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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는 반토막 났는데 수주는 더 늘었다…전력기기 ‘AI 버블론’ 뒤집는 숫자들

이경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8-25 10:05

5월 고점 이후 전력인프라 최대 58.3% 조정…실적 전망은 오히려 상향
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LS일렉트릭 신규 수주 목표 일제히 높여
美 유틸리티 투자·AI 금융자본 확대에 국내 18.4GW 데이터센터까지…증설 효과는 2027년부터

LS일렉트릭 UL인증 배전반
LS일렉트릭 UL인증 배전반
[더파워 이경호 기자] 올해 가장 뜨거웠던 전력기기주가 가장 거친 조정을 받은 업종 가운데 하나로 돌아섰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에 대한 의구심과 미국의 데이터센터 인허가 중단, 메모리주로의 수급 쏠림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주요 전력인프라 기업의 주가는 고점 대비 절반 가까이 밀렸다.

그런데 기업 실적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주가가 떨어지는 동안 이익 전망은 낮아지지 않았고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은 오히려 올해 신규 수주 목표를 일제히 끌어올렸다.

전력기기 슈퍼사이클이 꺾인 것이 아니라 기대가 먼저 과열됐다가 가격만 조정을 받았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7일 고점 이후 국내 전력인프라 업종의 최대 낙폭은 58.3%에 달했다. 반면 같은 기간 주요 전력기기 기업의 올해와 내년 매출·영업이익 전망은 상향됐다. 주가를 끌어내린 핵심이 이익 감소보다 밸류에이션 축소였다는 의미다.

실제 국내 전력기기 대형 3사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한때 평균 53.6배까지 치솟았다가 최근 29.7배 수준으로 내려왔다. 특히 LS일렉트릭은 고점에서 선행 PER이 82.8배까지 상승했던 만큼 실적보다 AI 기대와 수급이 주가를 앞서간 측면이 컸다.

이번 조정이 과거 전력기기 사이클의 끝과 다른 것은 주문이 줄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 7월 글로벌 빅테크 업체와 약 1조1000억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한 뒤 연간 수주 가이던스를 42억달러에서 52억달러로 높였다.

효성중공업은 1분기 중공업 신규 수주가 사상 최대인 4조2000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연간 신규 수주 목표를 기존 8조4000억원에서 12조원으로 끌어올렸다.

LS일렉트릭의 상향 폭은 더 크다. 연간 신규 수주 목표를 4조원에서 6조~6조5000억원으로 상향했다. 빅테크 직접 수주와 국내외 데이터센터 물량이 동시에 증가한 결과다.

세 회사가 같은 시기에 수주 목표를 높였다는 것은 특정 기업의 일회성 계약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AI 데이터센터와 미국 전력망 교체, 발전·송배전 투자라는 여러 수요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는 쪽에 가깝다.

전력기기주를 흔든 가장 큰 악재 중 하나는 미국 데이터센터 인허가 중단이었다.

올해 여름까지 미국에서는 약 1300억달러 규모, 75건 안팎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중단된 것으로 파악됐다. 뉴욕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대형 데이터센터의 신규 허가를 일시적으로 막는 조치까지 나왔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꺾이고 전력기기 주문까지 줄어들 수 있는 신호다.

하지만 인허가 중단의 배경을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그림이 나온다. 주민 반대의 핵심은 AI 자체보다 전기요금 상승과 물 사용, 소음 문제였다. 미국 가정용 전기요금 상승이 정치 문제로 번지면서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표적이 된 것이다.

전력기기 업계에는 역설적인 대목이다. 데이터센터 때문에 전기요금이 오른다는 비판을 해결하려면 발전설비와 송전망, 배전망을 늘려 전력 공급 자체를 확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를 막는 정책이 장기간 지속되기보다 전력 공급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 해법이 이동할 경우 오히려 전력망 투자의 필요성이 더 커질 수 있다.

미국 전력회사들의 움직임도 아직 투자 축소와는 거리가 있다.

미국 투자자 소유 전력회사들의 발전·송전·배전 설비투자 전망은 지난해 말 제시됐던 수준보다 올해 다시 높아졌다. 통상 규제를 받는 유틸리티 기업은 5년 이상의 장기 투자계획을 바탕으로 요금 승인을 받기 때문에 빅테크의 분기별 투자계획보다 설비투자가 급격하게 줄어들 가능성이 낮다.

전력망을 직접 설치하는 시공업체에서도 같은 신호가 나온다. 미국 콴타서비스와 MYR그룹의 합산 수주잔고는 2023년부터 증가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 성장 속도가 더 빨라졌다.

