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유연수 기자]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희정 교수 연구팀이 세계 최대 규모의 한·미 자폐 가족 코호트를 분석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새로운 유전적 기전을 규명했다고 24일 밝혔다. 연구팀은 같은 유전자라도 변이 위치에 따라 증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확인했으며, 자폐와 연관된 신규 유전자 18개도 발굴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의사소통 문제, 반복적 행동 등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발달질환이다. 지금까지 연구는 주로 부모에게는 없고 자녀에게 새로 생긴 유전자 변이(새 발생 변이)에 집중돼 왔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동일한 변이를 지닌 자폐인도 증상이 크게 다른 경우가 많아 기존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연구팀은 가족 내 상대적 차이를 고려하는 새로운 접근법인 ‘가족 내 표준화 편차(Within-family standardized deviations)’를 도입했다. 이는 부모와 형제자매의 임상 점수를 기준으로 자폐인의 증상 차이를 비교해, 변이가 미치는 효과를 정밀하게 평가하는 방식이다.
연구는 한국과 미국 자폐 가족 2만1735가구(7만8685명)를 대상으로 대규모 엑솜 및 전장 유전체 분석을 실시했으며, 사회적 반응성 척도 등 발달·행동 지표를 결합해 변이 효과를 정량화했다. 그 결과, 같은 유전자 변이라도 변이가 발생한 위치에 따라 증상이 달라지는 유전자 11개를 확인했다. 예컨대 세포 성장과 신호 조절을 담당하는 ‘PTEN 유전자’의 경우, 핵심 기능 부위에 변이가 생긴 자폐인의 사회성 장애 점수는 일반 부위 변이보다 두 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아울러 연구팀은 지금까지 보고되지 않았던 자폐 관련 신규 유전자 18개를 추가로 발굴했다. 이들 유전자는 단백질 변형, 신호 전달, 뇌 내 보조세포 기능 등과 관련돼 있어 자폐가 신경세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세포 간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복합적 질환임을 시사했다.
유희정 교수는 “가족 배경을 고려한 새로운 분석 방법은 자폐 연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맞춤형 예후 예측과 정밀의학적 접근으로 자폐의 임상적 이질성과 발병 기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고려대 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안준용 교수와 공동으로 진행됐으며, 유전체 분야 국제학술지 ‘게놈 메디신(Genome Medicine, IF 11.2)’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