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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생산성 올려도 월급은 안 오른다…7470억달러 투자의 ‘불편한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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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생산성 올려도 월급은 안 오른다…7470억달러 투자의 ‘불편한 역설’

이경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9-17 09:35

美 5대 하이퍼스케일러 올해 설비투자 7470억달러…AI 인프라 투자 집중
업무에 AI 사용하는 기업 19.8% 그쳐…생산성 개선도 일부 기업에 편중
고용 대체 시작됐지만 신규 일자리 흡수는 지연…임금 대신 기업이익으로 귀속
교역·노동공급 물가 완충효과도 약화…AI 생산성만으로 디스인플레 한계

출처 Magni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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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파워 이경호 기자] 인공지능(AI)이 생산성을 높이면 기업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생산성이 오르면 물가 압력은 낮아지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릴 여유를 확보한다. 지금 미국 정책 당국과 금융시장이 기대하는 ‘AI 생산성 호황’의 기본 경로다.

하지만 실제 AI 확산 과정은 과거 전기나 정보기술(IT) 혁명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생산성은 일부 기업에서 빠르게 높아지고 있지만 고용과 임금으로 번지는 속도는 더디고, 인프라와 이익은 소수 기업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성이 오른다고 곧바로 물가가 안정되고 소비자의 소득이 늘어나는 구조가 아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데이터센터와 컴퓨팅 하드웨어를 합친 인프라 투자는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의 약 1.4%까지 높아졌다. 2015~2022년 평균 0.7%의 두 배다.

투자 규모는 더 크다. 미국 5대 하이퍼스케일러의 올해 설비투자 계획은 7470억달러에 달한다. 1997~2000년 S&P500 상위 5개 기업의 자본지출이 GDP의 평균 0.4%였던 것과 달리 2023~2026년에는 1.0% 수준까지 높아졌다.

문제는 이렇게 쏟아진 돈이 경제 전체의 생산성 향상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전기 역시 발명과 생산성 혁명 사이에 수십 년의 시차가 있었다. 미국에서 발전 기술은 1880년대 확보됐지만 제조업 생산성이 본격적으로 가속한 것은 1920년대 이후였다. 공장에 전기를 연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생산설비와 작업방식 전체를 전기에 맞춰 다시 설계해야 했기 때문이다.

IT 혁명도 비슷했다. 컴퓨터가 이미 널리 보급된 1980년대에도 생산성 개선은 뚜렷하지 않았다. 반도체 가격이 내려가고 기업의 IT 투자가 일정 수준을 넘어선 1990년대 중반 이후에야 미국 노동생산성이 크게 뛰었다.

AI는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더 붙는다. 과거 기술혁명 때에는 기술이 기존 일자리를 없애더라도 노동력이 다른 산업으로 이동했다.

전기화 과정에서는 제조업 생산량이 크게 늘어도 공장 고용은 줄었지만 서비스업이 노동력을 흡수했다. IT 역시 정형화된 사무직을 대체하는 대신 대인 서비스 등 새로운 일자리가 늘었다. 일자리를 옮긴 노동자가 다시 임금을 받아 소비하면서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경제 전체로 확산됐다.

현재 AI에서는 이 연결고리가 아직 뚜렷하지 않다. AI 노출도가 높은 미국 정보업 고용은 감소하고 전문사업서비스 고용도 정체돼 있다. 기술이 업무를 대체하는 움직임은 나타났지만 대체된 노동력을 흡수할 새로운 대규모 일자리 창출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고용 충격도 대량 해고보다 ‘채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AI 노출도가 높은 직군에서는 신입 채용이 정체되는 가운데 과거 경력직에게 요구했던 판단력과 리더십을 신입 채용 단계부터 요구하는 사례가 늘었다. 이런 채용공고는 2019년보다 35% 증가한 반면 기존 신입 수준의 업무를 요구하는 공고는 10% 감소했다.

기존 직원을 한꺼번에 해고하지 않기 때문에 실업률에는 충격이 늦게 나타날 수 있다. 대신 노동시장으로 새롭게 진입하는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면서 가계소득과 소비가 서서히 약해지는 경로가 나타날 수 있다.

AI 인프라의 소유구조도 과거와 다르다. 전기화 시대에는 공장이 직접 전기모터를 샀고 IT 시대에는 기업이 컴퓨터와 서버를 구입했다. 기술을 사용하는 기업이 동시에 새로운 설비의 소유자가 되면서 투자와 생산성 향상이 경제 전반으로 퍼졌다.

