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성 간세포암 환자 90명 후향 분석
무진행 기간 7.1개월 대 3.4개월…고위험 환자에서도 간 내 종양 조절
연구진 “모든 환자에 우월한 치료 의미 아냐…환자 선별 중요”
(왼쪽부터)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성필수 교수, 의정부성모병원 소화기내과 남희철 교수,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탁권용 임상강사, 경북대학교 유재성 박사[더파워 이설아 기자] 1차 면역항암제 치료 이후에도 종양이 줄지 않은 진행성 간암 환자에서 간동맥주입항암치료(HAIC)가 경구 표적항암제보다 높은 종양 반응률과 긴 무진행 기간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만 연구진은 HAIC가 모든 진행성 간암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더 나은 치료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간에 종양이 집중돼 있거나 주요 혈관을 침범한 환자 등 치료 특성에 맞는 환자를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4개 병원 연구팀은 1차 표준치료인 아테졸리주맙-베바시주맙 병용요법 이후에도 종양이 감소하지 않은 진행성 간세포암 환자를 대상으로 HAIC와 경구 표적항암제의 2차 치료 효과를 비교했다.
연구 대상은 2022년 3월부터 2025년 8월까지 서울성모병원과 의정부성모병원, 부천성모병원, 은평성모병원에서 치료받은 진행성 간세포암 환자 90명이다.
이 가운데 51명은 HAIC를, 39명은 경구 표적항암제인 티로신키나제억제제 치료를 받았다.
차이는 종양 반응에서 크게 나타났다.
종양 크기가 의미 있게 감소한 환자의 비율인 객관적반응률은 HAIC군이 35.3%로, 표적항암제군 5.1%의 약 6.9배였다.
종양이 줄거나 더 이상 커지지 않은 환자의 비율인 질병조절률 역시 HAIC군 66.7%, 표적항암제군 25.6%로 차이를 보였다.
암이 다시 진행되기까지의 기간에서도 HAIC군이 길었다.
연령과 간 기능, 전신 상태, 간 내 종양 범위, 혈관 침범 등 치료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을 통계적으로 보정한 뒤 무진행 기간은 HAIC군 7.1개월, 표적항암제군 3.4개월로 나타났다.
특히 HAIC군에는 간 안의 종양 범위가 넓거나 간문맥을 침범한 고위험 환자가 더 많이 포함돼 있었다.
이 같은 고위험 환자 비율은 HAIC군이 88.2%로 표적항암제군 64.1%보다 높았지만, 연구에서는 HAIC군의 간 내 종양 조절 효과가 더 높게 나타났다. 중증 이상반응과 부작용으로 치료를 중단한 사례 역시 HAIC군에서 더 적었다.
HAIC는 피부 아래 항암제 주입 포트를 설치한 뒤 카테터를 간동맥에 연결해 항암제를 간에 집중적으로 전달하는 치료법이다.
전신에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과 달리 종양이 집중된 간에 항암제를 직접 전달할 수 있어 간 내 종양 부담이 크거나 간문맥 등 주요 혈관을 침범한 경우 치료 선택지로 활용될 수 있다.
실제 연구에서 검토된 68세 남성 환자는 바르셀로나 간암 병기 C기로, 오른쪽 간을 채운 거대 침윤성 암과 왼쪽 문맥의 종양혈전이 있었다.
이 환자는 8차례 HAIC를 받은 뒤 종양이 크게 감소했고 문맥 종양혈전도 완전히 사라졌다. 연구진은 13cm에 달했던 거대 간암이 치료 후 간이식을 고려할 수 있는 크기까지 줄어든 사례도 제시했다.
이처럼 종양을 먼저 줄여 수술이나 간이식 같은 다음 단계 치료로 연결하는 것도 HAIC의 임상적 활용 가능성 가운데 하나로 제시됐다.
탁권용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임상강사는 "간 내 종양 부담이 높거나 혈관 침범이 있어 좋지 않은 경과가 예상됐던 환자에서도 종양 크기를 줄이고 질병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치료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종양을 안정적으로 조절하고 크기를 줄이면 간암 절제술이나 간이식 등 다음 치료로 이어갈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임상적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HAIC가 진행성 간암의 2차 치료를 모두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HAIC는 간 내부에 집중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장기로 전이가 진행된 환자라면 전신에 작용하는 표적항암제가 더 적합할 수 있다. 경구 표적항암제는 통원 치료가 가능해 체력 부담이 큰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특징도 있다.
성필수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이번 연구가 단편적으로 'HAIC가 모든 환자에게 더 낫다'는 의미로 전달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간암 병기뿐 아니라 간 기능, 간 내 종양 부담, 혈관 침범, 간 외 전이, 출혈 위험과 이전 치료 반응까지 함께 살펴 치료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1차 치료 이후 선택할 수 있는 2차 치료법의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HAIC와 표적항암제를 직접 비교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현재 아테졸리주맙-베바시주맙 병용요법이 진행성 간암의 1차 표준치료로 사용되고 있지만 모든 환자가 충분한 반응을 얻는 것은 아니다. 연구팀은 1차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후속 치료 전략을 찾기 위해 이번 분석을 진행했다.
성 교수는 "전신치료와 중재시술, 방사선치료, 수술, 간이식 등을 환자 상태와 치료 반응에 따라 연결하는 다학제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북미영상의학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Radiology’ 8월호에 게재됐다.
이설아 더파워 기자 seolnews@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