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경호 기자]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 재평가를 가를 핵심 변수로 장기공급계약(LTA)과 주주환원이 꼽혔다.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시장의 관심이 두 사안에 집중됐지만, 경쟁사와의 정보 공개 방식 차이를 펀더멘털이나 주주환원 의지의 차이로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분석이다.
SK증권은 3일 SK하이닉스에 대해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400만원을 유지했다. SK하이닉스의 기준 주가는 지난달 31일 종가 171만8000원으로, 목표주가는 현 주가 대비 132.8%의 상승 여력을 반영한 수준이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29~30일 SK하이닉스 NDR을 진행한 뒤 “시장 질문은 LTA와 주주환원에 집중됐다”며 “이번 NDR을 통해 SK하이닉스의 전략과 LTA, 주주환원 의지, 경쟁력은 메모리 재평가에 부합한다고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LTA와 관련해서는 계약 조건을 일률적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 강조됐다. SK증권은 고객마다 LTA 조건이 모두 다를 것으로 봤다. 일부 고객사와의 계약 조건만으로 전체 LTA의 성격을 설명하기 어렵고, 가격과 물량, 안전망의 조합이 고객별로 다르게 설계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보고서는 SK하이닉스의 LTA 비중이나 조건이 업계 내에서 낮게 형성될 이유가 없다고 봤다. HBM 경쟁력, 북미 주요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와의 파트너십, AI 중심 수요, 공급 부족 심화 등을 고려하면 LTA는 실적 안정성과 성장성, 가시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수단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현재 수요 충족률이 70% 미만이라는 점에서 LTA 비중은 부담보다 선택의 문제에 가깝다고 평가됐다. 핵심은 개별 LTA를 통해 가격과 물량, 안전망을 최적으로 조합하고, 공급 부족 국면에서는 비 LTA 시장 노출을 통해 추가 성장 여지도 확보하는 구조다.
SK증권은 LTA의 본질을 고객과의 ‘상호인질구조’로 설명했다. 고객사는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하고, 공급사는 일정 수준의 수요와 가격 가시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 구조가 자리 잡으면 SK하이닉스의 이익 하단과 지속성이 과거 메모리 사이클보다 높아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주주환원도 메모리 재평가의 핵심 축으로 제시됐다. SK하이닉스는 연내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 방안을 시장과 소통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업황 강세로 투자 수요가 계속 확대되고 있지만, 이익 창출력이 높아지면서 의미 있는 환원 확대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주주환원이 시장 우려처럼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고 봤다. 메모리 업계 전반에서 주주환원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고, SK하이닉스가 ADR 상장 등 재평가를 위한 선도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키옥시아 SPC1 매각에 따른 배당 수익과 ADR 발행으로 순현금 100조원 달성 시점이 앞당겨졌다는 점도 주주환원 기대를 높이는 요인으로 언급됐다.
SK증권은 메모리 재평가의 본질이 ADR 자체가 아니라 주주환원이라고 짚었다. 주주환원이 가시화될 경우 LTA가 만들어내는 이익 안정성과 지속성도 시장에서 더 높은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실적 전망도 강하게 제시됐다. SK증권은 SK하이닉스의 올해 매출액을 348조7240억원으로 전망했다. 지난해보다 259% 증가하는 규모다. 영업이익은 273조7390억원으로 전년 대비 479.9%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2027년에는 매출액 535조4810억원, 영업이익 425조2830억원으로 추가 성장이 전망됐다. 영업이익률은 올해 78.5%, 내년 79.4%로 제시됐다. 자기자본이익률도 올해 105.0%, 2027년 58.7%로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분기별로도 이익 증가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다. 3분기 매출액은 99조7900억원, 영업이익은 80조1820억원으로 예상됐다. 4분기에는 매출액 117조380억원, 영업이익 95조404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제시됐다.
가격 가정도 우호적이다. SK증권은 올해 D램 평균판매가격이 전년 대비 176%, 낸드 평균판매가격이 240% 상승할 것으로 봤다. 내년에도 D램과 낸드 평균판매가격은 각각 27%, 25% 추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AI 수요 확대는 메모리 시장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 메모리 시장이 경기와 재고 사이클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크게 나타나는 구조였다면, AI용 고부가 메모리는 장기공급계약을 기반으로 별도 수요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AI 수요 안에서 LTA가 자리 잡고, 전통 수요와 구분되는 시장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계약 시장에서는 약정 물량과 가격 범위, 선수금·예치금 등 조건이 결합될 수 있다. 이는 공급사에는 실적 가시성을, 고객사에는 안정적인 물량 확보를 제공하는 구조다. 반면 시황 노출 시장은 시장 가격에 따라 수익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SK증권은 이 같은 이원화가 메모리 업체의 이익 지속성을 높이고, 과거보다 높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라고 봤다.
AI 산업 내 메모리의 전략적 가치도 커지고 있다. 보고서는 AI 발전 단계를 모델 개발, 컴퓨트 확장, 시스템 확장, 비용 최적화, 산업 확산으로 구분하고, HBM과 패키징, 전력, D램, 낸드, 스토리지 계층에서 메모리 업체가 가치를 포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메모리 생산자는 높은 고정비와 재고 부담, 공급 과잉, 낮은 제품 차별화, 짧은 이익 지속 기간 때문에 낮은 밸류에이션을 받아왔다. 호황기 이익이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는 의심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평가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SCA·LTA 비중 상승, 고객별 생산능력 예약, 선수금·예치금 구조, AI SSD와 엔터프라이즈 SSD 믹스 상승, 커스텀 HBM과 로드맵 공유 등이 이익 변동성을 낮추고 주가수익비율 재평가를 뒷받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밸류에이션 부담도 크지 않다는 평가다. SK하이닉스의 올해 예상 주가수익비율은 4.7배, 2027년은 3.9배로 제시됐다. 주가순자산비율은 올해 3.2배에서 내년 1.8배로 낮아질 전망이다.
글로벌 메모리 업체와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SK증권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2027년 예상 주가수익비율은 3.6배로 삼성전자 3.8배, 마이크론 5.3배, CXMT 13.6배보다 낮게 제시됐다.
결국 시장의 질문은 실적 규모보다 지속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올해와 내년 이익 전망이 이미 큰 폭으로 높아진 상황에서 주가 재평가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이익이 얼마나 오래 이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늘어난 현금흐름이 주주에게 얼마나 돌아갈 수 있는지다.
한 연구원은 “메모리 재평가의 핵심은 ADR이 아닌 주주환원”이라며 “주주환원 가시화는 LTA의 가치를 인정받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업체 간 정책과 상황의 차이가 본질적 펀더멘털이나 의지의 차이로 오해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