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설아 기자] 중증 재생불량성빈혈과 말기신부전을 동시에 앓는 복합난치질환 환자에서 신장이식을 먼저 시행하는 치료 전략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은 신장이식팀과 조혈모세포이식팀이 중증 재생불량성빈혈과 말기신부전을 동시에 진단받은 환자 4명을 치료한 임상 경험이 미국이식학회 공식 학술지 'American Journal of Transplantation'에 최근 게재됐다고 30일 밝혔다.
중증 재생불량성빈혈은 골수 기능 저하로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이 모두 감소하는 질환으로, 근치적 치료는 조혈모세포이식으로 알려져 있다. 말기신부전에서는 신장이식이 생존율과 삶의 질 측면에서 가장 우수한 치료로 평가된다. 다만 두 질환이 동시에 있을 경우 어떤 치료를 먼저 시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지침은 부족한 상황이다. 투석 중 조혈모세포이식을 하면 감염 위험과 항암·면역억제제 용량 조절이 문제가 될 수 있고, 반대로 혈소판 감소가 심한 상태에서 신장이식을 먼저 하면 출혈과 거부반응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신장이식팀과 조혈모세포이식팀은 이런 임상적 딜레마 속에서 신장이식을 먼저 시행한 뒤 필요 시 조혈모세포이식을 추가하는 전략을 적용했다. 치료 대상이 된 4명은 모두 수혈 의존성 범혈구감소증을 동반하고 있었지만, 신장이식 이후 즉각적인 이식 신장 기능 회복과 초기 1년 내 급성 거부반응 없음, 중대한 수술 관련 합병증 없음 등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임상 경과를 보였다. 의료진은 모든 환자에서 안정적인 신기능과 의미 있는 혈액학적 호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2명은 신장이식 약 3개월 뒤 동일 공여자로부터 조혈모세포이식을 추가로 받았다. 이들 환자는 각각 7개월, 17개월 후 면역억제제를 완전히 중단했다. 의료진은 이를 공여자 키메리즘 형성에 따른 면역학적 관해가 유도됐음을 시사하는 결과로 해석했다. 면역학적 관해는 공여자 특이적인 면역 공격성이 사라져 장기적으로 면역억제제 없이도 이식 신장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나머지 2명은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지 않았음에도 빈혈과 혈소판 감소가 점진적으로 호전돼 수혈 의존 상태에서 벗어났고, 골수 기능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진은 신장이식 후 요독 독소 제거에 따른 전신 염증 완화와, 이식 후 투여된 면역억제제가 재생불량성빈혈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병하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중증 재생불량성빈혈과 말기신부전이라는 두 가지 중증 질환이 동반된 환자를 성공적으로 치료한 서울성모병원 신장이식팀과 조혈모세포이식팀의 역량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일부 환자에서는 신장이식만으로도 혈액학적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은 임상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결과로, 향후 체계적인 전향적 연구를 통해 적합한 환자군을 선별하는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