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뉴스=최병수 기자) 고금리·고물가로 내수 부진이 이어지자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제때 갚지 못하는 가계와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5대 은행은 올해 상반기에만 3조2000억원이 넘는 부실채권을 상각 또는 매각을 통해 장부에서 털어낸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회복 속도가 더딘 가운데, 코로나19 대출 상환유예 등으로 가려졌던 부실까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은행권 부실 규모는 당분간 커질 전망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올해 상반기 3조2704억원어치 부실채권을 상·매각했다.
올해 상반기 상·매각 규모는 작년 상반기(2조2232억원)의 1.47배 수준일 뿐 아니라, 작년 하반기(3조2312억원)보다도 많았다.
은행은 3개월 넘게 연체된 대출 채권을 '고정 이하' 등급의 부실 채권으로 분류하고 별도 관리하다가, 회수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되면 떼인 자산으로 간주한다.
이후 아예 장부에서 지워버리거나(상각·write-off), 자산유동화 전문회사 등에 헐값에 파는(매각) 식으로 처리한다.
상각 대상에는 주로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 채권이 많고, 매각은 주로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5대 은행 상·매각 규모는 2022년 2조3013억원에서 2023년 5조4544억원으로 급증했고, 올해에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대출자가 많아지자, 은행들이 건전성 관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부실 채권 정리에 나선 걸로 풀이된다.
실제로 일부 은행은 2022년까지만 해도 분기 말에만 상·매각을 해왔지만, 지난해부터는 분기 중에도 상·매각을 진행했다.
지난달 대규모 상·매각 덕에 5대 은행의 6월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은 한 달 새 다소 낮아졌다.
5대 은행의 대출 연체율 단순 평균(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6월 말 기준 0.31%로 집계됐다. 한 달 전 5월 말의 0.39%보다 0.08%포인트(p) 내린 수치다.
NPL 비율 평균도 한 달 새 0.34%에서 0.29%로 0.05%p 하락했다.
하지만, 새로운 부실 채권 증감 추이가 드러나는 신규 연체율(해당 월 신규 연체 발생액/전월 말 대출잔액)은 5월 0.10%에서 6월 0.09%로 0.01%p 떨어지는 데 그쳤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5월 연체율이 0.56%까지 뛰는 등 가계(0.31%), 대기업(0.03%)보다 상황이 나빴다.
실제로 1년 전과 비교해봐도 건전성 지표는 악화했다.
지난해 6월 말 5대 은행 연체율과 NPL 비율 평균은 각각 0.28%, 0.24%로 올해 같은 시점보다 각 0.03%p, 0.05%p 낮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연체율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이후 최고 수준"이라며 "고물가,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내수가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는 가운데, 가계·기업의 빚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은행권은 경기 둔화 압력으로 부실 채권이 당분간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보다 철저한 건전성 관리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