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경호 기자] 미래에셋증권과 키움증권이 잇따라 대규모 자사주 소각에 나서며 주주환원 기조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증권사 가운데 자사주 비중이 가장 높은 신영증권은 여전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연내 ‘자기주식 의무 소각’ 상법 개정이 추진되는 만큼 증권사들의 지배구조와 경영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은 지난달 27일 보통주 721억5000만원, 우선주 79억3000만원 등 약 8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을 마쳤으며, 이날 해당 물량 전량을 소각한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주주환원 성향을 35%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2030년까지 자기주식 1억주 이상을 단계적으로 소각하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밝힌 바 있으며, 지금까지 누적으로 줄인 자사주는 2750만주 수준이다.
자사주 소각은 발행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과 주당배당금(DPS)을 높이는 효과가 있어 대표적인 주주환원 수단으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이번 소각이 마무리되면 장기적으로 기업가치와 주가에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키움증권도 자사주 소각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키움증권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209만여주(발행주식의 7.99%)를 2026년까지 3년에 걸쳐 분할 소각하겠다는 계획을 이미 제시했다. 올해 3월에는 계획 물량에 신규 취득분을 더해 총 105만주 소각을 완료했고, 내년 3월에는 기보유 물량 69만5345주와 올해 7월 취득한 20만5112주 등 약 90만주를 추가로 소각할 예정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자사주 비중이 높은 중견 증권사들의 향후 대응에도 관심이 쏠린다. 업계에서는 대신증권(자사주 비중 25.1%), 부국증권(42.7%), 신영증권(53.1%) 등이 향후 소각 행렬에 합류할지 주목하고 있다. 다만 이들 회사는 경영권 안정성과 배당 정책, 향후 지분 승계 구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만큼 속도 조절 가능성도 거론된다.
특히 신영증권은 국내 증권사 가운데 자사주 비중이 가장 높은 사례로 꼽힌다. 신영증권은 1994년 첫 자사주 매입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자사주 소각을 하지 않았으며, 현재 자사주가 발행주식의 51.23%에 달한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발행주식 수를 줄이는 효과가 있어, 원국희 명예회장(10.42%)과 원종석 회장(8.19%) 등 오너 일가의 약 21% 수준 지분율을 사실상 ‘지배력 보완 장치’로 뒷받침해온 구조라는 평가가 많다.
문제는 국회에서 추진 중인 상법 개정 방향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자기주식 1년 내 의무 소각’을 핵심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연내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기업들이 자사주를 장기간 보유하면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해온 관행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기업은 자사주를 취득한 뒤 1년 안에 반드시 소각해야 하고, 임직원 보상 등 예외적 활용을 위해서는 주주총회 승인을 거쳐야 한다.
이 경우 신영증권처럼 자사주 비중이 높은 회사는 지배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신영증권이 보유한 842만여주(51.23%)를 소각하면 절대 발행주식 수는 줄지만, 외부 주주의 지분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오너 일가의 의결권 방어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형식상 오너 일가 지분율은 40%대 중반으로 높아지지만, 나머지 50%를 넘는 지분이 시장과 기관투자자, 소액주주에 분산된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상속·승계 이슈도 부담 요인이다. 신영증권 주가는 최근 1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오르며 평가 가치를 키웠고, 현행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이 60%에 달하는 만큼 향후 대주주 지분 승계 과정에서 실질 지배력이 희석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신증권과 부국증권 역시 오너 일가 지분율이 20% 안팎에 그치는 반면 자사주 비중이 20~40%대를 기록하고 있어 법 개정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은 자사주를 이용한 우회적 지배력 강화 시도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근 일부 기업이 교환사채(EB) 구조를 활용해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게 넘기려다 금융감독원의 재공시 요구로 제동이 걸린 사례도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단기적으로 자사주 소각 확대가 주주환원 강화와 주가 부양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중장기적으로는 “지배구조 개편과 오너 리스크 해소를 둘러싼 구조조정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동시에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자사주를 쌓아둔 회사일수록 이제는 ‘언제, 얼마나 소각할 것인가’가 핵심 변수”라며 “자사주 활용 전략이 기업가치 제고 수단에서 지배구조 투명성의 시험대로 옮겨가는 국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