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경호 기자] 산업현장에서 휴대폰 사용 금지가 인권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정부 기관의 조사결과가 나온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산업현장에서 휴대폰 사용이 부상이나 죽음을 야기한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면서 사고 예방 차원의 기초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차별시정위원회를 열고 “물류센터 내 휴대폰 반입이 차별이라는 진정을 각하한다”고 결정했다.
앞서 지난해 9월 쿠팡 물류센터 노조가 “물류센터 내 휴대전화 반입 금지 정책은 노동자 인권과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훼손한다”고 인권위에 진정을 냈는데, 인권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다.
인권위는 물류센터 내 휴대전화 반입을 전면 허용할 경우, 안전사고가 증가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해 각하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업계에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결정”이라는 의견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국민 누구나 헌법에 입각해 ‘통신의 자유’가 기본적으로 보장돼야 하지만, 근로자가 작업 현장에서 휴대폰 사용으로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을 수 있어 글로벌 기업들이 안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은 휴대폰 제한 정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 대형 간선트럭이나 중장비 시설, 컨베이어 벨트 등 산업 장비를 갖춘 제조업이나 물류현장에서는 휴대폰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볼보건설기계 코리아, SK하이닉스, 삼성바이로로직스를 비롯해 삼성전자도 올 2월 보행 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항공기를 제조하는 보잉사를 비롯, 제네럴 모터스(GM)도 안전 우려로 직원들이 보행 중 휴대폰 사용을 2018년부터 금지했다.
GM은 당시 “휴대폰 사용으로 물기가 젖은 바닥을 걷거나, 부주의로 자동화 로봇에 다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아마존도 업무상 안전 위험을 유발한다는 우려 때문에 물류센터 근로자에 대해 휴식과 식사시간에만 휴대폰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쿠팡에서도 물류센터 내 지게차, 롤테이너 등이 물품을 적재하거나 운반하기 위해 24시간 운영된다. 대형 간선트럭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수백kg에 달하는 물품이 오간다. 때문에 쿠팡은 물류센터 내 휴대폰 반입을 허용하되, 기계장비 등이 사용되는 작업 공간에서 휴대폰 사용을 제한해왔다.
실제 해외에서는 휴대폰 사용이 산업현장 근로자의 안전을 해친다는 조사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안전전문 컨설팅기관 스크린 에듀케이션(Screen Education)이 2020년 근로자 1769명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26%가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한 부주의 사고를 최소 한차례 경험했으며, 이 부주의 사고의 58%는 부상이나 사망, 75%는 재산 피해로 이어졌다고 대답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프레스(press)에 팔이 눌렸다” “회사 차량을 운전하며 문자를 보내다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는 예시 사례들이 제시됐다. 미국 산업 제조 현장에선 현재 1210만명의 근로자가 근무하고 있다.
마이클 머시어(Mercier) 스크린 에듀케이션 대표는 “응답자의 47%가 ‘회사가 휴대폰 사용 제한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고 대답했는데도 불구하고 큰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며 “기업 경영진들이 스마트폰 사용 제한 정책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캐롤라이나주 보건당국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1만2420건의 산업재해 부상 가운데 스마트폰 사용 부주의로 인해 낙하와 미끄러짐(4120건), 트럭·카트 충돌(2220건), 작업기계 사고(720건)로 이어졌고 수십명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제조업계 관계자는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도 스마트폰 사용 부주의에 따른 사고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해외처럼 스마트폰·전자 장비 사용 제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사고 예방 차원의 기초 연구가 널리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news@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