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최성민 기자] 손해사정에 있어서 보험금 분쟁은 갈수록 심화되어 가고 있고 보험회사 위주의 편의주의적인 업무처리가 고착화되어 가고 있다.
감액, 부지급, 지연지급을 둘러싼 갈등은 일상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소비자는 혼란을 겪고 보험회사에 대한 불신은 누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분쟁의 한가운데에 있어야 할 손해사정사회는 오랫동안 침묵해 왔다.
손해사정은 단순한 보험 실무가 아니라, 보험금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전문 영역이다. 수많은 분쟁 사례는 개별 손해사정사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되고 구조화된 제도의 문제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분석하고 입장을 밝히는 주체는 과연 누구여야 하는가.
손해액 및 보험금을 결정하는 전문직 단체로서 손해사정사회는 주요 손해사정 분쟁 사례에 대해 정기적으로 공식 의견서를 발표해야 한다. 법리와 판례, 실무를 종합한 객관적 분석을 통해 사회에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인 것이다.
공식 입장이 부재한 상태에서 분쟁은 개인 민원으로 흩어지고, 보험회사로부터 개별 손해사정사는 무시당하기 일쑤이다. 손해사정으로 정당하게 지급되어야 할 보험금임에도 간혹 보험회사의 억지 주장에 당황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개별 손해사정사가 보험회사를 상대하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소비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에도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보험회사가 보상을 잘해주는가”, “어디가 민원이 많고 횡포를 부리는 회사인가.” 지금까지 이 질문에 대해 공신력 있는 답변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손해사정사회가 독립손해사정사들을 대상으로 익명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감액 빈도나 분쟁 유형, 소송 전환율 등 객관적 지표를 축적·분석한다면 시장의 투명성은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이는 특정 보험회사를 비판하거나 공격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보험회사 스스로 보상 관행을 점검하고 개선할 수 있는 거울을 제공하는 일이다. 동시에 소비자에게는 합리적 선택의 기준을 제공하고, 감독당국과 사법부에는 현장의 생생한 자료를 전달하는 공익적 역할이 된다.
이러한 조사 결과와 공식 의견은 소비자단체와 언론을 통해 사회에 전달될 필요가 있다. 전문직 단체의 전문성은 내부 문서에 머무를 때가 아니라,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에 기여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손해사정사의 목소리가 보험사나 당사자의 이해관계가 아닌,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전문 의견으로 전달될 때 손해사정사의 사회적 위상 또한 달라질 것이다.
일각에서는 협회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라는 이유로 이러한 활동을 주저한다. 그러나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반복되는 분쟁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전문직 단체로서 책임을 방기하는 것에 가깝다. 객관적 자료와 투명한 절차에 기반한 의견 표명은 중립을 훼손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중립을 제도화하는 과정이다.
손해사정사회는 이제 조용한 조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분쟁을 분석하고, 기준을 제시하며, 사회에 설명하는 역할을 수행할 때 손해사정사는 분쟁의 주변인이 아닌 해결 구조의 중심 주체가 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손해사정사회가 공익과 전문성의 이름으로 말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