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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청의 ‘학생 성장’, 구호를 넘어 개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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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청의 ‘학생 성장’, 구호를 넘어 개념이 돼야 한다

이경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3-06 14:45

황수영 교육학 박사
황수영 교육학 박사
[더파워 이경호 기자] 서울시교육청 정근식 교육감은 2026 신년 기자회견에서 서울교육의 방향으로 ‘학생 성장을 이끄는 3대 서울교육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지식이해 중심 교육에서 역량 기반 교육으로, 행정 주도의 하향식 정책에서 현장 참여형 상향식 구조로, 정책과 행정 중심에서 학생 성장 중심 교육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표현만 놓고 보면 이견을 달기 어려운 방향이다. 학생 성장을 앞세우고, 교육의 중심을 행정이 아닌 학생과 학교 현장으로 옮기겠다는 말은 누구도 쉽게 반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교육정책은 좋은 말의 나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문제는 서울교육이 말하는 ‘학생 성장’이 과연 무엇을 뜻하느냐는 점이다.

서울시교육청의 2026 주요 업무를 들여다보면 이 개념은 기초학력이 낮은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높이고, 학생들의 정성적 활동 결과물을 AI로 평가하며, 정서·행동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심리적으로 지원하고, AI 시대에 맞춰 교사의 연구 역량을 강화하는 여러 정책 사업들로 구성돼 있다. 물론 각각의 사업은 필요하다. 다만 이 사업들을 한데 묶는 ‘학생 성장’이라는 말이 구체적이고 일관된 개념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서울교육은 이 정책들을 통해 어떤 미래 인재를 길러내고자 하는가.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시민 역량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존재하던 여러 정책 사업을 새로운 언어로 재포장한 행정적 표현에 그치는 것인가. 지금의 설명만으로는 그 차이를 분명히 읽어내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서울시교육청이 제시한 이 패러다임이 과연 새로운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학생 중심 교육’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개념이 아니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해결학습, 토의·토론학습, 협력학습 등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또래와 상호작용하며 해결 방안을 만들어가는 학습자 중심 수업이 실천돼 왔다. 역량 기반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이미 핵심 방향으로 역량 교육을 제시했고, 교육 현장은 지난 10년 넘게 이를 실천의 목표로 삼아왔다.

설령 이를 기존 역량교육에서 확장된 ‘미래 역량’으로 설명하더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시민성은 민주시민교육으로, 디지털 역량은 디지털 리터러시와 디지털 윤리 교육으로 이미 학교 현장에 도입돼 운영돼 왔다. 결국 서울교육이 내세운 ‘학생 성장’이 기존 정책과 무엇이 다르고, 어떤 철학적 토대 위에서 새롭게 제시된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차별성이 부족하다는 점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개념의 부재다. 학생 성장은 무엇인가. 학업성취인가, 문제해결역량인가, 사회성인가, 정서적 안녕감인가. 혹은 이 모든 요소를 포괄하는 총체적 개념인가. 정책은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무엇을 성장으로 볼 것인지가 정의돼야 정책의 우선순위가 정해지고, 그에 따라 교육의 결과를 평가하고 측정할 수 있다. 그것이 데이터 기반 교육정책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지금 서울교육의 ‘학생 성장’은 명확히 정의된 개념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사업들을 새로운 범주 아래 재배열한 행정적 분류처럼 보인다. ‘성장’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나 긍정적으로 들린다.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개념이 비어 있을수록 구호는 크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정책은 모호해지기 쉽다. 결국 ‘학생 성장’은 그저 좋은 말을 가져다 붙인 추상적 슬로건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교육청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학생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서울교육의 대전환으로 제시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충분히 성찰했는가. 교육정책은 수많은 학생의 삶과 미래를 바꾸는 공적 결정이다. 단지 듣기 좋은 언어로 포장할 일이 아니라, 무엇을 목표로 하고 어떤 방식으로 실현할 것인지 분명히 설명해야 하는 영역이다. 정책의 언어는 명확해야 하고, 실천의 방식은 치밀해야 한다.

이제 서울시교육청이 답할 차례다. 서울교육이 말하는 학생 성장은 정확히 무엇인가. 서울교육은 어떤 미래 시민을 길러내고자 하는가. 그리고 그 목적에 부합하는 정책 체계가 실제로 설계돼 있는가. 아니면 보여주기식 성과를 위해 기존 사업들을 보다 세련된 언어로 묶어낸 것에 불과한가.

변혁의 시대일수록 교육은 더 정직해야 한다. 교육을 둘러싼 사회 변화가 거셀수록, 정책은 더 깊은 사유와 분명한 개념 위에 세워져야 한다. ‘학생 성장’이 진정한 교육 패러다임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말의 실체부터 분명해져야 한다. 구호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지만, 개념 없는 구호는 교육을 바꾸지 못한다.

글: 황수영 교육학 박사, 전 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 교육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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