AI에서는 기업이 데이터센터나 고성능 반도체를 직접 보유하기보다 하이퍼스케일러의 서비스를 구독한다. AI 사용량이 늘어도 기업 자산이 크게 증가하지 않고 생산성 개선의 일부가 클라우드·AI 사용료 형태로 인프라 사업자에게 돌아갈 수 있는 구조다.

실제 AI 도입률은 아직 경제 전체로 확산됐다고 보기 어렵다. 미국에서 업무에 AI를 사용한다고 응답한 기업은 올해 4월 기준 19.8%였다. 고용 규모를 감안하면 32%까지 올라가지만 기술 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에서는 활용률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업종별 격차도 크다. AI 관련 직무가 전체 채용공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기술·미디어·통신이 11.4%, 전문서비스 5.6%, 금융 5.4%인 반면 헬스케어는 0.9%에 그쳤다.

생산성 효과 역시 일부 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AI 노출도가 상위 25%인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은 지난해 33.5%로 하위 25% 기업의 24.0%를 웃돌았다. 상위 기업과 하위 기업의 격차는 2022년보다 세 배 확대됐다.

같은 상위 그룹에서도 차이는 더 벌어진다. AI 노출도가 높은 기업 가운데 상위 5%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은 평균 163%에 달했다. AI가 모든 기업의 효율을 비슷하게 높이는 게 아니라 이미 자본과 인력, 인프라를 확보한 일부 기업의 생산성을 훨씬 빠르게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이런 구조는 AI가 곧바로 물가를 낮출 것이라는 기대에도 의문을 던진다.

AI로 비용을 줄이는 컨설팅과 광고, 소프트웨어, 데이터처리 등은 대부분 기업이 구매하는 중간재다. 이들의 가격이 내려가더라도 기업이 이를 최종 소비자가격에 반영하지 않으면 소비자물가는 떨어지지 않는다.

절감한 비용을 근로자의 임금으로 돌려주지 않는다면 남는 곳은 기업 이익이다. 생산성 개선이 ‘제품 가격 하락→물가 안정’이나 ‘임금 상승→소비 확대’보다 ‘마진 확대→기업이익 증가’로 먼저 연결될 수 있다는 얘기다.

1990년대와 거시경제 환경도 다르다. 당시 미국 물가 안정에는 생산성 향상뿐 아니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교역 확대와 노동공급 증가가 동시에 작용했다. 수입물가가 안정됐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가 임금 상승 압력을 완충했다.

현재는 방향이 반대다. 관세와 공급망 재편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고 고령화와 이민 제한 등은 노동공급 확대를 어렵게 한다. 과거에는 생산성 개선이 다소 약해도 교역과 노동공급이 물가를 눌러줬지만 지금은 AI 생산성 자체가 광범위하게 확산돼야 물가 안정 효과가 커질 수 있다.

한국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올해 2분기 지식재산생산물투자는 연구개발과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3.3% 늘었고, 상반기 제조업은 컴퓨터와 전자·광학기기를 중심으로 전년보다 6.5% 증가했다. AI 반도체와 하드웨어 수요가 국내 성장에는 분명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를 많이 수출하는 것과 국내 기업들이 그 반도체를 활용해 생산방식을 바꾸는 것은 다른 문제다. AI 하드웨어 공급망의 수혜를 받더라도 국내 산업 전체의 생산성이 함께 개선된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결국 AI가 경제를 바꾸는 속도는 투자금액보다 ‘확산 범위’가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에 아무리 많은 돈이 들어가도 AI를 실제 업무에 사용하는 기업이 일부에 머물고 노동 재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생산성 향상의 과실 역시 소수 기업에 집중될 수 있다.

그 경우 경제의 모습도 과거 기술혁명과 달라진다.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은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주주에게 돌아가지만 임금 상승은 제한된다. 소비 역시 소득 증가보다 주가 등 자산가격 상승에 더 의존하게 된다.

이는 ‘소수의 고평가 기업과 다수의 저평가 기업’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산을 가진 가계와 그렇지 않은 가계의 소비 여력도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AI 투자 규모만 보면 이미 새로운 산업혁명에 가까운 숫자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생산성 혁명의 진짜 기준은 데이터센터를 얼마나 많이 지었느냐가 아니라 그 기술이 얼마나 많은 기업과 노동자에게 퍼졌느냐다.

지금까지는 AI가 노동을 대체하는 속도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속도보다 빠르고, 생산성 향상은 임금과 소비보다 기업이익과 자산가격으로 먼저 향하고 있다. 전력과 반도체 병목이 풀리고 AI 도입 비용이 크게 내려가기 전까지는 ‘AI 생산성 호황=물가 안정과 금리 하락’이라는 공식이 생각보다 늦게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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