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호남취재본부 손영욱 기자]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남겨진 가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느 세월호 유가족이 했던 이 말은 지금 이 사회가 직면한 현실이며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끝내 답하지 못한 질문이다. 12년이라는 시간은 분명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세월호 앞에서 그 시간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진다. 12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끝나지 않았고 지나갔지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아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참사의 고통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의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으며 안전보다 비용을, 생명보다 이익을 우선하는 그릇된 인식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 4·16연대는 "12주기를 맞아 다시 한 번 기억을 모으고, 온전한 진실과 책임을 찾아가는 기억과 약속의 달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필자는 이날 운전을 하다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목포에 머물러 있는 세월호 선체 앞을 지나쳤다. 문득 새삼스럽게 “벌써 12년이 흘렀나”라며 기억을 떠올려 봤다. 부끄럽게도 당시의 감정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머지 않아 세월호 선체가 국립 세월호 생명기억관으로 옮겨진다는 생각에 다시한 번 되돌아 보게 됐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임을 깨닫게 했다.
정부는 선체를 보존하고 추모와 안전교육 체험시설을 결합한 복합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억을 남기겠다는 국가의 의지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기억을 남기는 것과 사회를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우리는 과연 기억을 넘어 변화까지 만들어냈는가.
유가족들은 이 공간이 단순한 추모의 장소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안전의 가치를 체감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 말은 희망이면서 동시에 절박한 질문이다. 왜 우리는 아직도 안전을 ‘바라야 하는 사회’에 머물러 있는가 1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안전은 여전히 완성된 현실이 아니라 도달해야 할 목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로 딸을 잃은 한 어머니는 지금도 그림을 그리며 살아간다. 지켜주지 못한 약속은 색으로 남았고 말로 다하지 못한 감정은 캔버스 위에 켜켜이 쌓였다. 한때 바다를 바라보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사람이 다시 바다 앞에 서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순한 치유의 시간이 아니라 버티고 견디는 시간이었다 그녀의 그림은 예술이 아니라 기록이고 기록을 넘어선 증언이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것이라 생각하는 사회와 달리 개인의 기억은 끝까지 남아 있다는 증언이다
올해도 추모식은 이어졌다. 헌화와 묵념 그리고 문화제가 진행되며 희생자들을 기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익숙한 장면이지만 그 익숙함이 오히려 우리를 더 무디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매년 잊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변하지 않는 질문 앞에서는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다 왜 그날 구조는 실패했는가 왜 책임은 끝까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같은 비극을 막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세월호 이후 수많은 대책과 제도가 만들어졌다 매뉴얼이 정비되고 조직이 개편되었으며 안전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분명 커졌다. 그러나 현실은 그 기대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태원 참사와 오송 지하차도 사고 그리고 끊이지 않는 산업현장의 죽음들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안전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매번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 다짐하지만 결국 또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제는 직면해야 한다 우리는 정말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억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노란 리본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리본이 상징하는 책임과 변화까지 함께 남아 있는지는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기억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세워질 국립 세월호 생명기억관은 단순한 추모 공간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눈물로 끝나는 장소가 아니라 질문이 시작되는 공간이어야 하며 아이들이 견학을 오는 장소가 아니라 어른들이 책임을 배우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세월호의 기억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바꾸는 힘으로 이어질 수 있다.
12년이 지났다. 기억은 분명 더 깊어졌지만 안전은 그만큼 깊어졌는지 우리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세월호는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 현재형이다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이 비극은 끝나지 않는다. 기억은 충분하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