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4월 2일부터 모든 외국산 자동차와 핵심 부품에 대해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한국 자동차 산업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철강·알루미늄에 이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두 번째 품목별 고율 관세 조치로, 한국의 대미 수출 1위 품목인 자동차가 직격탄을 맞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모든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수년간 미국의 부(富)와 일자리를 빼앗아간 나라들에 비용을 청구하는 것"이라며 이번 조치가 "미국 제조업을 보호하고 세수를 확대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그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관세 없이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해 왔으며, 2024년 기준 대미 자동차 수출 규모는 347억4400만 달러(약 51조 원)로 전체 대미 수출의 27%, 전 세계 자동차 수출의 49.1%를 차지한다. 미국은 한국의 세 번째 자동차 수출국으로, 이번 조치는 한국 경제에 구조적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IBK기업은행은 이번 조치로 인해 올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이 최대 18.6%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으며, 씨티는 한국 GDP의 0.2% 감소 가능성까지 내다봤다.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압박에 대응해 미국 내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지난 24일, 정의선 회장은 백악관에서 2028년까지 총 210억 달러(약 31조원)를 미국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자동차 생산 확대(86억 달러), 철강·물류·부품 관련 인프라(61억 달러), 전기차 및 에너지 산업 투자(63억 달러) 등이 포함된다.
조지아주 서배너에 신설된 현대차그룹의 세 번째 공장(HMGMA)은 연간 30만 대에서 최대 50만 대 생산 체제로 확대할 방침이다. 여기에 앨라배마 몽고메리, 조지아 웨스트포인트 공장을 더하면 미국 내 연간 생산량은 120만 대 수준까지 올라가게 된다. 이는 미국 내 판매 물량 중 약 70%를 현지 생산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대차의 나머지 30% 생산량과 한국GM 등 중소·중견 부품업체들은 여전히 고율 관세의 영향권에 놓여 있다. 특히 미국 수출 비중이 85%에 달하는 한국GM은 존폐 위기에 몰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GM은 과거 2019년 군산공장을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폐쇄한 바 있으며, 이번 관세 조치로 한국 내 생산기지를 철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가 미국 자동차 산업의 부흥으로 이어질 것이라 주장했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미국 소비자들의 부담 증가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미국 완성차 업체들도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어, 수입 부품에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차량 판매가 상승하고 이는 소비자 수요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2024년 미국의 자동차 및 소형트럭 수입 규모는 2,440억 달러, 자동차 부품은 1,970억 달러에 달한다. 관세로 인한 원가 상승은 글로벌 제조사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조치가 "영구적"이라고 강조하며, 관세 면제나 협상에 나설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국가별 예외 적용 가능성은 사실상 배제됐고, 한국 정부와 업계의 대응 전략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는 4월 2일,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계획도 다시 확인했다. 그는 이날을 “미국 무역 해방의 날”이라고 명명하며, 자국 중심 통상정책 기조를 더욱 강화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 관세 조치는 단기적 수출 타격뿐 아니라, 한국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전략 전환을 촉구하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국내 업계는 미국 현지 생산 확대와 함께, 미국 내 고용 창출 효과를 앞세운 외교적 설득 전략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한미 FTA의 재검토, WTO 등 국제 통상기구 제소, 외교 채널을 통한 예외 협상 시도 등 다각도의 대응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공급망이 얽힌 상황에서 미국 중심 보호무역주의가 본격화될 경우, 향후 반도체·의약품·목재 등 다른 산업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철저한 사전 대응 체계 구축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