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갤러리 자인제노 제공 / 조각 풍경_80.3x116.8cm_캔버스에 아크릴, 한지, 실크 바느질 콜라주_ 2025
[더파워 이강율 기자] 도심의 골목을 천천히 걸을 때, 유리벽 너머로 문득 마주치는 붉은 벽돌집과 기와지붕의 곡선은 낯설고도 그리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사라져가는 동네의 정서이자, 작가 제미영이 오랜 세월 마음속에 간직해온 ‘기억의 집’이다. 이번 전시 《기억의 풍경 – 조각보로 이어 붙인 나의 시간과 공간》은 한 땀 한 땀의 바느질로, 그리고 수많은 색의 천 조각으로, 그 기억을 되살려낸 서정의 기록이다.
제미영의 화면은 단순히 재현된 풍경이 아니다. 색색의 한지와 실크 조각이 감침질로 이어지고, 그 위에 바람결처럼 얹힌 물감의 결은 시간의 층위를 이룬다. 작가의 손끝에서 천은 빛을 머금은 조각보가 되고, 그것은 다시 한옥의 기와와 담벼락, 화분과 정원의 잎사귀로 변모한다.
그녀의 바느질 콜라주는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 속에서 전통과 현대, 회화와 공예,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든다. 작은 천의 파편들이 모여 이룬 한옥의 지붕선은 파도처럼 출렁이며, 색띠의 리듬은 기억의 시간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작품 속 한옥은 단지 건축의 형상이 아니라, 삶의 온기가 머물던 공간이다. 그 안에는 장독대의 그림자, 화분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사람의 숨결이 있다. 작가는 그 모든 것을 바느질의 언어로 엮어내며, 느리지만 단단한 시간의 감각을 전한다.
감침질의 선 하나, 색의 결 하나마다 담긴 ‘삶의 손맛’은 한국적 정서의 근원인 ‘정(情)’과 ‘온기(溫氣)’를 품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단절과 속도의 시대 속에서, 잊혀가는 풍경과 기억을 다시 꿰매어 우리 곁으로 되돌려 놓는다. 관객은 작품 앞에서 오래된 집의 숨소리를 듣고, 바람에 흔들리는 기와의 그림자를 느끼며, 자기 안의 잊힌 기억 한 조각을 발견하게 된다.
《기억의 풍경 – 조각보로 이어 붙인 나의 시간과 공간》은 2025년 11월 14일부터 11월 30일까지 종로구 창성동 갤러리 자인제노에서 열리며, 작가 제미영은 이번 전시를 통해 “삶의 조각과 기억의 결을 꿰매어, 일상의 풍경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아름다움”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