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R&D센터 권현주 연구원(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선명 연구원, 김정국 그룹장이 미국비만학회(Obesity Week)에서 H.O.P 프로젝트 내 비만 신약 과제들의 연구 결과 3건이 담긴 포스터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더파워 이경호 기자] 한미약품의 미래 성장동력을 하나의 비만치료제로 압축하기는 어렵다. 국내 품목허가를 신청한 제품과 미국 임상에 들어간 후속 후보물질,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이전한 희귀질환 신약 후보물질, 차세대 항암 기술이 서로 다른 개발 단계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상용화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후보물질은 GLP-1 계열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다. 한미약품은 2025년 12월 에페글레나타이드 오토인젝터주의 국내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이에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 대상으로 지정됐다. 현재는 허가 심사를 진행하는 단계로, 품목허가를 받은 것은 아니다. 회사는 2026년 품목허가와 출시를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당뇨병을 동반하지 않은 비만 성인 4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3상의 40주차 분석에서 에페글레나타이드 투여군의 평균 체중감소율은 9.75%로 나타났다. 최대 체중감소율 30.14%는 일부 환자에게서 관찰된 값으로 평균 효과와는 구분해야 한다. 한미약품은 이 결과를 토대로 허가 절차와 상용화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사업 가치는 최초 비만 적응증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미약품은 당뇨병 적응증 확대와 디지털융합의약품 개발 등 제품 생애주기 확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하나의 신약을 출시한 뒤 추가 적응증과 복약관리 영역으로 사업 범위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들 계획은 향후 임상과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중기 성장축은 삼중작용제 HM15275다. 이 후보물질은 GLP-1과 GIP, 글루카곤 수용체에 동시에 작용하도록 설계됐다. 미국 식품의약국으로부터 임상 2상 시험계획을 승인받은 뒤 2025년 12월 첫 환자 투약을 마쳤다. 임상 2상에서는 36주간 투여해 비만·고도비만 환자의 체중과 제지방 변화를 평가한다. 임상 종료 예상 시점은 2027년 상반기이며, 한미약품이 제시한 상용화 목표는 2030년이다.
HM15275의 목표는 아직 확인된 임상 결과가 아니다. 한미약품은 25% 이상의 체중 감량과 근 손실 최소화를 개발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실제 효능과 안전성은 진행 중인 임상 2상에서 검증돼야 한다. 회사는 비만뿐 아니라 제2형 당뇨병으로 적응증을 확대하는 임상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HM17321은 기존 인크레틴 계열과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CRF2 수용체를 선택적으로 겨냥하는 UCN2 유사체로, 지방 감량과 근육량·근 기능 개선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해 개발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2025년 11월 임상 1상 시험계획을 승인했으며, 임상에서는 건강한 성인과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과 내약성, 약동학·약력학적 특성을 평가한다. 한미약품이 밝힌 상용화 목표는 2031년이다.
에페글레나타이드가 국내 허가와 시장 진입을 맡고, HM15275가 고도비만 치료 가능성을, HM17321이 체중 감량 과정의 근육 문제를 겨냥하는 구조다. 작용 기전과 개발 단계를 달리한 후보물질을 배치해 특정 임상 결과 하나에 비만 사업 전체가 좌우되는 위험을 분산한 셈이다.
희귀질환 분야에서는 연구개발이 실제 계약으로 연결됐다. 한미약품은 지난 6월 일라이 릴리와 단장증후군 치료제로 개발 중인 소네페글루타이드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소네페글루타이드는 한미약품의 장기지속형 바이오의약품 플랫폼 랩스커버리를 적용한 신약 후보물질로, 현재 글로벌 임상 2상이 진행되고 있다.
계약에 따라 릴리는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소네페글루타이드의 개발·제조·상업화 독점 권리를 확보했다. 한미약품은 확정 계약금 7500만달러를 받았으며 임상 개발과 규제 승인, 상업화 성과에 따라 최대 11억8500만달러의 단계별 기술료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제품 출시 이후 로열티도 별도다. 최대 단계별 기술료는 조건 충족을 전제로 한 금액으로 확정 매출은 아니다.
후속 개발의 역할도 나뉘었다. 한미약품은 현재 진행 중인 단장증후군 글로벌 임상 2상을 완료 시점까지 수행하고, 릴리는 축적된 비임상·임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가 임상시험을 추진할 예정이다. 자체 연구개발 역량과 글로벌 제약사의 개발·상업화망을 결합한 구조다.
항암 분야는 더 먼 미래를 준비하는 축이다. 한미약품은 2026년 미국암연구학회에서 8개 신약 후보물질에 관한 비임상 연구 결과 9건을 발표했다. 표적 단백질 분해제와 mRNA 치료제, 이중항체, 이중항체-약물접합체 등 차세대 기술이 포함됐다. 아직 비임상 단계의 연구가 중심이지만 비만·대사와 희귀질환을 넘어 항암 분야의 기술 기반을 넓히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미약품의 파이프라인은 허가 신청, 임상 1·2상, 기술이전, 비임상 연구가 층층이 이어지는 형태다. 단기적으로는 에페글레나타이드의 허가 여부가, 중기적으로는 HM15275와 HM17321의 임상 결과가, 장기적으로는 항암 후보물질의 임상 진입과 추가 기술이전이 기업가치를 좌우하게 된다.
임상 실패나 허가 지연 가능성은 신약 개발 기업이 피할 수 없는 위험이다. 그러나 상용화에 가까운 제품과 후속 임상 후보물질, 글로벌 파트너가 확보된 기술을 함께 보유하면 특정 결과 하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한미약품이 준비한 것은 비만약 한 품목의 흥행이 아니다. 제품 출시와 임상, 기술수출, 후속 연구가 다음 성장동력으로 이어지는 다층적인 구조다. 미래 비전의 성패는 파이프라인 수가 아니라 각각의 개발 단계를 실제 허가와 매출로 연결하는 실행력에서 갈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