특히 초고압 송전망 투자가 예상보다 앞당겨지고 있다. 콴타서비스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765kV 프로젝트의 본격 수주 시점을 2027년 하반기로 예상했지만 올해 1분기에는 이미 첫 765kV 프로젝트가 수주잔고에 들어왔다고 밝혔다.

AI 데이터센터 건설 자금을 대는 주체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구글, 메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의 자체 현금흐름이 AI 투자 규모를 결정했다면 최근에는 사모펀드와 자산운용사, 투자은행까지 자금조달에 참여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엔비디아는 이달 아폴로·블랙록·블랙스톤·브룩필드·골드만삭스·KKR 등과 AI 컴퓨트 인프라 금융 플랫폼을 구성했다. 목표는 5000억달러 이상의 제3자 자본을 AI 인프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도 AI 데이터센터와 발전·송전·에너지저장 등 미국 핵심 인프라에 총 2500억달러의 자본을 동원하는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내놨다.

데이터센터 유동화 금융의 규제 부담을 낮추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AI 투자 자금이 빅테크의 현금흐름이라는 하나의 수도꼭지에서 금융시장 전체로 넓어지는 셈이다.

실제 AI 인프라 시장에서 가장 자금조달에 취약한 곳으로 꼽혔던 네오클라우드 기업도 반등하고 있다. 코어위브와 네비우스는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각각 19%, 34% 급등했다.

가격에서도 공급 부족 신호가 나타났다. 네비우스는 장기계약의 MW당 연간 계약가치가 2000만~2500만달러 수준인 반면 단기 계약은 4000만~5000만달러에 형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수요 부족보다 공급 부족이 가격을 끌어올리는 구조에 가깝다.

전력기기업체 입장에서는 AI 데이터센터가 전부도 아니다.

기존 전력망 교체 수요가 바닥을 받치고 그 위에 AI 데이터센터가 추가되는 구조다. 송전에서는 765kV 초고압 전력망이, 배전에서는 데이터센터와 현장발전, 800V 직류(DC) 전환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

문제는 공급이 수요만큼 빨리 늘지 못한다는 점이다.

국내외 전력기기업체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격적인 증설에 들어갔지만 공장 건설과 생산 안정화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업계 전체 공급능력이 의미 있게 증가하는 시점은 2027년 하반기 이후로 예상된다.

즉 수주는 지금 쌓이고 있지만 새로운 공장이 물량을 쏟아내기까지는 최소 1년 이상 남아 있는 셈이다. 전력기기 공급 부족과 긴 납기가 단기간 해소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약 1100억원을 투입한 청주 배전캠퍼스 가동을 시작했다. 기존 안성공장보다 배전기기 생산능력을 70% 늘린 시설이다.

여기에 울산과 미국 앨라배마에서 약 5000억원 규모의 추가 증설을 진행하고 있다. 울산 증설은 2027년 하반기, 앨라배마 신공장은 2028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실적 기여가 예상된다.

효성중공업은 미국 송전시장을 더 깊게 파고드는 전략이다.

창원 GIS 전용공장과 미국 멤피스 증설이 올해 하반기 완료될 예정이고, 콴타서비스와 추진하는 미국 차단기 합작생산도 오는 10월 시작된다. 올해 중공업 부문 설비투자는 지난해 2000억원대 중반에서 약 6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미국 송전망에 설치된 효성중공업 765kV 초고압변압기
미국 송전망에 설치된 효성중공업 765kV 초고압변압기


효성중공업의 미국 매출은 여전히 유틸리티가 중심이지만 고객군에는 이미 인터섹트파워와 소프트뱅크, xAI 등 AI 데이터센터 생태계 기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765kV 변압기와 800kV 가스차단기(GCB) 같은 초고압 제품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도 차별점이다. 지난 2월에는 약 7870억원 규모의 765kV 변압기·리액터 계약을 확보했으며 납품 일정은 2031년 초까지 이어진다. 2030년 이후 생산 물량까지 주문이 들어오고 있는 셈이다.

LS일렉트릭은 세 회사 가운데 수주가 매출로 바뀌는 속도가 가장 빠른 기업으로 꼽힌다.

주력인 배전반의 납기는 약 10개월로 2년 이상이 걸리는 초고압 변압기보다 짧다. 신규 주문이 늘어나면 1년 안에 매출 증가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다.

생산능력도 이미 상당 부분 늘렸다. 부산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은 연간 2000억원에서 6000억원으로 세 배 확대됐고, 미국 유타 공장은 2500억원을 투입해 기존보다 여섯 배 큰 생산시설로 증설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 배스트롭에는 생산·연구·설계 기능을 갖춘 캠퍼스를 마련했다. 기존 12~15주였던 현지 제품 납기를 2주 이내로 단축하는 것이 목표다.

