은 주로 추위 노출 시 나타나는 색 변화 양상과 통증, 저림 등 증상, 과거 병력 등을 종합해 이뤄진다. 단순 수족냉증인지, 자가면역질환이 동반된 이차성 레이노증후군인지를 가르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손톱 밑 주름 부위의 모세혈관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손톱 주름 모세혈관 검사’를 시행하고, 항핵항체(ANA)와 질환 특이 자가항체 검사, 류마티스 관련 혈액검사 등을 통해 전신경화증·루푸스·쇼그렌증후군 등 기저질환 여부를 확인한다. 손톱 밑 모세혈관 구조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거나 끊어진 소견은 이차성 레이노증후군을 의심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레이노증후군을 방치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혈관 수축과 혈류 차단이 반복되면 손끝 피부가 헐어 궤양이 생기거나 작은 상처도 잘 낫지 않는 상황에 직면한다. 심한 경우에는 조직이 죽는 피부 괴사로 이어질 수 있어, 상처가 잘 아물지 않거나 색 변화가 오래 지속되면 반드시 전문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정상완 교수는 “초기에는 단순 냉증처럼 보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피부가 벗겨지고 상처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며 “특히 류마티스 질환자라면 사소한 증상 변화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치료와 예방의 기본 원칙은 ‘말초혈관 수축을 최소화하는 생활습관’이다. 무엇보다 추위 노출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겨울철 외출 시에는 미리 장갑과 두꺼운 양말을 착용하고, 실내에서도 핫팩 등을 적극 활용해 손발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도움 된다. 급격한 온도 변화 역시 혈관 수축을 유발할 수 있어, 따뜻한 곳에서 갑자기 차가운 바깥으로 나가는 상황은 가능한 한 줄이는 것이 좋다.
흡연은 말초혈관을 강하게 수축시켜 레이노증후군을 악화시키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금연은 치료의 ‘선행 조건’이라 할 만큼 중요하다. 과도한 카페인 섭취와 심한 스트레스도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어 커피·에너지음료 섭취를 줄이고, 규칙적인 수면과 스트레스 관리로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활습관 조정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는 약물치료를 병행한다. 정상완 교수는 “혈관을 확장시키는 칼슘채널차단제를 일차적으로 사용하며, 증상이 심하거나 궤양·괴사가 동반된 경우에는 다른 혈관확장제나 주사 치료를 추가로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약물치료 시에는 기저질환과 동반 질환, 복용 중인 약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개별 맞춤 처방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상완 교수는 “겨울마다 손발이 유난히 차갑고 색이 변하는데도 ‘체질’이나 단순 수족냉증으로만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며 “손발 색 변화가 뚜렷하거나 류마티스·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다면, 조기에 내원해 손톱 밑 모세혈관 검사와 자가항체 검사 등을 통해 레이노증후군 여부와 기저질환 동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레이노증후군은 생활습관 관리와 적절한 약물치료를 병행하면 증상 조절과 합병증 예방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추위를 피하고, 금연과 스트레스 조절을 실천하는 작은 실천이 손발 건강은 물론 전신 혈관 건강을 지키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