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경호 기자] 정부는 29일 국무회의를 열고 2026년도 예산안을 총지출 728조원 규모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올해 본예산보다 54조7000억원(8.1%) 늘어난 수준으로, 윤석열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에서 벗어나 이재명 정부가 첫 본예산부터 확장재정으로 선회했음을 보여준다.
총수입은 674조2000억원으로 올해보다 22조6000억원(3.5%) 증가했다. 국세가 390조2000억원으로 18조원 이상 늘어나고, 기금 등 세외수입도 14조8000억원 늘어난 덕분이다. 그러나 세입 여건은 여전히 빠듯해 재원 상당 부분은 국채 발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내년 적자국채 발행 규모는 110조원이며, 국가채무는 올해 1273조3000억원에서 내년 1415조2000억원으로 141조8000억원 증가한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48.1%에서 51.6%로 높아진다.
이번 예산안의 핵심은 인공지능(AI)과 연구·개발(R&D) 분야 확대다. AI 예산은 올해 3조3000억원에서 10조1000억원으로 세 배 이상 늘었다. 정부는 이를 기반으로 제조업 중심 ‘피지컬 AI’ 선도국가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공공 부문에서는 2000억원을 투입해 ‘공공 AX’ 전환을 추진하고, AI 인재 양성과 GPU 확보에도 집중한다.
R&D 예산은 29조6000억원에서 35조3000억원으로 19.3% 증가했다. 역대 최대 증가 폭으로, AI·바이오·콘텐츠·방산·에너지·제조 등 이른바 ‘ABCDEF’ 첨단산업 기술 개발에만 10조6000억원이 배정됐다.
의무지출은 365조원에서 388조원으로 9.4% 증가했고, 재량지출은 308조3000억원에서 340조원으로 10.3% 늘었다. 전체 지출에서 의무지출 비중은 53.3%, 재량지출은 46.7%를 차지한다.
정부는 신규 재원 마련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27조원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총지출 증가분의 절반에 해당하며, 4년 연속 20조원대 조정이다. 불필요하거나 성과가 낮은 사업 1300여 개가 폐지됐고, 공적개발원조(ODA) 예산도 대폭 감액됐다.
분야별 지출을 보면 보건·복지·고용에 269조1000억원(20조4000억원 증가), 국방 66조3000억원(5조원 증가), 산업·중소기업·에너지 32조3000억원(4조1000억원 증가), 일반·지방행정 121조1000억원, 교육 99조8000억원, 농림·수산·식품 27조9000억원, SOC 27조5000억원, 공공질서·안전 27조2000억원이 각각 배정됐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을 ‘초혁신경제’ 달성의 발판으로 제시했다. 핵심 목표로는 ▲지방거점 성장 ▲저출산·고령화 대응 ▲사회안전대응 ▲민생·사회연대경제 ▲산재 예방 ▲재난 대응 ▲첨단국방 및 평화 등을 내세웠다.
특히 지방거점성장 차원에서 국립대학 지원 예산은 올해 3956억원에서 8733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 예산이다.
사회안전망 예산도 강화됐다.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는 4인 가구 기준 월 207만8000원, 1인 가구 기준 82만1000원으로 각각 12만7000원, 5만5000원 인상된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도 도입돼 인구감소 지역 6개 군 주민 24만명에게 월 15만원씩 지급된다. 해당 예산은 1703억원이다.
아동수당은 지급 대상을 기존 만 7세에서 만 8세로 확대한다. 고령화 대응 예산은 올해 25조6000억원에서 내년 27조5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예산은 24조원 규모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위축된 경기와 민생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하는 중대한 과제에 직면했다”며 “재정이 회복과 성장의 불씨를 키우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과가 나는 부분에 집중하는 전략적 재정운용을 통해 선도경제로의 대전환을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예산 증가율은 2차 추경 기준으로는 3.5%에 불과해 내년도 경상성장률 전망치(3.9%)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에 따라 확장재정보다는 균형재정에 가깝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기재부 유병서 예산실장은 “경기 대응 측면에서 미흡한 점이 있다”고 인정했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이 중단기적으로 재정 여건을 악화시키더라도, 성장을 견인해 세수 기반을 넓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예산안은 9월 초 국회에 제출돼 상임위 및 예결특위 심사를 거쳐 12월 확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