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3사 합산 시총 두 달 만에 146조원서 95조원으로 감소
12개월 선행 PER 15배 미만…LNG선·엔진·함정·데이터센터 신사업 주목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대형가스운반선
[더파워 이경호 기자] 조선주를 둘러싼 분위기가 빠르게 식고 있다. 올해 2분기 조선 3사의 이익은 전분기보다 크게 늘었지만, 주가는 오히려 두 달 새 30% 넘게 밀렸다. 실적과 주가가 엇갈리면서 시장에서는 조선업 조정이 업황 훼손보다 밸류에이션 급락에 가까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의 올해 2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2조1000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1분기 1조6000억원에서 약 30% 증가한 규모다. 반면 3사 합산 시가총액은 지난 5월 24일 146조원으로 고점을 찍은 뒤 지난달 31일 95조원까지 줄었다. 두 달 만에 약 35% 증발한 셈이다.
밸류에이션도 급격히 낮아졌다. 지난달 31일 기준 조선 3사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모두 15배 아래로 내려왔다. HD현대중공업은 14.5배, 한화오션은 13.3배, 삼성중공업은 14.9배로 제시됐다. 이는 조선업 주가 상승 사이클이 시작된 2023년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주가 조정만 보면 조선업 호황이 꺾인 것처럼 보이지만, 업황 지표는 아직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신조선가지수는 185.49포인트로 전주 대비 0.10포인트 상승했다. 중고선가지수는 212.50포인트로 0.24포인트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신조선가 흐름도 안정적이다. 클락슨 기준 신조선가지수는 2024년 189.16포인트, 2025년 184.66포인트를 거쳐 현재 185.49포인트로 제시됐다. LNG운반선 17만4000㎥급 가격은 2억4850만달러,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은 1억3050만달러 수준을 유지했다.
수주잔고도 과거 슈퍼사이클과 비교해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과거 2차 슈퍼사이클 당시 조선 3사의 합산 수주잔고 최대 규모는 2008년 8월 약 5227만CGT였다. 올해 7월 기준 합산 수주잔고는 약 4369만CGT로, 과거 고점 대비 약 16% 낮은 수준이다.
차이는 수익성이다. 2011년 조선 3사의 합산 영업이익 고점은 약 6조6000억원이었다. 반면 현재 컨센서스 기준 조선 3사의 합산 영업이익은 올해 6조2000억원, 2027년 9조7000억원, 2028년 13조6000억원으로 전망됐다. 수익성이 과거 고점 대비 약 2배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조정이 과거 사이클 붕괴와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선업은 2008년 이후 긴 침체를 겪었지만, 현재는 3년치 이상의 수주잔고와 높은 선가, 고수익 선종 중심의 선별 수주가 버티고 있다. 중국 조선소의 공격적인 증설, 환율 하락, 인건비와 후판 가격 상승 우려는 남아 있지만, 수주잔고와 생산성 개선으로 일정 부분 흡수 가능하다는 평가다.
하반기 수주 전략도 무리한 외형 확대보다 수익성 방어에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 조선 3사는 LNG운반선과 VLGC·VLAC 등 고수익 선종 중심의 선별 수주 전략을 유지할 계획이다. 특히 GTT가 2035년까지 글로벌 LNG운반선 발주 전망치를 기존 450척에서 550척으로 상향 조정했다는 점은 중장기 LNG선 시장의 우호적 환경을 뒷받침한다.
조선사들이 과거와 다른 점은 신사업이다. HD현대중공업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향 4행정 중속엔진, 부유식 데이터센터, 소형모듈원전, 특수선 사업을 성장축으로 제시했다. 삼성중공업은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와 부유식 데이터센터, 한화오션은 글로벌 함정 사업을 통해 추가 외형과 이익 성장을 노리고 있다.
실제 관련 뉴스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는 중국 조선업 시장 지배력 대응을 주제로 청문회가 열렸고, 한화의 미국 조선소 인수가 한미 조선 협력의 모범 사례로 언급됐다. 삼성중공업은 미국 데이터센터 개발사 M3와 부유식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엔지니어링 계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 기자재, 특히 엔진주도 조정 폭이 컸다. 조선사보다 생산량 증가 여지가 큰 엔진 업체들은 가동률 상승과 증설을 통해 매출과 이익이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를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한화엔진과 HD현대마린엔진의 12개월 선행 PER은 각각 12.4배, 10.8배 수준까지 낮아졌다. 조선사보다 낮은 멀티플을 받는 구간에 들어선 셈이다.
엔진업체들의 실적 방향은 여전히 우상향이다. 한화엔진과 HD현대마린엔진의 합산 영업이익은 올해 3907억원, 2027년 5696억원, 2028년 7262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과거 적자를 반복했던 구간과 비교하면 이익 체력이 확연히 달라진 구조다.
가동률도 높다.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주요 엔진업체의 가동률은 HD현대마린엔진 91.7%, HD현대중공업 엔진 부문 107.2%, 한화엔진 100.5%로 제시됐다. 수주잔고와 신규 수주가 뒷받침되는 상황에서 엔진업체의 이익률 개선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중국발 리스크는 남아 있다. 중국 조선소들이 자국 수주 물량을 기반으로 저속엔진 점유율을 높이고 있고, 이중연료 엔진 상용화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한화엔진의 중국향 수주 감소 우려가 제기된다. 다만 1분기 기준 5조원이 넘는 수주잔고와 데이터센터향 4행정 중속엔진 납품 기대가 이를 완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HD현대마린엔진은 계열사 물량이 방어막으로 꼽힌다. 해외 주요 거점 야드인 베트남, 필리핀, 인도 등의 생산능력 확대 물량을 포함한 계열사 수요가 있어 중국 엔진업체 확대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됐다.
결국 이번 조선주 하락의 핵심은 업황 붕괴보다 주가의 선반영 부담과 단기 차익실현에 가깝다. 실적은 우상향하고, 수주잔고와 선가는 안정적인데 주가만 먼저 급락하면서 12개월 선행 PER이 상승 사이클 이후 최저 수준까지 낮아졌기 때문이다.
지금 조선업을 둘러싼 질문은 호황이 끝났느냐가 아니라, 이익 체력이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느냐다. 과거 슈퍼사이클이 수주잔고 중심의 양적 호황이었다면, 이번 사이클은 고선가와 선별 수주, LNG선, 함정, 엔진, 데이터센터, SMR까지 얹힌 질적 호황에 가깝다.
물론 중국 증설과 원가 상승, 환율 부담은 계속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밸류에이션은 안정적인 수주잔고와 사상 최대 이익 사이클, 신사업 성장 잠재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선주 급락이 업황의 끝을 뜻하기보다, 오히려 밸류체인 전반을 다시 볼 기회라는 낙폭과대론이 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