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경호 기자] 소아청소년 비만이 흔해지면서 지방간 역시 학교검진과 외래에서 자주 발견되는 질환이 됐다. 류인혁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성 니콜라스 어린이병원)는 “소아청소년 지방간은 단순히 살이 쪄서 생긴 간 문제로만 볼 수 없고, 몸 전체의 대사 기능 이상이 시작됐다는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류 교수는 진료 현장에서 비슷한 체중과 나이에도 검사 결과가 크게 갈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같은 정도로 비만해도 어떤 아이는 간수치·혈당·초음파가 정상인 반면, 다른 아이는 간수치 상승과 함께 당뇨 전단계, 이상지질혈증, 중등도 이상의 지방간이 동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진은 이런 차이가 ‘체중’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으며, 대사 위험인자 동반 여부가 예후를 가르는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지방간질환의 명칭이 바뀐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23년 국제 간학계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NAFLD)’을 ‘대사기능장애 관련 지방간질환(MASLD)’으로 변경했다. 류 교수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배제’ 중심의 이름에서, 대사 기능장애라는 ‘원인’에 초점을 맞춘 개념으로 이동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MASLD는 간에 지방이 쌓인 단순 지방간부터 염증이 동반된 지방간염(MASH, 이전 NASH), 섬유화와 간경변까지 폭넓게 포함한다. 진단은 간 지방 축적이 확인되면서 비만, 혈당 이상, 고혈압, 고중성지방혈증, 낮은 HDL 콜레스테롤 가운데 최소 1가지 이상의 대사 위험인자가 동반되는 경우를 기준으로 삼는다.
유병 규모도 작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소아청소년의 약 7~14%가 MASLD를 가진 것으로 제시되며, 비만 아동에서는 30~50%까지 보고된다. 국내에서도 비만 아동의 약 40% 이상에서 지방간이 발견되고, 코로나 이후 58%까지 관찰된 연구도 소개돼 왔다. 류 교수는 “외래에서는 10세 이상 비만 아동에서 특히 흔하고, 8~9세 미만에서도 드물지 않게 확인된다”고 했다.
질환의 위험은 ‘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 강조된다. 최근에는 비만이 지방간을 만들고, 지방간이 다시 비만과 대사질환을 악화시키는 ‘양방향 악순환’ 관점이 확산되는 추세다. 지방이 쌓이고 염증이 생긴 간은 특정 물질(hepatokine)을 비정상적으로 분비할 수 있고, 이는 근육·지방조직의 인슐린 저항성을 높여 혈당 조절을 어렵게 만들며 다시 간 지방 축적을 키우는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스웨덴 소아비만 코호트(BORIS, 1만346명)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MASLD가 있는 비만 아동의 제2형 당뇨병 위험이 나이, 성별, 비만도, 가족력과 독립적으로 2.71배 높았다는 결과가 ‘Diabetes Care’(2024)에 실렸다. 지방간을 동반한 젊은 성인에서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다는 보고도 축적되고 있다.
치료에서 중요한 특징은 ‘초기에는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이다. 간에 지방만 쌓인 단계는 체중 감량과 식습관 교정으로 정상화가 가능하지만, 염증이 지속되면 간세포 손상과 함께 섬유화가 진행돼 회복이 어려워질 수 있다. 소아 지방간염 환자를 추적한 연구에서 약 3분의 1이 2년 이내 조직학적 악화를 보였다는 결과가 제시되면서, 의료계에서는 “지켜보자”는 접근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선별검사 권고도 분명해졌다. 최신 가이드라인은 비만 아동(BMI 95백분위수 이상)에서 MASLD 선별검사를 권장하고, 과체중(BMI 85~95백분위수)이라도 당뇨 전단계, 이상지질혈증, 고혈압, 대사증후군 가족력 등 위험인자가 있으면 검사를 고려하도록 제시한다. 류 교수는 “체중이 많이 나가는 아이는 10~12세부터 최소 연 1회 간수치를 포함한 혈액검사를 점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간수치 상승이 모두 지방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어서 B형간염, 윌슨병, 자가면역간염 등 다른 간질환 감별이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다.
생활관리의 효과는 생각보다 빠를 수 있다는 게 의료진 설명이다. 체중의 3~5% 감량만으로도 간에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날 수 있고, 7~10% 감량은 염증 감소, 10% 이상 감량은 섬유화 호전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간수치는 다른 합병증에 비해 반응이 빠른 편이라 2~3kg의 감량만으로도 수치가 뚜렷이 떨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식습관에서는 탄산음료와 가당 음료를 줄이는 것이 핵심으로 꼽힌다. 액상과당이 든 음료는 간에서 지방으로 전환되기 쉬워 피하는 편이 좋고, 초가공식품 섭취를 줄이는 방향이 권고된다. 운동은 처음부터 강도를 높이기보다 하루 20분 걷기처럼 실천 가능한 수준에서 시작해 점진적으로 늘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류 교수는 조언했다.
류 교수는 “학교검진에서 간수치 이상이 나오면 가볍게 넘기지 말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진료를 통해 원인 감별과 관리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며 “아이들은 회복력이 큰 만큼 지금 발견하고 지금 시작하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