LS일렉트릭의 다음 카드는 직류다.

천안에는 100% DC 배전을 적용한 공장을 구축해 저압직류(LVDC)와 반도체 변압기(SST)를 실증하고 있다. 반도체 차단기(SSCB)와 정류기, 사이드카 등 800VDC 전력 인프라에 필요한 제품도 개발 중이다.

AI 서버 전력이 커질수록 기존 교류(AC) 전원을 여러 번 변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 손실을 줄여야 한다. 엔비디아가 800VDC 전력 아키텍처 전환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LS일렉트릭의 올해 매출이 6조6860억원으로 전년보다 34.6%, 영업이익은 7250억원으로 69.9%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매출은 8조2750억원, 영업이익은 1조510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효성중공업 역시 올해 매출 7조4060억원, 영업이익 1조1300억원에서 내년 매출 8조9190억원, 영업이익 1조5900억원으로 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증설을 먼저 끝낸 업체는 수확 단계에 들어갔다.

일진전기는 충남 홍성 초고압 변압기 공장 증설을 경쟁사보다 일찍 마무리했다. 올해 매출은 2조3650억원, 영업이익은 2620억원으로 전망됐다. 증설 효과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실적에 반영되는 구조다.

대한전선은 제조에서 시공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약 5000억원을 투입하는 당진 해저케이블 2공장을 2027년 가동하고, 해저케이블 포설선까지 추가 확보해 생산과 시공을 함께 제공하는 구조로 전환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정부의 대규모 전력수요 확대 계획이 또 다른 변수가 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 6월 발표한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 3대 메가프로젝트의 신규 투자 규모는 약 1500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전력기기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반도체 팹과 AI 데이터센터다.

정부는 2035년까지 18.4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29년까지 8.4GW를 먼저 확보하고 이후 2035년까지 18.4GW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SK는 장기적으로 15GW, GS는 강원 동해에서 2.4GW, 네이버는 세종 거점을 장기적으로 1GW급까지 확장하는 구상이 제시됐다.

반도체까지 더하면 신규 전력수요는 더 커진다. 3대 메가프로젝트로 새로 추가되는 전력수요만 AI 데이터센터 18.4GW, 반도체 6.3GW 등 총 24.7GW에 달한다.

이에 정부는 2040년 목표 전력수요 전망도 크게 높였다. 지난 4월 131.8~138.2GW였던 잠정 전망치는 이달 158.4~165GW로 26GW 이상 상향됐다.

전력수요가 20GW 이상 한꺼번에 늘어나면 발전소만 추가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생산한 전기를 이동시키는 송전선과 변전소, 산업단지와 데이터센터 안으로 전달하는 배전설비까지 모두 늘려야 한다.

신규 원전과 기존 원전 계속운전, 재생에너지 확대, 송·변전망 증설을 함께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향후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전력기기업체에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력수요 전망이 높아진 만큼 실제 발전원과 송전망 확충 계획이 확정되면 국내 전력기기 수주도 장기간 가시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전력기기 업종을 둘러싼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미국 데이터센터 인허가 갈등이 예상보다 장기화하거나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 커질 경우 밸류에이션은 또 흔들릴 수 있다. 2027년 이후 국내외 업체들의 신규 공장이 한꺼번에 가동될 경우 지금의 공급자 우위가 완화될 가능성도 있다.

주가가 이미 한 차례 급등했던 만큼 다시 과도한 기대가 붙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전력기기 대형주의 선행 PER이 고점에서 50배를 넘어섰던 경험은 실적이 좋아도 가격을 무한정 높게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다만 이번 조정에서 확인된 숫자는 분명하다. 주가는 떨어졌지만 이익 전망은 올라갔고, 대형 3사는 수주 목표를 동시에 상향했다. 미국 유틸리티의 설비투자는 확대되고 있으며 생산능력 증가가 본격화하는 시점은 2027년 이후다.

AI 데이터센터가 만들어낸 전력 부족은 서버만 더 산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데이터센터까지 보내기 위해 변압기와 차단기, 배전반, 케이블을 모두 깔아야 한다.

올해 상반기 전력기기주는 AI라는 기대가 실적보다 너무 빨리 달리면서 무너졌다. 이제부터의 승부는 반대다. 50배가 넘던 기대가 빠져나간 자리를 실제 수주와 매출, 공장 가동이 얼마나 빠르게 채우느냐가 전력기기 업종의 다음 주가를 결정할 전망이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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