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민진 기자] 지난 7월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개막한 제13회 울산국제목판화페스티벌(총감독 서유정)은 단지 전통 판화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동시대 예술의 흐름 속에서 판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개념적으로 확장되고 타 매체와 융합될 수 있는지를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올해 페스티벌의 주제는 『다중의 기억술(Multiple Mnemonics)』. 기억과 흔적, 반복과 재구성이라는 판화의 근본적 속성을 매개로, 사회적 기억, 개인의 역사, 지역적 서사들이 다양한 조형 언어로 제시되었다.
전시 개막 당일에는 이를 주제로 한 학술 세미나도 함께 개최되었다. 세미나는 “오늘날의 판화: 확장된 매체성과 폴리그라파의 협업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본 전시의 국제 커미셔너인 최태호 큐레이터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역사적인 판화공방 폴리그라파 오브라 그라피카의 디렉터 알바로 푸이그덴골라스(Alvaro Puigdengolas)가 출연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판화의 미래와 폴리그라파의 철학
세미나에서 푸이그덴골라스 디렉터는 “판화는 복제의 기술이 아니라, 협업과 실험의 언어”라고 강조했다. 폴리그라파는 피카소와 미로, 달리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 전 세계 수많은 작가들과 작업해온 유서 깊은 공방으로, 단지 기술적 제작소를 넘어 작가와 인쇄공, 큐레이터가 함께 사고하고 실험하는 공간으로 작동해왔다. 그는 이번 울산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역시 단순한 작품 출품자가 아니라, 하나의 공동 창작자로서 전시에 기여했다고 설명하며, 이 같은 “협업 기반의 판화 제작”이야말로 폴리그라파의 핵심 철학이라고 덧붙였다.
국제 커미셔너 최태호의 섬세한 기획
전시의 국제 커미셔너를 맡은 최태호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에서 폴리그라파를 포함한 유럽 각국의 유력 예술기관과 협력하며 전시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다.
그가 섭외한 작가들 중에는 로레 프로보(Laure Prouvost), 스테판 브뤼게만(Stefan Brüggemann), 하우메 플렌사(Jaume Plensa)를 비롯해, 베니스비엔날레 초청 작가, 터너상(Turner Prize) 수상자, 각국 국립미술관 소장 작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울산이라는 도시에서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며, 목판화를 매개로 ‘기억’이라는 개념에 응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전시의 국제적 위상과 기획 완성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울산이라는 지역 공간에서 판화를 통해 세계 최전선의 작가들이 동일한 주제에 응답한 이례적인 순간이었다”는 평가처럼, 이번 전시는 지방과 세계가 만나는 문화적 교차로로서 기능했다.
판화는 과거가 아닌 ‘현재’의 언어
이번 전시와 세미나가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판화는 여전히 살아 있는 예술 언어이며, 단지 과거의 재현 기술이 아니라 오늘의 사회적, 기술적, 감각적 맥락을 반영하는 동시대적 형식이라는 점이다.
울산국제목판화페스티벌은 이러한 판화의 변화를 가장 생생하게 증명한 자리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국제적 시야와 치밀한 기획력, 폭넓은 협업의 감각을 지닌 총감독과 국제 커미셔너가 있었다.
민진 더파워 기자 news@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